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각(忘却)

by Memento

나는 정답이 없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정확히 말하면, ‘정답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판단 자체가 하나의 결론처럼 작동하고 있다는 것도 알고 있다. 그럼에도 나는 계속해서 진리를 원한다. 머리는 이해했지만, 본능은 이해하지 못했다.


이 모순이 나를 붙잡고 있다.


사람들은 보통 이렇게 말한다. 삶은 적당히 타협하며 살아가는 것이라고. 모든 것을 끝까지 밀어붙이면 결국 자신이 부서진다고. 그래서 우리는 어느 지점에서 질문을 멈추고, 일상을 유지할 수 있는 정도의 납득으로 돌아온다. 그리고 그 행위를 ‘성숙’이라고 부른다.


하지만 내가 느끼는 것은 조금 다르다.

내려놓는 순간, 그것은 해결이 아니라 포기처럼 느껴진다.

이해했기 때문에 멈추는 것이 아니라, 견딜 수 없기 때문에 멈추는 것처럼 마치 도피처럼 느껴진다.


여기서 나는 망각이라는 개념을 생각하게 된다.

사람이 살아가기 위해 사용하는 장치로서의 망각.

모든 것을 잊는 것이 아니라, 살아가기 위해 필요한 만큼만 잊는 행위.


여기서 또 다른 질문이 생긴다.

그것은 지혜인가, 아니면 자기기만인가.


나는 알고 있다. 인간은 모든 모순을 끌어안고 살 수 있는 구조가 아니다. 끝까지 사유하면 일상은 유지되지 않는다. 매 순간 모든 판단의 근거와 도덕적 정당성을 검증하며 살아간다면, 우리는 단 한 걸음도 제대로 움직일 수 없을 것이다.


그래서 인간은 모순을 보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보고도 잠시 보류한다. 일종의 판단 유보다.


문제는 진실의 부재가 아니라, 진실의 과잉일지도 모른다는 것을.


충분히 생각하면 삶이 선명해질 것이라 믿었지만, 오히려 반대였다. 실제로는 행동이 느려지고 결정이 무거워졌다. 이해가 늘어날수록 선택은 쉬워지지 않았다.


플라톤은 정의를 포기하지 않았고,

니체는 진리 의지를 의심했고,

카뮈는 부조리를 인정하면서도 자살도 도약도 거부했다.


이들 모두 방향은 달랐지만 공통점이 있다. 질문을 중단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인간은 결론보다 질문에 오래 묶여 있는 존재다.


여기서 또 하나의 선택지가 생긴다.

모른 척하고 살아갈 것인가,

아니면 알면서도 계속 나아갈 것인가.


모른 척하는 삶은 편하다. 사회는 그 삶을 자연스럽다고 말한다. 대부분의 인간관계와 사회 구조 역시 그 전제를 기반으로 유지된다. 그러나 나에게 그것은 평온이라기보다 둔화처럼 느껴진다.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기능하는 것처럼 느껴진다.


그래서 나는 묻게 된다.

망각은 행복일까, 아니면 패배일까.


나는 두 가지 상태 사이에 서 있다. 모른 척하고 기능하며 사는 삶과, 알면서 무게를 감당하는 삶. 전자는 평온하지만 둔화처럼 느껴지고, 후자는 분명하지만 가볍지 않다. 어느 쪽도 완전히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이것이 나의 실존적 긴장이다.

망각을 받아들이면 삶은 유지된다. 그러나 그것이 자기기만처럼 느껴진다. 반대로 모든 것을 붙들면 삶이 흔들린다. 그렇다고 질문을 포기할 수도 없다. 내가 진정으로 두려워하는 것은 무엇일까?

지금의 나는 완전한 진리를 요구하지 않기로 한다고 말하면서도, 그 말을 끝까지 믿지 못한다. 나는 여전히 기준을 원하고, 동시에 그 기준이 확정될 수 없다는 것도 안다. 결론을 향해 나아가지만 결론을 확신하지 못하는 상태에 머문다.

망각은 아마 선택이 아니라 인간의 작동 방식일 것이다. 완전히 기억하면 삶이 멈추고, 완전히 잊으면 삶의 의미가 사라진다. 그 사이 어딘가에서 우리는 살아간다


하지만 나는 아직 판단과 행동을 유보한다. 무엇이 진실인지 확정하지 못한 채, 그 물음을 놓지 않는다.


과거에는 무엇이든 언젠간 결론에 도달할 수 있을 것이라는 자신이 있었다. 이번에는 그런 것이 없다.

정말 진리는 존재하지 않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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