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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럽키진 Nov 25. 2022

맞벌이어서  아이 맡길 데를 찾고 계신가요?

남편을 육아 한가운데로 끌어오고 싶다면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을 시기가 되면, 맞벌이를 하던 부부도 고민을 하기 시작한다. 육아는 어떻게 할까? 아이를 돌볼 누군가를 찾게 마련이다. 선뜻 맡아주실 부모님이 계신다면 죄송스럽긴 하지만 마다할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친정엄마라면 더더욱 감사할 일이다. 거기에서 또 다른 비극이 시작될지언정 일단 덥석 잡고 만다. 우리도 같은 상황에서 고민할 여지는 별로 없었다. 친정어머니는 멀리 지방에 사시며 바쁜 농사에 이미 연세가 많으셨기에 기대하지 않았고, 시어머니는 아이 낳을 때 즈음되자 선수를 치셨다. 아이는 돌봐줄 수 없다고. 딱 잘라 말씀하시는 모습에 조금은 당황하기도 했으나 오히려 다행이라고 가슴을 쓸어내렸다. 주변에 친정이든 시댁이든 맡기면서 평안한 경우를 못 봤기에 혹시나 봐주신다고 할까 봐 신경 쓰고 있던 참이었다. 가끔 많이 힘들 때 한 번씩 봐주시면 모를까 했지만, 그 한 번도 맡길라치면 어찌나 눈치를 주시는지. 맡아주신다고 했으면 어쩔 뻔했는지.



 대학병원 간호사로 3교대 근무를 하고 있었고, 남편은 회사원이었다. 별다른 방법도 없었지만, 아이만큼은 고생하더라도 부모와 함께 시간을 보내는 게 맞다고 생각했다. 비록 맞벌이를 하므로 종일 함께 할 수는 없지만, 보고 싶을 때 보러 갈 수 있는 가까운 거리에 잠은 부모와 자는 쪽으로 결정했다. 3개월 산후조리 휴가를 마치고 어린이집에 보냈다. 마침 근처에 마땅한 곳이 있었다. 밤 근무에는 남편이 아이를 재우고, 오전에는 새벽에 나가야 하므로 남편이 어린이집에 데려다주고 출근했다. 대신 쉬는 날이 월에 10일 이상 되었기에 그날은 아이와 종일 있을 수 있다. 오후 2시에 출근하는 날은 아이와 계속 함께 있다가 어린이집에 맡기면 남편이 7시쯤 데리고 집에 오고. 이렇게 하면서라도 아이는 집에서 함께 지내고 싶었다.    



 처음엔 남편도 아이를 혼자 보기 무서워했다. 겁도 많은 데다 혹시나 무슨 일이 생기면 어떻게 할까 걱정도 되고, 백일도 안된 아이를 안아서 분유 먹이는 것도 그 무엇도 죄다 서툰 것뿐이었기에 두려웠을 것이다. 그런 상태인데 밤에 아내 없이 혼자 데리고 자야 한다니. 어쩔 수 없는 상황이었으니 사실은, 당연히 맞벌이를 해야 한다고만 생각했지 사직을 고려해 본 적은 없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신기하기도 한데, 간호사 9년 차로 매일 그만두고 싶다는 말을 달고 살 때였는데 그때는 전혀 생각지 못했다는 것이다. 아마도 당연히 일을 해야 한다고 생각했었나 보다. 남편도 울며 겨자 먹기로 한다고는 했는데, 천만다행으로 아이가 아주 잘 자주는 것이다. 2개월째 밤중 수유를 자연스레 중단할 만큼 일어나 '낑' 소리조차 내지 않고 잘 잔다.  이브닝 근무를 마치고 곯아떨어져 자는 날에는 먼저 일어나 분유를 달라고 울어본 적이 없을 정도다. 늦잠을 자고 일어나 분유를 줄 때까지 일어나지 않거나 아니면 일어나 옹알이를 하며 놀고 있다. 이런 녀석이 어디서 왔을까 감탄할 노릇이었다.



 "처제한테 아이 데리고 병원에 좀 가보라고 해. 잘 울지도 않고." 의사인 형부가 생후 6개월 딸을 보고 한 말이란다. 조심스레 언니가 전해주는데, 처음엔 의아했다. 아이는 순한 기질인 것뿐이고, 엄마와 상호작용도 잘하니 걱정이란 걸 해본 적이 없었다. 신생아, 신생아 중환자실 간호사로 근무한 지가 몇 년인데 하며 살짝 맘이 상하기도 했지만. 아이는 형부가 괜한 걱정을 할 만큼 잘 자라주었고, 언어도 빠르고 정서적으로도 안정되었으며 다재다능했다. 아마도 공교롭게 같은 해에 태어난 본인의 아들과 확연한 차이가 있어서 그렇지 않았을까 짐작한다. 순해도 이렇게 순할 수 있을까. 함께 밤을 보내야 하는 남편을 하늘이 도운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주변에서 부모님께 아이를 맡기는 것을 보면 안타깝기도 하고, 상황이 도저히 안되어서 그런 것이겠지만 얼마간이라도 시도를 해보면 어떨까. 만약 남편이 절대 아이와는 단둘이 있을 수 없다고 한다면, 다른 방법을 찾아볼 수도 있었겠지만 최대한 설득해서 성사시킨 것은 잘한 일이었다. 아니었다면 그 후로도 남편에게 아이를 맡기고 혼자 외출을 하는 일은 어려울 테고, 세 아이를 키우는 내내 혼자서 발을 동동 구르며 힘들었을 것이다.



 대부분의 남편들이 그렇다. 육아에서 멀치감치 떨어져 있다. 그 이유는 아이를 낳자마자 아이와 엄마 사이에 낄 틈이 없기 때문이다. 남편은 기회를 만들지 않으면서 안도를 했을지도 모르고, 해보려고 해도 아내가 불안해서 그 기회를 주지 않았을 수도 있다. 육아를 남편과 함께 하고 싶다면 태어나면서부터 강하게 트레이닝하자. 아이를 낳은 지 얼마 되지 않아 어디로든 맡겨 돌보게 한다면 남편은 처음에는 안타깝고 죄송스럽겠지만, 육아에서 벗어나 익숙해진다. 아이에게 무엇을 해주어야 하는지, 어떻게 놀고 대화해야 하는지, 함께 있을 때 어색해질 수밖에 없다. 부성애가 있는 아빠도 당연히 있겠지만, 확률적으로 엄마의 모성애와는 차이가 있다. 거리를 두고 싶어 그러는 것은 아니겠지만, 자연스레 멀어지는 구조가 된다. 그야말로 피나는 노력을 하지 않으면 겉으로만 아빠인 경우가 생길 수 있다.



  직장을 다니면서 그런 동료를 보았다. 친정어머니가 딸 일하라고 봐주기 시작했는데, 가까이 살면서도 사위가 육아에 신경을 쓰지 않는 모습을 보고 딸에게 불만을 쏟아냈고, 딸도 나름 남편이 마음에 안 드는 모습을 처음에는 엄마니까 말을 하다가 자꾸 친정어머니와 남편 사이에 갈등이 쌓이니까 나중에는 안절부절못하며 중간에서 힘들어하는 모습을 보았다. 그러나 그때는 이미 늦어버렸다. 골이 깊어질 대로 깊어져 버렸기 때문에.



 순한 기질의 아이가 아니었다면 상황이 어떻게 변했을지는 모른다. 그러나 애초에 우리가 키워보자고 했었으므로 노력을 했을 테고, 그 기간이 좀 짧아졌을 수는 있겠다. 3개월부터 아이가 어린이집을 가게 되니 수시로 감기에 걸리고 고열에 나중에는 천식 오기 직전까지 가서 17개월에 일을 그만두고 육아에 전념하게 되었다. 직장 스트레스로 10년을 시달리다 그만두고 아이와 종일 있으니 행복 그 자체였다. "역시 나는 육아 체질인가 봐" 하면서 결국 세 아이를 키우게 되었다. 순한 첫 아이인데도 불구하고 3년이 되어가니 힘이 들더라. 딱 돌 전까지 순둥이었다가 엄마가 일을 그만두니 바로 에너자이저로 변신! 환경에 따라 아이가 변하나 싶다. 밤새 책을 읽어달라 하고, 하루 종일 대화하고, 엄마와 서너 시간씩 퍼즐 맞추고, 놀이터에 한번 나가면 집에 돌아올 줄 모르고.. 에너지를 감당하기에 체력이 부족했지만 행복했다. 둘째는 원해서 준비를 했고, 셋째는 생각지 못했는데 살짝 당황스러웠지만 망설임 없이 낳았다. 지금 생각해보면 태어나서 제일 잘한 일이 아이 셋 모두 만난 일이다. 개성 강한 세 아이 모두 썰을 풀어내자면, 많다. 차차 풀어내려 한다.



 맞벌이를 그만둘 때, 아무래도 경제적인 부분이 제일 고민이다. 외벌이로 괜찮을까? 그러나 아이가 계속 아프고, 모세기관지염을 달고 살다가 천식 진단을 받기 직전이기에 결단을 내려야 했다. 선택할 여지가 없었다. 아이를 더 이상 어린이집에 맡길 수 없으니까. 남편에게 일을 그만둬야겠다고 말했을 때, 표정이 난감했다. 흔쾌히 답하지 않았었다. 갑작스레 가장으로서 부담으로 다가왔던 것이다. 그 당시 남편보다 더 벌이가 괜찮았기에 아마도 단번에 "그렇게 해야지"라는 말이 나오지 않았을 수도 있다. 그때는 그 속마음을 잘 헤아리지 못했다. 그만두고 몇 개월이 채 되지 않았을 때, "일 그만두길 정말 잘했어. 그때 내가 왜 망설였는지. 진작 아이와 함께 했었으면 더 좋았을 것을" 하더라. 물론 경단녀가 된 것은 아쉬웠지만, 그리고 몇 년이 지나서야 그 힘든 간호사보다 육아가 더 힘들다는 것을 깨달았지만 후회는 하지 않는다. 아이와 행복한 시간을 보낸 것으로 충분한 보상을 받았다고 생각했고, 육아를 하면서 다음에 사회에 나가 돈벌이를 할 준비를 하고 있었으므로. 현재는 세 아이를 키우면서 중, 고등학교 진로강사를 하고 공부방 운영을 준비 중이기에 미래는 밝다. 언제든 하고자 하는 일은 이루면 되기 때문에. 그럴만한 용기도 있고 최선을 다할 각오도 되어있다. 경제적으로 어렵지 않았던 것은 아니다. 맞벌이 때와 달리 수입이 적어져서 강제 절약을 해야 했고, 은근 스트레스로 우울해지기까지 하더라. 그런데 냉철하게 생각해보니 아이를 위하여 감수해야만 했던 거였고, 이틀 우울하다 회복했다. 부정적으로 받아들이면 무엇하리 하면서 좋은 마음으로 절약하는 습관을 들이니 또 지낼만했다.




 외벌이? 가능하다. 책임감을 느끼는 만큼 남편도 살길을 찾는다. 그리고 아이가 태어나면서 아무 도움 없이 함께 육아를 했기에 부부 사이가 더 끈끈하다. 물론 다투기도 많이 다퉜다. 그때는 서로 힘이 드니까. 해야 할 일은 많은데 피곤하고, 상대가 더 해줬으면 하는 마음에 서운하고, 미울 때도 많았다. 그러나 얼마큼 서로가 노력했는지 알기에 그런 과거는 잊히더라. 도저히 넘을 수 없는 한계를 넘은 동지애 같은 거라고 할까. 그래서 더 아이들에게 애착이 간다. 그렇다고 집착은 하지 않는다. 남편이 가끔 하는 말이 있다. "밖에 나가 일할 때 걱정이 없어서 좋아. 안정감이 있으니까 일도 더 잘되고. 고마워" 지금은 남편이 내조를 한다. 아이들은 커가고 우리 둘만의 시간이 조금씩 늘어간다. 마음만 먹으면 수시로 데이트가 가능하다. 아이들을 키워주시느라 고생하신 친정어머니와 시어머니의 눈치를 보지 않아도 된다. 깊이 파인 주름에 죄책감을 느끼지 않아도 되고, 손자 손녀 때문에 지옥살이 했다는 푸념을 듣지 않아도 된다. 그것만으로 족하다. 고생이 행복으로 오기까지 짧은 시간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내 선택에 감사한다. 순한 아이가 아니었더라도 맞벌이 기간은 좀 더 짧아질 수는 있었겠지만 같은 결정을 했을 것이다. 고생 끝에 낙이 오는 부부가 된 것은 우리가 어려운 결정과 노력이 있었기 때문이라 생각한다.



 육아를 병행하는 모든 맞벌이 부부를 응원한다. 독박 육아를 하는 엄마들도 더 힘껏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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