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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새봄 Apr 05. 2024

세종대왕은 왜 장영실을 귀양보냈을까? 그것이 궁금하다.

세상을 떠난 사람 중 만나고 싶은 사람에게 꼭 물어보고 싶은 말은?

세종대왕은 왜 장영실을 귀양보냈을까? 그것이 궁금하다.    


       

나는 어렸을 적부터 역사에 관심이 많은 아이였다. 손에 잡히는 대로 닥치는 대로 역사서를 끼고 읽던 시절이 있었다. 그저 사극이 좋아서, 더 궁금해서 찾아보았다.      

그런데 역사적인 내용 중에서도 대충 얼버무리는 듯한 느낌의 구간이 몇 군데 있는데. 그것이 바로 세종대왕 시절의 장영실과 얽힌 가마 사건이다.      

역사적으로 큰 인물이 동시대에 살면서 엄청난 업적을 이루어 낸 것은 누구나 다 알 것이다. 세종대왕의 전폭적인 지원으로 장영실은 다양한 과학 기구를 발명하고, 천문과 기상학 연구에 큰 발전을 가져왔다.      

이러한 업적뿐만 아니라 엄격한 신분제도가 있었던 시절의 파격에 파격을 거듭한 행보를 보여준다.      

지방의 관노비였던 장영실을 천문기기 등을 제작한 공을 인정해 면천 시켜주고, 반대와 설득을 거듭해 정4품의 호군에까지 오르는 기염을 토했다.      

분명 뛰어난 사람을 보는 안목이 있는 세종대왕이 있었고, 타고난 재주와 노력을 한 장영실이 있었기에 조선시대 눈부신 과학 발전을 이룬 것이리라. 이 두 사람의 찰떡같은 호흡이 없었다면 세계 최고의 기술 과학 강국으로서의 면모를 갖추지 못했을 것이다.      

주변의 강대국 사이에서 실리외교를 펼쳐 국익을 챙겼던 세종대왕에게도 천문학은 중국의 천자만이 가질 수 있는 특권이라는 미명아래 대놓고 천문학 연구를 못 했을 것이다. 그런데도 앙부일구, 자격루, 옥루, 혼천의 측우기 등 천문을 넘어서 역법, 별자리, 시간 측정에 이르기까지 중국을 넘어선 우리 고유의 과학 발전을 이루었다.      

아마도 중국 측면에서 보면 이 둘의 존재가 눈엣가시가 아니었을까 추측해 본다. 세종대왕의 경우에는 중국의 입장에서 보더라도 좌지우지할 수 있는 존재가 아니었기에 만만한 장영실이 제거 대상이 되지 않았을까? 라는 생각이 든다.      

가마 사건이라는 흐릿한 주장을 내세워 장영실을 당시의 역사에서 사라지게 했다.      

왕의 힘으로도 지켜주지 못하고 총애하는 신하를 가슴에 묻고 모든 흔적을 지워야 했던 세종대왕의 마음이 어떠했을까? 말하지 않아도 그 아픔이 느껴지기는 한다. 하지만 그래도 나에게 발언권이 있다면 이것 하나만은 묻고 싶다.      

“임금님, 장영실에게 왜 그러셨어요? 다른 방법은 없었을까요?”라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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