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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쌤아이언 Apr 14. 2022

#일곱 번째 편지. 어머님은 허리를 숙여 인사를 전했다

: 사람이 온다는 건 실은 어마어마한 일이다

선생님이 주말이면 궁궐에서 문화재해설을 한다고 전한 적이 있죠? 

이번주는 '석조전'이라는 문화유산을 다녀왔어요. 석조전은 대한제국시대 때 만들어진 건축물로, 

한국 교과 과정에서는 중학교 때 학습을 하게 됩니다. 따라서 석조전에는 중학생 아이들이 현장학습으로 방문을 하곤 합니다. 그날도 중학교 3학년 여학생과 그의 친구, 그리고 그 아이들을 이끌고 온 한 어머님이 계셨어요. 여학생 손에는 손바닥 크기의 수첩이 들려 있었어요. 그리고 명징한 눈빛을 가진 아이였습니다. 


ⓒ 문화재청 , 석조전


그 어머니는 해설이 시작되기 전에 선생님에게 다가오셔서, 공손하게 허리를 굽혀 인사를 하시더라고요. 

그러고는 캠코더 촬영이 가능한지를 정중하게 물었어요. 그 모습이 참 인상적이었어요. 자연스레 예의가 묻어 나는 품위 있는 행동이셨고, 사람에 대한 신뢰가 느껴졌습니다. 당신의 행동 하나하나가 자녀에게 큰 영향을 끼칠 수 있다는 점을 감안해보면, 그 아이는 분명 훌륭한 어른으로 성장할 것이라는 확신이 들 정도였으니깐요. (샘이 지금 집에 돌아와서 거울을 보고 그분의 인사를 따라해 봤는데, 그 분처럼은 자연스럽게 몸에 익지가 않는군요;; 평소에 인사를 잘해서 체화 시켜놔야지만 가능한 것이네요.)


그 인사 속에는 '우리 아이와 아이 친구에게 선한 지식을 잘 전달해주세요. 우리도 잘 배우고 가겠습니다.'

라는 무언의 의지를 느낄 수 있었습니다.  


학원에서 강의를 하는 쌤 앞에는 수십명의 학생이 있고 출강하는 반을 모두 합치면 삼,사백여명의 학생이 됩니다. 인강의 학생까지 포함되면 그 수는 더 커지겠지요. 그리고 그 학생들의 집에는 학원이나 길에서 샘을 만나면 분명 석조전에서 만났던 그 학부모님의 마음으로 철쌤을 대해주실 어머님 혹은 아버님이 계시겠죠. 

이 글을 읽고 있는 너희들의 어머님, 아버님이 바로 그분들이지요. 


단지 하루 보았던 궁궐 아이들에 비해 쌤의 직업 속 학생들은 1년, 365일을 만나지요.

모두가 하나의 개별적인 존재이고 인격체인 학생들인데, 쌤은 너무나도 쉽게 그것을 잊고는 합니다. 


이 글은 사실 너희에게 고백하는 편지입니다. 참 미안하다고 말하기 위해 글을 쓰는 것입니다. 


어느 순간부터 촬영카메라와 빔프로젝터를 통해 나오는 강력한 빛 만을 신경쓰며 강의를 하고 있더군요. 정작 진심으로 바라봐야하는 학생들의 눈빛을 제대로 살피지 않았지요. 어려운 설명 끝에는 학생들의 표정을 두루 살펴서 이 녀석이 방금 한 설명을  '이해하고 있는지', '이해했다고 착각하는지', '이해한 척을 하는지'를 구분하는 일에 참 게을렀더군요. 미안합니다. 


강단 아래 있는 너희들은 너희들 혼자만의 존재가 아닐텐데 말이에요. 어떤 가정에서는 분명 그 집 안의 기둥이며 뿌리이자 희망일 것입니다. 가정을 일으켜 세울 거룩한 존재일 수도 있지요. 그리고 이 아이들을 위해서 뒤에서 묵묵하게 생업을 이어오시고, 회사에 출근하시는 너희들의 부모님이 계시겠지요. 별거 아닌 강사에게도 정성을 담아 인사해주시는 분들이 바로 너희들의 어머님, 아버님이라는 것을 잊지 않고 강의를 준비하겠습니다. 


시인 정현종님의 시 <방문객>에서는 이런 표현이 있습니다. 


                                       '사람이 온다는 건 실은 어마어마한 일이다. 

                            그는 그의 과거와 현재와 그리고 그의 미래와 함께 오기 때문이다. 

                                            한 사람의 일생이 오기 때문이다....(생략..) ' 


한 학생이 온다는 건 그 학생의 일생 뿐 아니라 가족도 함께 오는 일이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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