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능이라는 말은 편리하지만, 인간이라는 존재를 모두 담기엔 너무 좁다.
인간의 행동에는 수많은 결이 있고, 그 결들은 꼭 생존이나 번식을 향하지 않는다.
가령, 누군가와 캐치볼을 하며 웃음을 터뜨리는 순간을 떠올려보자.
공은 그저 공일뿐이다.
그걸 던지고 받는다고 유전자가 칭찬해 주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사람은 그 단순한 동작에서 이상할 만큼 큰 의미를 발견한다.
그 따뜻한 숨결 같은 순간이야말로 삶의 결을 바꾼다.
그러나 이 순간들조차 정말 본능과 무관한 걸까?
혹은 우리가 ‘의미’라 부르는 정교한 감정 구조도 사실은 더 큰 생존 전략의 부산물일까?
관계를 맺고, 서로를 돕고, 함께 살아가려는 감정은 결국 생존에 유리하다.
사회적 결속은 개체를 안정시키고, 그 안정은 종에게도 득이 된다.
그래서 어쩌면 의미, 사랑, 우정 같은 것들도 넓은 뜻의 생존 구조일지 모른다.
그런데 그런 식으로만 설명하면 인간이 가진 특유의 빛이 흐려진다.
인간은 때로 완전히 비효율적인 행동에서 가장 깊은 자신을 드러낸다.
비 오는 날 굳이 밖에 나가 빗소리를 듣는다든가,
아무도 보지 않는 새벽, 창밖 어둠을 바라보다 뜬금없이 마음이 저릿해진다든가.
효율로 환원되지 않는 순간들.
그 순간들이야말로 존재의 섬세한 결이 드러나는 자리다.
생명은 오늘도 필사적으로 번식을 추구한다.
그러나 인간은 그 과정 속에서 전혀 다른 무언가 또한 만들어낸다.
기억.
기쁨.
슬픔.
의미.
모래나 돌은 아무것도 바라지 않는다.
하지만 인간은 바란다.
만들고, 흔들리고, 사랑하고, 때때로 무너지고, 다시 일어난다.
그리고 또다시 공을 던질 힘을 찾는다.
이 기묘한 반복.
아마 그것이 인간이라는 생명이 가진 가장 독특한 방식일 것이다.
“사람은 살아남기 위해 사는 것이 아니라, 살아가며 의미를 만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