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기억할 만큼 어린 나이에서부터 쭉 일기를 써왔는데 고등학교, 대학교 때는 거의 빠짐없이 일기를 썼었다. 졸업하고 직장 다니고 다시 학교 가고 직장도 서너 번 옮겨 다니는 흔한 20~30대를 살면서 일기 쓰는 횟수는 점점 줄어들고 특별한 일이 있을 때만 쓰게 된다.
그렇게 일기를 쓸 때면 세심한 A형의 진면목을 최대 발휘해 몇 날 몇 시에 어디서 뭐 했고 뭐라고 말했고 등등 아주 세세하게 적는다. 일기를 쓰는 이유는 내가 어디서 뭘 했는지 기억해내고 싶었고 그냥 정신없이 흘러가는 데로 살고 싶지 않았다. 그리고 나는 어떤 사람인가를 항상 기록해두고 싶었다.
청소년기를 해외에서 보내서 그런지 한때 난 심한 정체성 문제에 시달렸다. "나는 누구인가?"와 같이 끝도 없이 생각에 빠지게 되는 질문으로 오랜 시간 고민을 했었다. 사춘기 때 누구나 겪는 문제이겠지만 난 대학교 때까지 내 정체성에 관한 질문이 끊임없이 이어졌고 지금도 가끔은 고민하지만 다행스럽게도 바쁜 일상에 그 고민은 잠시 잊혔다.
솔직히 나를 괴롭힌 고민은, "나는 다른 사람에게 어떻게 보이고 싶은가?"였다.
오랜 시간 동안 나는 내 안에 있는 나를 보지 못하고 다른 사람이 보는 나의 모습에만 연연했었다. 이렇게 보이면 안 되니까, 저렇게 보이면 안 되니까 이렇게 행동해야 해, 저렇게 행동해야 해. 물론 다른 사람에게 잘 보이려고 노력하는 것은 좋지만 자신까지 버려가며 상대에게 맞추려고 하는 것은 건강한 정신을 가지고 있는 사람의 행동이 아니다.
영어에서 이러한 상태를 "insecure"라고 하는데 말 그대로 "안전하지, 안정되지 못하다"는 거다. 나는 오랫동안 나 자신의 모습에 만족하지 못하고 insecure 했었다. 반대로 자신감 있는 사람은 "confident"라고 하기도 하겠지만 이는 어떠한 일에 관해서 자신이 있을 때 많이 쓰이는 좀 강도가 센 형용사이다. 자신감 있고 자신을 사랑하는 사람에겐 "secure"라는 말이 어울린다.
I'm secure. = I feel good about myself. I love myself.
이렇게 고민하고 일기 쓰고 다시 나 자신에 대해서 읽고 공부하고 하는 동안 많이 secured 해졌다. 아님, 나이가 들었다는 증거일지도... 나이가 좀 들었을지언정 나는 지금 내 모습이 좋다. 비록 피부는 23살 때만큼 탱탱하지 않더라도 요즘엔 내가 많이 영글었다는 생각이 든다.
브런치 스토리에 계정을 만들 때 이렇게 주절주절 일기가 쓰고 싶어서 만들었다. 브런치 스토리가 일기보다 좋은 점은 내가 다른 사람의 일기도 읽어볼 수 있고 다른 사람들 사는 모습도 볼 수 있어서 좋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들으면 감동하고 감사하고 배우면서 나 자신에 대해 더욱 secured 해 질 수 있도록 노력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