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나 아렌트는 1906년에 독일 하노버에서 태어나 아버지의 고향 쾨니히스베르크의 유대인 집안에서 자랐다. 아렌트는 히틀러와 스탈린을 맹렬히 비난한 《전체주의의 기원》을 발표했으며, 2차 세계대전 중 유대인 학살의 핵심 책임자였던 아돌프 아이히만의 전범재판을 지켜보고 쓴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에서 ‘악의 평범성’ 개념 등을 고찰하여 명성을 얻었다.
《인간의 조건》은 아렌트가 1958년에 쓴 저서로, 인간의 삶을 전통적인 삶의 태도인 관조적 삶(vita contemplativa)과 대비해서 활동적 삶(vita activa)으로 분석한다.
“활동적 삶 개념을 사용할 때 나는 이 모든 활동의 근저에 있는 관심은 관조적 삶이라는 중심적 관심과 같지도 않고 또 그보다 낫거나 못하지도 않다는 점을 전제로 한다.”
그리고 아렌트는 활동적 삶이라는 개념으로 인간의 세 가지 근본 활동, 즉 노동·작업·행위를 표현한다. 노동은 인간의 생존을 위해 필요한 신체적 활동이다. 반면에 작업은 비자연적 활동으로 자신의 재능을 발휘해 재미와 자긍심을 느끼며 제작물을 만드는 활동을 말한다. 마지막으로 행위는 사물이나 물질의 매개 없이 인간들 사이에서 직접적으로 이루어지는 유일한 활동을 말한다. 즉 이 행위는 다른 사람들과 함께 살 수밖에 없는 다원성에 부합하기 때문에 곧 공동체적이고 정치적 활동을 의미한다.
“노동은 개인의 생존뿐 아니라 종의 삶까지 보장한다. 작업과 그 산물, 즉 인간의 인공물(artifact)은 유한한 삶의 무익함과 인간적 시간의 덧없음에 영속성과 지속성을 부여할 수단을 제공한다. 행위가 정치적 조직의 건설과 보존에 참여하는 한 그것은 기억의 조건, 다시 말해 역사의 조건을 창출하는 것이다. ”
“‘죽을 수밖에 없는’ 인간의 과제이자 잠재적 위대성은 존재할 가치가 있는 것이며 또 어느 정도 영속적으로 존재하는 것을 산출한다는 데 있다. 다시 말해 작업·행위·언어의 능력을 가지는 데 있다. (…) 인간과 동물의 차이는 인간 종 자체에 의해 분명하게 드러난다. 자신을 항상 최고의 존재로 증명하고 사라질 것들보다 불멸의 명예를 좋아하는 가장 뛰어난 자(aristoi)만이 참된 인간이다.”
아렌트가 《인간의 조건》에서 활동적 삶을 ‘노동’ ‘작업’ ‘행위’로 범주화하고 특히 행위를 강조한다. 아렌트가 인간의 활동을 이렇게 분석한 이유는 현대사회에 와서는 인간은 ‘노동’에만 관심이 있고 정치적 행위를 외면하고 있기 때문이다. 즉, 인간사의 영역은 사람들이 함께 사는 곳이면 어디에서나 존재하는 인간관계의 ‘그물망’으로 이루어진다. 말을 통해 자신의 인격을 드러내고 행위를 통한 새로운 출발은 인간세계의 참여로 이어진다. 바로 이것이 아렌트가 말하는 ‘행위’인 것이다.
“말과 행위를 통해 우리는 인간세계에 참여한다. 참여는 제2의 탄생과 비슷하다. 우리는 탄생에서 신체적으로 현상하는 우리의 본모습을 확인하고 받아들인다. (…) 참여의 충동은 태어나서 세상에 존재하기 시작하는 순간부터 발생하며, 우리 자신의 주도로 새로운 어떤 것을 시작함으로써 이 시작에 대응한다.”
#인간의조건
#한나아렌트
#한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