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록색 창에 트위터를 치면 짹짹이 그림 옆에 “이 순간 일어나는 일들을 전합니다."가 적혀있습니다. 이 회사가 실시간 전해주는 공포는 실로 대단했습니다. 오늘은 입동답게 홍보맨들의 단톡방에서 이 회사의 커뮤니케이션팀이 순식간에 없어졌다는 소식에 정말이지 씁쓸함에 더해 오싹함마저 배가되었죠. 비슷한 기업 메타도 수천명 감원 임박했다는 소식이 전해졌고요. You’re fired, You’re save 가 나뉘어지는 게 아니 18년 역사상 처음이라니요.
사방이 바다이기 때문에 한국 조선업은 절대 불황이란 없을 거라 장담했던, IMF 때 지나가던 개도 1만원짜리 지폐를 물을 만큼 호황이었던 전직장에서도 불황의 터널을 결국 비켜가지 못했습니다. 홍보나 마케팅보단 원가절감이 시급한 시점에 내가 정말이지 하등 쓸모없는 사람인지도 모른다는 불안감과 더해 실제 극도의 스트레스에 시달렸던 적이 있었습니다. 쿵쾅대는 마음을 진정시키고 이런 저런 각자의 이유들로 인한 줄을 잇는 퇴사들을 보며 내 차례를 숨죽여 기다리며 담담한 척 준비하였죠.
물론 이런 상황을 두고, 한편으로는 공포를 경험한 이 많은 사람들이 앞으로 펼칠 새로운 도전과 기회 역시 기대되며, 반드시 주목하라는 이야기도 있지만 그거 아는가요? 공포는 공포를 유발하는 자극을 공포감으로 느끼는 건, 그걸 직접 겪는 사람들이고, 위기의 반댓말은 새로운 걸 시작하라는 하늘이 준 기회라 이야기하는 건, 그걸 옆에서 지켜보는 사람이나 할 수 있는 것이라는 걸요.
강박적 증상일 수도 있겠지만, 공포에 이미 단련이 된 그 후부터는 지금까지 주문처럼 되뇌입니다. 안락한 회사에 목매달지 말고 지속적으로 나를 탐구하고, 눈을 크게 뜰 수 있는 그 무엇이든 멈추지 않아야 한다고. 그래서 책을 읽고 글을 씁니다.
“무슨 차를 소유했는가는 중요하지 않다. 나에게 자동차는 ‘내 차는 엄청 좋은 차야’라는 소유의 영역이 아니라 ‘나는 이 차로 뭐를 할 수 있어’라는 경험의 영역이다.” 이동수의 <언젠가 잘리고, 회사는 망하고, 우리는 죽는다!> 난 여기서 ‘경험’이란 단어를 ‘실행’으로 바꾸고 싶습니다. 소유의 영역이 아니라 일단 질러보는 실행의 부분이라는 것. 죽기 이전에 언젠가 잘리는 걸 봤고, 회사가 망해가는 걸 겪어도 봤으니, 모든 도든 이미 던져진 인생 이렇게 저렇게 행하면서 굴러가는거야. 그렇게 말이죠.
물론 두잉(doing)의 총량은 그리 중요한 것이 아니라 진정으로 우리에게 요구되는 건, 내가 온전한 나로 존엄한 나로 불안하지 않는 나로 살 수 있게 나를 둘러싼 대내적인 요인들이 나에게 부정적인 영향을 주는 환경을 막고자 하는 실행일 것입니다. 발로 땅이나 기구를 밀어 차는, 안온함이란 엄청난 중력을 이겨낸 이와 같은 구르기에는 조직과 사회의 요구에 비교적 순탄하게 예스하고 대응해야했던 수동적 삶에서 벗어나 내 내부에 감춰 있는 자발성과 의욕을 하나둘씩 꺼내는, 내가 하는 독서도 있을거고, 글쓰기도 있을 거고 명상, 운동, 자기계발 등이 있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당신은 도대체 이 전해지는 극렬한 공포에 어떻게 마주하며 살 것인지요. 궁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