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때 작가가 되는 것이 꿈이었다. ‘글쟁이는 돈 못 번다고 다른 걸 골라보라’고 하시던 고모가 생각난다. 그때 나는 열 살 남짓, 한글을 배우고 이제 겨우 몇 해가 지났을 뿐이었다. 어떻게 그 어린 내가 작가가 되고 싶다는 마음을 품었을까, 되돌아보면 참 신기하다. 엄마가 사준 세계어린이 명작 전집을 겨울방학 동안 다 읽고 났을 때였을까? 아니면 교내 글짓기 대회에서 상을 받고 난 후였을까? 장래희망을 작가로 삼을 만한 정확한 계기는 흐릿하지만, 나의 첫 장래희망은 분명 작가였다.
전문적인 글쓰기 교육을 받아본 적도 없고, 어느 누가 '이런 장래희망을 가져라'라고 아이디어를 주입시키지도 않은 상태에서 그런 꿈을 가질 수 있었던 것은, 신이 나를 만들 때 창의력 한 스푼 정도 넣지 않았나 싶다. 이왕 이면 한 사발 부어주시지 아쉬움이 따른다.
열다섯 살 때 미국 유학길에 오를 때까지 나의 장래희망은 작가였다. 실은, 유학 시절에도 꽤 오랫동안 '작가'라는 꿈을 마음에 품었고 누가 '너 커서 뭐 하고 싶어?'라고 물어보면 '난 writer가 되고 싶어'라고 고민하지 않고 말할 수 있었다. 하지만 영어를 배우기 급급했던 나는 한글로 무얼 쓴다는 것이 무척 부담스러워졌다. 절대로 그럴 일은 없겠지만 한글을 쓰면 애써 배운 영어를 잊어버리게 될까 봐, 나의 작은 두뇌가 혼란을 일으킬까 봐 한글을 쓰지 않았다. 사전을 뒤져가며 일기도 영어로 썼다.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그렇게 애면글면하며 글을 쓰려했었다.
영어를 배워가며 쓰는 글이 얼마나 잘 지어졌을까? 그래도 나는 고등학교 졸업반이 되어서는 과감히 Creative Writing이라는 수업에 도전하여 한 학기 동안 수강했었다. 말 그대로 창의적인 글쓰기인데 문학 장르에 대한 이론적인 강의는 거의 이해하지 못했고 글쓰기 과제가 주어지면 그저 열심히 써냈다. 금발의 단아한 단발머리에 왜소한 체구를 가진 영어선생님은 매월 잘 쓴 글을 뽑아 학교 신문에 실어주었다.
반 친구들의 글이 하나씩 신문에 실렸고 '내 글이 영어의 한계를 극복하지 못했구나' 하고 실망하려는 찰나 학교 신문에 내 글이 실렸다. 학기가 끝나는 시점이었다. 다른 친구들의 글이 학교 신문에 실렸을 때 은근히 부러워하며 내 글도 실리길 바랐지만 막상 현실로 다가오니 발가벗겨진 것처럼 창피했다. 괜히 부족한 내 영어실력을 탓했지만 지금까지도 내 글을 누가 읽는다면 얼굴이 붉어진다.
그렇게 나는 오랫동안 글쓰기를 짝사랑하며 나 혼자 글을 써왔다. 조금 더 열정을 쏟았더라면 소설이나 시나리오나 다른 사람들에게 선보일 만한 글이 나왔을 텐데 남몰래 내 이야기 쓰는 것에 만족했다. 대학을 졸업하고 나서는 작가가 되고 싶다는 꿈은 아예 잊어버린 듯 하루빨리 취직해서 사회의 일원이 되려고 노력했다. 이 직장, 저 직장 옮겨 다니며 나의 쓸모를 입증하고 인정받는 데 열중했다.
하지만 글쓰기는 나의 오랜 연인이 아닌가. 술 마시면 옛 애인을 찾아가듯이 회사에서 스트레스받고 연애가 잘 안 되어서 속상할 때 나는 글쓰기를 찾아갔다. 글을 쓰면 엄마에게 안기는 것처럼 편안했고 아무 거리낌 없이 나 자신이 될 수 있었다.
작년 겨울 브런치 스토리를 만나면서 글을 조금 더 자주 쓰기 시작했다. 브런치 스토리에는 문예 창작 전공자, 전문 분야 기자, 출간 작가 등 글쓰기 전문가들도 많지만 글솜씨 좋은 평범한 이웃들도 많다. 전문작가는 아니더라도 나처럼 글쓰기 좋아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을 브런치 스토리를 통해서 알게 되었다. 생면부지의 브런치 작가들에게 동질감을 느꼈다. 얼굴 사진 없이 활자만 보아도 그들의 모습이 그려지는 듯했다. 보이지 않은 내 안의 말들이 활자와 만나 얼굴과 같은 아이덴티티를 갖게 된다.
내가 글을 쓰는 스타일을 보면 일필휘지로 써 내려가는 것이 아니라 매우 오랫동안 수정을 해가며 글을 쓴다. 오래 붙들고 있어야 그나마 읽을 만한 글이 나온다. 피아노 칠 때 하논 연습곡으로 손가락을 풀듯이, 손가락을 풀어야 글이 조금씩 써진다. 그런 나에게 브런치 스토리는 글 쓰기 위한 동기부여도 해주고 다른 브런치 작가들의 글을 읽으며 배움도 얻어 갈 수 있는 소중한 공간이다. 어릴 적 장래희망을 아직 이루지는 못했지만 그 꿈을 상기시키고 이어갈 수 있게 해 주었다.
사랑하는 연인이 서로를 위해 존재하는 것처럼 글쓰기와 나는 오랜 연애 중이다. 불 같이 활활 타오르는 열정적인 연애나 가슴 아픈 독한 연애는 아니더라도 항상 내 곁에 있는 오랜 친구 같은 느낌이다. 내 생각의 기록, 내 삶의 발자취를 남겨 놓으면서 나를 위해 글을 쓰지만 내 글솜씨가 나날이 발전해서 누군가를 위해 쓰인다면 더욱 좋겠다. 고모가 돈 못 번다고 하던 ‘글쟁이’가 나는 되고 싶다. ‘~쟁이’는 작가를 낮잡아 부르는 말이라고 하지만 ‘글쟁이’라고 불릴 만큼 글을 잘 쓰고 싶다. 돈벌이가 되지 않아도 계속하고 싶은 것이 있다면 진정한 사랑 아닐까?
아이들이 책을 읽고 나면 독후 활동을 하는데, 책에 관한 질문에 항상 등장하는 문제가 있다. '글쓴이의 의도는 무엇인가?'라는 질문인데 ‘정보를 주기 위하여, 어떠한 주제에 대한 주장 또는 설득을 하기 위하여, 재미를 주기 위하여’ 이 세 가지 선택지 중에서 답을 고르는 것이다.
이 질문을 본 후로 나는 글 쓸 때마다 생각한다. '나는 왜 이 글을 쓰는가?' 내가 글을 쓰는데 원대한 목적은 없다. 단지, 나의 글이 재미있었으면 좋겠다. 내가 재미있는 글을 좋아하는 것처럼 말이다. 어렵고 힘들고 구질구질한 현실도 위트 있게 쓰고 싶다. 우리네 인생은 가까이서 보면 비극, 멀리서 보면 희극이라고 하지 않던가? 누군가 내 글을 읽고 '맞아! 나도 그랬어' 하며 마음이 한결 가벼워진다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하다. 덤덤하지만 재미있는 글, 지루하지 않은 글, 가볍고 무해하고 편안한 글을 쓰고 싶다. 박장대소든, 미소든, 실소든 내 글을 읽고 웃음이 나왔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