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7억 뒷돈, '횡령'이 아니면 무죄일까?

죄명 변경(공소장 변경)이 가른 유무죄의 운명

by 김미래 변호사

안녕하세요. 법무법인 리브로의 김미래 변호사/공인회계사 입니다.


형사 재판은 흔히 '창과 방패의 대결'이라고 합니다. 검사는 피고인의 죄를 입증하려 하고, 변호인은 이를 방어합니다. 그런데 만약 검사가 처음에 들고나온 창(공소사실)이 빗나갔다면 어떻게 될까요? 검사는 재판 도중에 다른 창(변경된 공소사실)으로 바꿔들 수 있을까요?


여기, 수십억 원의 뒷돈을 챙긴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대표이사가 있습니다. 2심 법원은 그에게 '무죄'를 선고했지만, 대법원은 "재판을 다시 하라"며 판결을 뒤집었습니다.


오늘은 대법원 2020도3273 판결을 통해, 형사소송법상 매우 중요한 쟁점인 '공소장 변경'과 '사실관계의 동일성'에 대해 이야기해 보겠습니다.


1. 사건의 재구성: 땅 팔고 받은 67억 원의 정체


사건은 회사의 부동산 매각 과정에서 발생한 거액의 자금 흐름에서 시작됩니다.


[사건 개요]

피고인: A회사의 대표이사 (피고인 1).

행위: 피고인은 회사가 소유한 토지를 B회사 측에 매각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피고인은 B회사 측으로부터 현금, 수표, 차명계좌 등을 통해 총 약 67억 5,900만 원을 개인적으로 건네받았습니다.

쟁점: 이 돈의 성격이 무엇이냐는 것입니다.

Case A (매매대금): 회사가 받아야 할 땅값을 피고인이 중간에서 가로챈 것인가? (횡령)
Case B (리베이트): 땅을 팔아주는 대가로 피고인이 개인적으로 받은 뒷돈(청탁금)인가? (배임수재)


2. 검찰의 딜레마와 전략 수정


검찰은 처음에 이 돈을 '회사의 매매대금'으로 보았습니다. 즉, 회사가 받아야 할 돈을 대표이사가 빼돌렸으니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위반(횡령)으로 기소했습니다.


그런데 재판 과정에서 증거를 살펴보니, 이 돈이 '회사의 공식적인 매매대금'이라고 단정하기 어려운 정황들이 나타났습니다. 자칫하면 횡령죄가 성립하지 않아 무죄가 나올 수도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이에 검찰은 '예비적 공소사실'을 추가하겠다는 신청을 합니다.

"판사님, 만약 이 돈이 횡령(매매대금)이 아니라면, 피고인이 부정한 청탁을 받고 챙긴 **배임수재(뒷돈)**로라도 처벌해 주십시오."


이것이 바로 '공소장 변경' 신청입니다.


3. 법원의 엇갈린 판단: 형식 vs 실질


이 사건의 핵심은 "횡령죄로 기소했다가 배임수재죄를 추가하는 것이 가능한가?"였습니다. 이를 위해서는 두 죄의 바탕이 되는 '기본적 사실관계'가 동일해야 합니다.


원심(고등법원)의 판단: "두 죄는 다르다, 변경 불허"

원심은 검찰의 공소장 변경 신청을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불허).

이유: 횡령은 '회사의 돈'을 가져간 것이고, 배임수재는 '타인의 돈'을 대가로 받은 것이다. 피해 법익도 다르고 행위 태양도 다르다.

결과: 횡령 혐의에 대해서는 증거 부족으로 무죄를 선고했고, 횡령이 무죄가 되니 이 돈을 숨긴 혐의(범죄수익은닉)도 자연스럽게 무죄가 되었습니다.


대법원의 판단: "본질은 같다, 변경 허가해야"

대법원은 원심의 판결을 파기했습니다. 원심이 공소장 변경을 불허한 것은 법리를 오해한 위법이라는 것입니다.

판단 근거:

기본적 사실관계의 동일성: 죄명(횡령 vs 배임수재)은 다르지만, 피고인이 '동일한 토지 거래'를 매개로 '동일한 상대방'에게 '동일한 일시와 장소'에서 돈을 받았다는 사실 자체는 변함이 없다.
규범적 판단: 검사가 추가하려는 예비적 공소사실(배임수재)은 기존 사실(횡령)과 양립할 수 없는 관계이므로, 실체적 진실을 밝히기 위해 변경을 허용했어야 한다.


4. 변호사의 시선: 죄명은 달라도 '팩트'는 하나다


이 판결은 형사재판에서 '사실관계의 동일성'을 얼마나 폭넓게 해석할 것인지에 대한 중요한 기준을 제시합니다.


피고인 입장에서는 "나는 회삿돈을 횡령하지 않았다(매매대금이 아니다)"라고 방어하여 2심에서 무죄를 받았습니다. 하지만 대법원은 "네가 받은 돈의 명목이 횡령이든 배임수재든, '부정한 돈을 받았다'는 행위의 본질은 같다"고 판단한 것입니다.


이는 피고인의 방어권을 보장하는 것(갑자기 전혀 다른 사건으로 재판하면 안 됨)과 실체적 진실을 발견하는 것(죄명이 조금 틀렸다고 범죄자를 놓아주면 안 됨) 사이에서, 대법원이 실체적 정의의 실현에 무게를 둔 판결로 해석됩니다.


결국 이 사건은 고등법원으로 되돌려 보내졌고(파기환송), 법원은 변경된 공소사실인 '배임수재' 혐의에 대해 다시 심리하게 될 것입니다.


[요약]

대표이사가 회사 땅을 팔며 67억 원을 받아 횡령 혐의로 기소되었으나, 검찰은 재판 중 '배임수재(뒷돈)' 혐의를 예비적으로 추가(공소장 변경)하려 함.

2심은 "횡령과 배임수재는 별개의 사실"이라며 변경을 불허하고 무죄를 선고했으나, 대법원은 "돈을 받은 기초적 사실관계는 동일하다"며 이를 뒤집음.

죄명이 다르더라도 범죄 행위의 본질적 내용(일시, 장소, 방법 등)이 같다면 공소장 변경을 허가하여 실체적 진실을 밝혀야 한다는 취지의 판결.


법무법인 리브로는 장부 속 숫자를 법의 언어로 해석하여, 복잡한 경제범죄 사건에서 의뢰인을 위한 최적의 방어 전략을 제시합니다.

작성: 김미래 변호사 / 법무법인 리브로

관련 문의: 02-532-9824 / mrkim@lawlebr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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