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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러나 Jan 04. 2024

다음 역은 하이아웃풋 클럽입니다.

일탈의 시작

"축하합니다. 합격하셨어요. 저희 조직장님이 이러나님이 계신 곳에 직접 가셔서라도 커피챗을 하고 싶으시다고.. 다음 일정을 잡을 수 있을까요? "


"아... 제가 생각해 보고 다시 연락드려도 될까요?"


대기업이 직접 스카우트 제의를 했다. 1차 면접도 보고 시험도 봤다. 합격했다. 그런데 연락이 오던 그날, 나도 모르게 '생각해 보고 연락 주겠다'는 말이 나와버렸다.


속에선 이런 말이 자꾸 맴돌았다.


'이렇게 회사에 들어갈 순 없어'






퇴사하고 내려온 제주에선 산방산을 앞마당 삼고 사계해변 여기저기를 뛰어다녔다. 히피펌으로 잔뜩 헝클어진 머리, 건조기에 한껏 줄어든 반팔티, 햇빛에 그을린 얼룩덜룩한 얼굴.. 야생에 사는 모글리가 따로 없었다. 새장 밖을 빠져나와 여기저기를 누비며 방학숙제 없는 방학을 즐겼다.


그런 삶에 브레이크를 거는 채용담당자의 말이 달갑지가 않았다. 직장인의 삶이 어떤지는 뻔히 안다. 재미있는 일 하나 벌여보지도 못하고 이렇게 돌아갈 순 없었다. 인사담당자로 절대 돌아가지 않겠다는 건 아니지만, 돌아가기 전에 꼭 해보고 싶은 게 있었다.


'살아보지 않은 삶을 살아보는 것'


사실, 통장 잔고는 빠르게 줄어들어 새장 안으로 다시 들어가야 할 때는 다가오고 있었다. 다시 회사에 들어가 보자고 스스로를 납득시켜야 하는데, 나는 자꾸 '아직'이라는 단어를 골라 썼다. 적어도 '반대편의 삶'을 한번 살아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주인 없는 삶을 연장했다. 그 주인이 밥도 주고 잠도 재워줄 갑부인 것도 잊고. 그렇게 불안함을 벗 삼는 삶이 이어졌다.






"인사담당자"가 반대편의 삶을 산다는 건 뭘까. 회사 밖 자신을 탐험해보고, 회사라는 개념을 떠나 자신을 충분히 설명할 수 있는 사람들과 섞여보는 거다. 그리고 나아가서 자신이 회사가 되기로 한 사람들과 어울리는 것이다. 


그때의 나는 자신을 사방으로 늘려도 보고, 헤집어도 보고, 뒤집어 흔들어보는 경험을 해봐야만 앞으로 무슨 일을 하며 살아갈지 결정할 수 있을 것 같았다. 회사는 언제든지 들어갈 수 있을 것 같았고 꼭 그 대기업에 들어가고 싶은 것도 아니었다. 그 회사에서 일을 함께 만들어갈 사람들이 궁금하지도, 가슴 뛰지도 않았다. 채용 프로세스를 진행할수록 그 생각은 강해졌다. 


그래서 어차피 환승이직이라는 '정석'에서 벗어난 마당에, 인사담당자가 인사(人事)를 하지 않게 된 마당에, 지금이 아니면 하지 못할 일탈이라도 세게 해보고싶다는 확신이 들었다.그래서 나는 ‘딴짓’을 생각하기 시작했다.

 

생각해낸 '딴짓'은 대기업 말고 요즘 핫하다는 '하이아웃풋 클럽'에 들어가는 것이었다. 하이아웃풋 클럽은 콘텐츠 크리에이터들이 모인 4주짜리 프로그램으로, 인스타그램을 기반으로 자기 일을 해보고 싶은 사람이 급속성장을 경험할 수 있는 곳이다. 인스타그램을 하고 자기계발에 관심있는 사람이라면 한번은 들어봤을 만한 커뮤니티다.



혹시나 그 일탈이 체질일지, 앞으로 내 인생에 어떤 영향을 가져올지는 아무도 모른다. 그냥 잠깐 불고 지나가는 바람이 될지도 모른다. 다만 마음이 보내는 신호로 봤을 때, 안 해보고 후회하는 것보다는 해보고 후회해야 회사에 돌아갈 발걸음이 조금이라도 가벼울 것 같았다. 그래서 지원서를 작성했다. 합격하면 제주의 삶을 청산하고 도시로 다시 올라가겠다는 다짐과 함께.

 그리고 이틀 뒤, 문자가 왔다.


 '안녕하세요. 하이아웃풋클럽 8기에 지원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기쁜 마음으로 8기 합격 소식을 전해드립니다.'



<다음 글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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