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질과세의 칼날도 '절차' 앞엔 무효?

제2차 납세의무 부과처분 취소 소송 분석

by 김미래 변호사

조세 관련 소송, 특히 국제 거래나 해외 법인이 연루된 사건은 복잡한 사실관계 속에 숨겨진 '실질'을 파악하는 것이 핵심입니다. 오늘은 최근 서울행정법원에서 선고된 흥미로운 판결(2023구합58732)을 통해, 해외 페이퍼컴퍼니를 이용한 조세 회피 시도와 이에 대한 과세당국의 제2차 납세의무 지정이 어떻게 이루어지는지, 그리고 법원은 이를 어떻게 판단했는지 짚어보려 합니다.


이 사건은 다단계 출자 구조와 명의신탁을 통해 해외 법인을 지배하던 체납자에 대해, 과세당국이 해당 해외 법인을 '제2차 납세의무자'로 지정하면서 발생한 분쟁입니다.



1. 사건의 발단: 1,000억 원대 체납과 해외 법인의 등장


개인 B씨는 국내외 선박 운송 사업을 실질적으로 운영하던 사주였으나, 세무서로부터 막대한 종합소득세를 부과받고도 이를 납부하지 않았습니다.


이에 과세당국은 B씨의 재산만으로는 체납액을 징수할 수 없자, B씨가 실질적으로 지배하고 있는 홍콩 법인 A사(원고)를 제2차 납세의무자로 지정했습니다.


여기서 쟁점은 "과연 B씨가 홍콩 법인 A사의 과점주주인가?" 였습니다. 겉으로 보기에 A사의 주주는 바하마에 설립된 또 다른 법인 C였고, C의 주주는 다시 다른 해외 법인으로 연결되어 있었기 때문입니다. 원고 측은 "B씨는 주주명부상 주주가 아니므로 제2차 납세의무가 없다"고 주장했습니다.


2. 법원의 판단: "형식이 아닌 실질을 보라"


법원은 원고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여기서 '실질과세의 원칙'이 강력하게 적용되었습니다.


재판부는 B씨가 조세피난처인 케이만군도, 바하마 등에 설립된 페이퍼컴퍼니(SPC)들을 통해 다단계 출자 구조를 만들고, 주식을 명의신탁하는 방식으로 A사를 실질적으로 지배해왔다는 사실을 인정했습니다. 내부 품의서나 이메일에 "회장님(B씨) 지시사항으로 명의신탁할 것"이라는 내용이 발견된 것이 결정적이었습니다.

결국 법원은 "주주명부상의 명의가 아니라, 실질적으로 회사를 지배하고 이익을 향유하는 자가 누구인지"를 따져, B씨를 A사의 과점주주로 보고 제2차 납세의무 지정을 정당하다고 판단했습니다.


3. 해외 법인 정관의 해석: 주식 양도 제한의 의미


또 하나의 흥미로운 법리적 쟁점은 '주식 양도의 제한' 요건이었습니다. 국세기본법상 법인이 제2차 납세의무를 지려면, 법률이나 정관에 의해 출자자의 주식 양도가 제한되어야 합니다.


국세기본법 제40조(법인의 제2차 납세의무) ① 국세(둘 이상의 국세의 경우에는 납부기한이 뒤에 오는 국세)의 납부기간 만료일 현재 법인의 무한책임사원 또는 과점주주(이하 “출자자”라 한다)의 재산(그 법인의 발행주식 또는 출자지분은 제외한다)으로 그 출자자가 납부할 국세 및 강제징수비에 충당하여도 부족한 경우에는 그 법인은 다음 각 호의 어느 하나에 해당하는 경우에만 그 부족한 금액에 대하여 제2차 납세의무를 진다.
1. 정부가 출자자의 소유주식 또는 출자지분을 재공매(再公賣)하거나 수의계약으로 매각하려 하여도 매수희망자가 없는 경우
2. 그 법인이 외국법인인 경우로서 출자자의 소유주식 또는 출자지분이 외국에 있는 재산에 해당하여 「국세징수법」에 따른 압류 등 강제징수가 제한되는 경우
3. 법률 또는 그 법인의 정관에 의하여 출자자의 소유주식 또는 출자지분의 양도가 제한된 경우(「국세징수법」제66조 제5항에 따라 공매할 수 없는 경우는 제외한다)


원고(홍콩 법인)는 "우리 정관에는 주식 양도 제한 규정이 없다"고 주장했으나, 재판부는 홍콩 회사법(Companies Ordinance)과 원고의 정관을 정밀하게 분석했습니다.


홍콩의 비공개회사(Private Company)는 통상적으로 이사회가 '절대적인 재량'으로 주식 양도 등록을 거부할 수 있는 권한을 가집니다. 법원은 이러한 이사회의 거부권 조항이 실질적인 '주식 양도 제한'에 해당한다고 보았습니다. 해외 법인의 정관을 해석할 때도 그 설립 준거법(홍콩법)과 현지 통용되는 표준 정관의 의미를 깊이 있게 파고든 판단입니다.


4. 절차적 하자는 엄격하게: 부과제척기간의 준수


하지만 과세당국이 모든 부분에서 승소한 것은 아닙니다. 변호사로서 주목해야 할 부분은 바로 '절차적 정당성'입니다.


소송 도중 과세당국은 세액을 다시 계산하여 변경 처분(제2차 부과처분)을 내렸습니다. 이때 일부 연도(2006년 귀속분)의 세액을 증액했는데, 법원은 이 '증액된 부분'에 대해 무효 판결을 내렸습니다.


이유는 부과제척기간(5년)의 도과 때문입니다. 제2차 납세의무가 성립한 날로부터 5년이 지난 후에 이루어진 증액 경정 처분은 효력이 없다는 것입니다. 반면, 세액을 감액하거나 직권 취소한 부분은 납세자에게 유리하므로 유효하다고 보았습니다.


이는 과세관청이 실체적으로 과세할 권한이 있다 하더라도, 법이 정한 기간과 절차를 지키지 않으면 그 처분은 위법하다는 행정법의 대원칙을 재확인한 것입니다.


5. 결론 및 시사점


이번 판결은 해외 조세피난처를 이용한 복잡한 지배 구조라 하더라도, 법원은 그 경제적 실질을 꿰뚫어 보고 과세 책임을 묻는다는 점을 시사합니다. 동시에 과세당국의 처분이라도 부과제척기간 등 절차적 요건을 갖추지 못하면 방어할 수 있다는 점 또한 보여줍니다.


이번 사건처럼 회계 장부(연결재무제표, 감사보고서)의 분석과 해외 법령의 해석, 그리고 행정 소송의 절차적 법리가 뒤섞인 사건은 세무적 지식과 법률적 대응 능력이 동시에 요구됩니다.


법무법인 리브로는 공인회계사 출신 변호사의 전문성을 바탕으로, 세무 조사 단계부터 불복, 행정 소송에 이르기까지 복잡한 조세 이슈에 대한 명쾌한 솔루션을 제공합니다. 억울한 과세 처분으로 고민하고 계신다면, 언제든 리브로의 문을 두드려 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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