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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과 Dec 09. 2021

아아 - 인생.


출근해 장비 앞에 앉아 있으면 무엇인가 구구절절 써 재끼고 싶다는 욕구가 넘친다.


밥벌이의 숭고함이고 뭐고 뛰쳐나가고 싶어지는 것이다. 집으로 달려가, 평안한 집에서, 모니터 앞에 앉아서, 쉬지 않고 자판을 두들겨대는 내 모습을 상상한다.


철학적 질문들, 읽다 만 책들에 대해, 지나간 시간 속에 머물러 있는 인물들과 그들의 미래와 나의 과거와 나의 가지 않은 길들에 대해 쓰고 싶다.


장비가 돌아간다. 하루 여덟 시간, 기계 소음들로 욕망을 내리누른다. ‘밥벌이는 숭고하다’ 변명처럼 대뇌이며.


점심 지나서부터는 졸음이 쏟아진다. 글을 쓰고 싶다는 욕망은 곧 체념으로 변한다. 그다음은 그리다 만 그림이 찾아온다. 그리고 또 다른 체념을 남겨두고 떠난다. 매일 쌓여가는건 체념뿐인가.


 실수와 허수, 내 인생의 기본값과 엔트로피에 대해 생각한다.


나는 어쩌면 내가 생각하고 있는 그 모든 것들로부터 서서히 멀어지고 있는지도 모른다. 아니 어쩌면, 그것들은 이미 오래전에 먼 하류로 떠내려가 버렸는지도, 그것도 모르고 나는 내내 기다리고 있는 것은 아닐까.


내 인생에 주어진 임무는 무엇인가. 내게 머무르려다 실패하고 나를 지나쳐가는 것들을 오로지 바라보는 일인가. 내가 가진 그릇은 너무도 작아 내 욕망과 꿈을 퍼 올릴 수가 없다.


퇴근 후 집에 와 앉아 있으면 이러한 인생은 대체 무엇인가 스스로에게 묻는다.


가치를 따지지 말고 살아가자 다짐하지만, 가끔은 도무지 그 어떤 것에도 자신이 없다. 이 인생이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지 알 수 없어서 눈만 껌뻑이며 앉아있는 것이다.


하루가 끝나간다. 어쨌든 무언가 해보려 애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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