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부통제시스템, ‘종이 호랑이’면 배상 책임 피할 수 없다
안녕하세요. 법무법인 리브로의 김미래 변호사/공인회계사입니다.
기업 내 횡령이나 비자금 조성이 발생했을 때, 최고경영자(CEO)나 이사들이 가장 많이 하는 항변은 "실무진이 한 일이라 나는 몰랐다"는 것입니다. 과연 법원도 이 변명을 받아들여 줄까요?
최근 대법원에서 기업 내부의 비자금 조성과 관련해 이사들의 '감시의무'를 매우 엄격하게 판단한 판결이 나왔습니다. 오늘은 일명 '상품권 깡'으로 비자금을 조성해 정치자금을 댄 사건에서, 직접 가담하지 않은 대표이사의 책임을 물을 수 있는지에 대한 대법원 판결(2024다305421)을 분석해 드립니다.
이 사건의 피고인 회사는 국내 굴지의 통신 기업입니다. 이 회사의 대관 업무를 담당하는 CR(Corporate Relations) 부문 임원들은 2014년부터 약 3년 5개월간 회사 예산으로 상품권을 구매한 뒤 이를 현금화하는 방식(일명 '상품권 깡')으로 약 11억 5천만 원의 부외자금(비자금)을 조성했습니다.
이렇게 만들어진 현금 중 일부는 국회의원들의 후원회 계좌로 입금되어 불법 정치자금으로 쓰였습니다. 이 사실이 밝혀지자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는 해외부패방지법 위반 등을 이유로 해당 회사에 거액의 추징금과 과징금을 부과했습니다.
이에 주주들(원고)은 당시 대표이사(피고 2)와 이사(피고 13 등)들을 상대로 "이사로서 감시의무를 소홀히 하여 회사에 손해를 끼쳤다"며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소송을 제기했습니다.
"대표이사와 이사들은 다른 임직원들이 불법행위를 저지르지 않도록 감시할 의무가 있다. 3년 넘게 11억 원이 넘는 비자금이 조성되었는데 이를 몰랐다는 것은 내부통제시스템을 제대로 작동시키지 않은 명백한 임무 해태다."
"우리는 CR 부문이 독자적으로 저지른 비자금 조성을 알지 못했다. 회사에는 윤리경영 규정과 내부회계관리제도가 구축되어 있었으므로, 우리는 감시의무를 위반한 것이 아니다. 또한, 이미 정치자금 일부는 돌려받았으므로 회사의 손해는 전보되었다."
이 사건의 핵심 쟁점은 **'직접 가담하지 않은 임원에게 어디까지 감시 책임을 물을 수 있는가'**였습니다. 이에 대해 원심(2심)과 대법원의 판단은 엇갈렸습니다.
원심은 대표이사(피고 2)의 손을 들어줬습니다.
피고 2가 비자금 조성을 알았거나 방치했다고 볼 증거가 부족하다.
내부통제시스템 구축 의무를 위반했다고 보기 어렵다.
이사(피고 13)의 경우 일부 책임은 있지만, 정치자금이 반환되어 회사의 손해가 회복되었으므로 배상할 필요가 없다.
대법원은 원심판결을 뒤집고, 대표이사와 이사의 감시의무 위반을 인정하여 사건을 다시 심리하라며 돌려보냈습니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습니다.
비자금 조성이 약 3년 5개월간 지속되었고 액수도 11억 원이 넘습니다. 이는 조직적이고 장기적인 범행이므로, 대표이사가 주의를 기울였다면 알 수 있었을 것입니다.
단순히 윤리경영 지침이나 매뉴얼이 '존재'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합니다. 대법원은 피고들이 비자금 조성을 방지하기 위해 구체적이고 실효성 있는 노력을 하지 않았고, 시스템 운영을 의도적으로 외면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원심은 정치자금 반환액만 계산했지만, 대법원은 이 사건으로 인해 회사가 미국 SEC에 납부한 거액의 추징금과 과징금 역시 이사들의 임무 위반과 인과관계가 있는 '손해'로 보아야 한다고 판단했습니다.
이번 대법원 판결은 기업 경영진에게 매우 무거운 메시지를 던지고 있습니다.
과거에는 대표이사가 구체적인 실무를 몰랐다고 주장하면 책임을 면하는 경우가 종종 있었습니다. 하지만 대법원은 "고도로 분업화된 대기업이라도 대표이사는 회사 업무 전반을 감시할 의무가 있다"는 점을 분명히 했습니다.
특히 주목할 점은 내부통제시스템에 대한 시각입니다. 법원은 단순히 '규정집'을 만들어 놓는 것을 넘어, 그 시스템이 실제로 작동하도록 관리·감독할 의무까지 요구하고 있습니다.
결국, 회사의 리스크 관리에 실패하여 거액의 과징금을 물게 된다면, 그 금전적 손해는 고스란히 경영진이 배상해야 할 몫이 될 수 있습니다. 이제 기업의 컴플라이언스(준법 감시)는 선택이 아닌 생존의 문제입니다.
회사 임원들이 '상품권 깡'으로 11억 원대 비자금을 조성해 정치자금을 댄 사건에서, 주주들이 대표이사에게 손해배상을 청구함.
원심은 "대표이사가 몰랐다"며 책임을 부정했으나, 대법원은 "내부통제시스템이 실질적으로 작동하지 않았다면 감시의무 위반"이라며 대표이사의 책임을 인정함.
단순 횡령액뿐만 아니라, 이로 인해 회사가 부담하게 된 미국 SEC 과징금 등도 이사가 배상해야 할 손해에 포함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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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 김미래 변호사 / 법무법인 리브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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