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화.<냉장고는 오지 않았다>
결혼할 때 장만했던 냉장고가
며칠 전부터 심상치 않았다.
외출을 마치고 집에 돌아왔는데,
냉장고 아래에 물이 고여 있었다.
'그날이 왔다'.
몇 달 전에도 비슷한 일이 있었다.
그때는 기사님이 와서 임시로 손을 봐주셨다.
“다음에 또 이러면 부품 교체가 필요합니다.
냉장고 연식이 오래돼서, 부품이 있을지는
확인해봐야 해요.”
그 말을 들을 땐 괜찮겠지 했는데...
‘매장에 가야 하나?
온라인이 더 저렴하려나?’
잠깐 고민하던 나는
바로 온라인 쇼핑몰에 접속해 서치를 시작했다.
삼성 냉장고를 선호하는 나는
이미 눈여겨봐둔 모델이 있었고
최저가를 비교하던 중
특정 쇼핑몰의 가격이 눈에 띄었다.
클릭하자 상세정보에 이런 문구가 있었다.
‘구매 전 판매자에게 연락해 재고 여부를 확인해 주세요.’
전화를 걸었다.
신호음 끝에 남자직원이 전화를 받았다.
“안녕하세요, ○○쇼핑몰에 올라온 삼성 냉장고 구매하려고 전화드렸어요,"
“아, 네~ 고객님.○○쇼핑몰에 올린 거 말씀하시는구나. 그 냉장고 저희 홈페이지에서 현금결제해 주시면 추가할인드려요, "
“현금 결제하면 얼마인가요?”
“178만 원입니다.
최저가보다 더 저렴하게 드리는 거예요.”
오… '7만 원이나 싸네.'
괜찮은 조건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가 보내준 링크로 접속해
익숙한 모델명을 검색했고,
나는 무통장 입금을 마쳤다.
결제를 마치고 나서야 문득 궁금해졌다.
‘사다리차 비용은 별도 아니야?’
불안한 마음에 방금 통화했던 번호로 다시 전화를 걸었다.
“저, 사다리차 추가비용도 있나요?”
“아이고~ 사모님. 그건 저희가 그냥 해드려요.
걱정 마세요.”
“아, 네. 감사합니다.”
현금을 절약했다는 생각에
기분이 한결 가벼워졌다.
‘7만 원 아꼈으니까 오늘 저녁은
삼겹살이나 구워 먹을까?’
그날 밤, 나는 그렇게 기분 좋게 저녁거리를 준비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정말,
우리 집 주방에 고장 난 냉장고가 계속 자리를 차지할 줄은 생각도 못했다.
사흘이 지나도
배송에 대한 문자는 오지 않았다.
배송일을 지정하지 않은 탓인가 싶어
그때 통화했던 번호로 다시 전화를 걸었다.
신호음만 길게 울렸다.
받지 않았다.
문자라도 보내봐야겠다 싶어서
“냉장고 배송 일정 문의드립니다.”
짧게 보냈다.
답이 없었다.
하루를 더 기다렸다.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다시 홈페이지에 들어가 보려고 했지만,
주소창에 입력한 사이트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창이 떴다.
순간,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분명 내가 들어갔던 페이지였고,
결제까지 했던 곳인데 지금은 어디에도 없었다.
‘설마… 내가?’
손끝이 떨렸다.
혹시 하는 마음에
○○쇼핑몰 이름을 포털에 검색해 봤다.
자동완성에 따라붙는 단어는
‘사기’, ‘피해 후기’였다.
나는 그 자리에 멍하니 앉아
그 글들을 하나씩 읽었다.
글자들이 눈에 잘 들어오지 않았다.
그러다 피해자들이 남긴 말 중 하나가
가슴에 박혔다.
“그들은 구매자 심리를 너무 잘 안다.
살까 말까 망설이는 그 마음을, 조금이라도 싸게 사고 싶은 욕심을"
그게 나였다.
딱 나였다.
'아, 이게 사기였구나. 내 돈...'
놀라서 심장이 쿵쾅거리고 뛰기 시작했다.
그날 밤, 잠이 오지 않았다.
눈을 감아도
그 직원의 목소리가 자꾸 떠올랐다.
경찰서에는 내일 아침,
일찍 가서 신고하면 된다.
그런데,
'정말 그 사람을 잡을 수 있을까?'
'내 돈을 돌려받을 수 있을까?'
머릿속이 복잡하게 얽혀 들기 시작했다.
무엇보다 나를 괴롭힌 건
그 돈을 어떻게 모았는지,
그 과정이 선명히 떠오른다는 거였다.
아들에게 장난감을 사주고 싶었지만
“다음에 사줄게” 하고 넘기며
조금씩 모아뒀던 돈이었다.
먹고 싶은 걸 참으며,
남들처럼 새 가전 한 번 못 바꾸며
아껴온 돈이었다.
그게 하루아침에 사라졌다는 사실이
화가 나서,
억울해서,
참을 수가 없었다.
나는 혼잣말처럼
'그때, 장난감이라도 마음껏 사줄걸.'
'먹고 싶은 건 그냥 다 먹어볼걸.'
그렇게 참은 게, 결국 화를 불렀다.
계좌이체 알림을 확인하고,
대화 내용을 다시 읽어보며
내가 뭘 놓쳤는지 되짚어도
이미 돌이킬 수 없다는 사실만 선명해진다.
아침 일찍 경찰서에 갔다.
밤새 제대로 잠을 자지도 못했고,
화장은커녕 세수도 대충이었다.
현관을 나서는 순간부터
나는 이미 지친 사람이었다.
민원실 구석에 마련된 인터넷 신고창구.
사이버 범죄 담당 순경이 나를 맞았다.
정해진 절차에 따라 질문이 이어졌고,
나는 한 문장 한 문장 대답을 채워나갔다.
“사이트 주소는 기억나세요?”
“거긴 지금 접속이 안 돼요.”
“입금은 무통장으로 하셨다고요?”
“…네.”
“판매자 번호는요?”
“받지도 않고, 지금은 꺼져 있어요.”
질문이 늘어날수록
내 목소리는 점점 작아졌다.
내가 대답할수록
'사기를 당한 게 맞다'는 사실이 점점 더 확실해졌다.
신고가 접수되었다고 했다.
"잡을 수 있을까요?"
"이런 경우는 잡기 힘든데..
연락드릴 테니까 집에 가서 기다리세요."
경찰서를 나와
그 자리에 잠시 멈춰 섰다.
손에 쥐어진 신고서 한 장.
나는 단지
냉장고 하나 사려던 사람이었다.
조금 저렴하게 사고 싶었던
그 마음이
신고서 속 ‘피해자’라는 두 글자로 정리되었다.
그날,
나는 집에 돌아와 냉장고 문을 열었다.
성에 낀 냉동칸 안쪽,
어느새 딱딱하게 얼어붙은 동태 한 봉지를 꺼내 도마 위에 올렸다.
이제 저녁이라도 먹어야 하니까.
숨이 턱턱 막히는 하루였지만,
생선 손질은 또 내가 해야지.
도마 위의 동태를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그 머리를 세게 내리쳤다.
"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