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 6시, 문 앞에서

조금씩 멀어져 가는 이웃

by Rumex

리모델링을 하려면 입주민 동의서를 받아야 했다.

전체 세대까지는 아니더라도
위아래로 5층씩,
총 10층의 동의를 받아야 한다는 말에
심장이 벌렁거렸다.


처음 해보는 일이라
준비해야 할 게 많았다.
그런데 관리사무소에서는
“괜찮아요, 최대한 많이 받는 게 좋으니 너무 걱정 마세요.”
라고 안심시켜 주었다.


이웃분들이 퇴근 후 집에 오는
저녁 6시에서 8시 사이에
동의서를 받으면 될 것 같았다.


하지만 긴장해서 그런지
예정보다 훨씬 일찍 도착해버렸다.
6시가 되기를 기다리는데,
시간이 이렇게 안 갈 줄이야…


할 일도 없이
오피스텔 복도를 어슬렁거리다가
결국 시간이 되어
17층부터 문을 노크하기 시작했다.


처음엔 문 두드리는 소리가 작나 싶어
초인종을 눌렀는데,
생각보다 소리가 너무 커서
순간 어쩔 줄 몰랐다.


'주인분이 나와서 뭐라고 하면 어쩌지?’
하는 생각에
식은땀이 한 줄기 흘렀다.


‘제발, 소리야 멈춰줘!’
속으로 빌었지만,
벨 소리는 멈추지 않았다.


다음부터는
노크만 하기로 마음먹었다.


한 층을 다 도는 동안
문을 열어준 분은 딱 한 분뿐이었고,


아래층으로 내려가도
겨우 한두 분만 열어주셨다.


해가 지고 어두워지면서

내 마음도 점차 무거워져만 갔다.


흔쾌히 동의해 주시는 분도 계셨고,
‘이런 걸 왜 받아?’라며
못마땅해하는 분도 계셨다.


안에서는 소리가 들리는데도
끝내 나오지 않는 분들도 있었다.


생각해 보면,
요즘 세상에 누가 쉽게 문을 열어주겠는가.

솔직히 나도, 여자 혼자 사는 입장이라
누군가 문을 두드려도
쉽게 열어주진 않을 것 같다.


그런 세상 속에서도

누군가를 믿어주는 사람이 있어서,
아직까지는 살만하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