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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anunna Sep 10. 2023

약점이 강점이 되게

“세상에서 좋은 곳은 그렇게 다 다녔으면서 막상 내 공간을 만들려고 하니 어찌할 바를 모르는 나란 인간이었다. 그때 알았다. 안목은 책으로도 알 수 없고, 많이 봐서도 알 수 없고, 오늘처럼 실패해 보면서 온몸이 기억하게 하는 세포밖에 답이 없다고”

<컨티뉴어스, 윤소정, 132p>    


 

그림 보는 안목을 가지고 싶었다. 그림은 잘 그리진 못해도 안목만큼은 어찌해 볼 수 있지 않을까 싶어 틈틈이 미술관도 다니고 잡지책도 보고, 책도 읽고 강의도 들었다. 안목이 생겨야 하는데 취향이 생겼고, 그림을 그리고 싶게 되었다.

      


유화에 도전하기로 했다. 마침 집 근처 평생교육학습관에 유화반이 있어서 등록했다. 거기서 천천히 처음부터 배워나가기로 했다. 유튜브를 보면서 겨우 준비물 구색만 갖추고 온 생초보가 등장하게 된 것이다. 기존 회원분들은 모두 오래전에 강사님과 함께 그림을 꾸준히 그리신 베테랑 분들이었다. 내가 보기엔 실력이 만만치 않았다. 나는 대학생 언니 오빠들 틈에 끼어든 시쳇말로 초등 잼민이 같았다.   

   


강의 커리큘럼 상 이번달 주제는 정물화였다. 강의실 한가운데 놓인 작은 책상 위에는 복숭아 몇 개가 쟁반 위에 올려져 있었고 몇 개는 떨어뜨려 놓았다.  그것은 초보인 나를 위한 것이었다. 다행히 나 말고도 새로 등록한 회원이 1분 더 계셨다. 그 두 명만이 복숭아를 쳐다보고 있었다. 기존 회원분들은 모두 각자의 주제로 그림을 그리고 있었다.  뭔가 알려주실 것 같아 목석처럼 기다리는데 강사님이 그런 나를 보고 한 말씀하신다.

“그냥 그려, 막 그려, 자기 맘대로 그려 봐~”

라시며 망치면 본인이 다 수습해 줄 테니 막 그리라 하신다.     


하지만 막상 그림을 그리려고 하니 이런저런 생각이 많아지면서도 머리가 샛노랗게 되는 기이한 경험을 하게 됐다. 머리는 아이디어를 줄 듯 말 듯했고, 하얀 캔버스를 바라보는 내 몸과 맘은 벽을 보고 묵언수행하는 인도 스님 같았다.

‘ 제대로 그림 그리는 법을 배운 적이 없는데 어떻게 그림을 그리지?’

‘ 유화의 유자도 모르는데 강사님이 가르쳐주셔야 되는 것이 아닌가?’

살짝 삐져버린 내 모습을 아시는지 모르시는지 강사님은 기존 회원 분들과 수다 떨기 바쁘셨다.     



그러다 문득 어차피 초보니까 맘껏 실수해도 괜찮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마치 아이에게 색연필이라는 신문물을 쥐어 주고 집 안의 모든 벽이 캔버스가 되든 말든 삐뚤빼뚤 그림을 보고 사랑스럽다 생각할 엄마의 마음처럼 말이다.     


강사님은 이제 어린아이와 같은 마음으로 빙의될, 곧 일을 저지르게 될 나를 알고 계신 것일까? 이 세상의 모든 아이들이 배우지 않아도 그림을 그리는 것처럼, 때 묻지 않는 순수한 창조성, 본능, 유희 등을 과감히 풀어내는 프로화가인 것처럼 말이다. 나는 마치 주술사처럼 내 안에 오래 묵혀둔 내 안의 어린아이를 불러내기로 했다.



아이가 되니 과감해졌다. 막 그리고 막 색칠했다. 매뉴얼 따위는 보지 않는 아이처럼 형식도 없고, 틀도 없고, 그저 본능만이 이끌 뿐이다. 나는 붓과 물감으로 캔버스를 향해 거침없는 하이킥을 해댔다.     



강사님이 나의 어린아이가 그린 그림을 보고 “재밌네, 웃기네.” 하시며 비웃는 것인지, 진짜 재미있다는 것인지 알 수 없는 웃음을 지으셨다. 그림 실력은 형편없어도 아무도 생각하지 못한 것을 그리는 나의 기발성을 높이 쳐주셨다.

      

김미경 학장님은 나를 확장하기 위해서는 새로운 것에 도전을 해야 한다고 했다. 그러면 스스로 약점을 발견하게 된단다. 나는 그림을 통해 나를 확장시키려 했고 더불어 나의 약점 또한 발견하게 되었다. 내가 약점을 많이 느낄수록 더 많이 확장될 수 있을 것이다. 나의 약점의 거리만큼 확장될 수 있으니 말이다. 나의 부족한 그림 보는 안목도 직접 그림을 그리면서 실패의 시간을 쌓으면 약점이 아닌 강점이 될 것이다.      



그러니, 열심히 사는 사람일수록 더 스스로를 부족하다 할 것이다.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약점도 강점도 모르고 살게 된다. 또한 약점에 가로막혀 강점이 되는 과정도 즐길 수 없을 것이다. 그 과정 중에 실패가 주는 공부도 못할 것이다. 부족한 나를 찾아내는 재미를 즐겨야겠다. 부족한 내가 어떻게 확장되는지가 인생의 관전 포인트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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