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박의 맛
새벽 5시에 눈이 떠진다. 집에서 길들여진 습관은 밖에 나와서도 바뀌지 않는다. 다행히 차박지 바로 옆에 화장실이 있어서 일을 보고 아침 세수까지 하는 호사를 누려본다.
차박여행을 나오면 부족한 것을 느껴야 평상시의 당연한 것들을 감사함으로 여길 줄 알게 된다. 집에서는 흔하디 흔한 수건을 챙겨 오지 못해 도둑 세수를 하고 휴지로 닦아보니 알겠다.
수건이 이렇게 소중한 존재라는 것을... 아침에 늦게 눈을 뜨면 해가 중천에 걸려서 아침이 오는 걸 당연하게 느낀다. 새벽의 이 어스름한 시간을 온전히 맛보고서야 환함의 소중함도 알게 되었다.
차박여행을 하면서 가장 감동인 순간은 남들이 보지 못하는 풍경을 오롯이 전세를 내어 나 혼자 감상할 때이다. 오늘 새벽이 그랬다. 독산성의 산세와 성벽이 낮에 보았던 그것과는 사뭇 달랐다.
보적사의 어린 동자상도 새벽에 보니 더 아련해 보였다. 어둠 속에서 밝혀진 보적사의 불빛을 보며 왠지 더 마음이 편해졌다.
어둠 속에서 쌓아 올린 작은 돌탑들을 보며 누군가의 소원이 이뤄지기를 그것이 어둠에서 밝음으로 바뀔 때처럼 그들의 마음에 온기로 닿기를 한참을 바라보다 산책을 이어갔다.
이상 기후여서인지 10월의 마지막 밤은 하나도 춥지 않았다. 바람도 계절감도 느껴지지 않았다. 그저 쾌적한 날의 차박 하기 좋은 날로 기억되는 꼭 그런 밤이었다.
이번 차박도 역시 일상에서 즐기는 베스트 여행 중에 하나로 간직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