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부모님으로부터 오늘 하루 공부방을 쉬겠다는 문자를 받았다. 뒤이어 보내진 문자에는 다음 한 달 동안 쉬고 중등부 올라가서 학습을 지속할 건지 말건지에 대해서는 아이와 상의해 보겠다는 문자를 받았다.
바로 핸드폰을 열고 번호를 찾아 통화를 하였다. 자세한 말씀은 안 하시지만 학생들끼리 문제가 생긴 것이 틀림없었다. 요 며칠 사이가 좋던 두 녀석이 데면데면하고 따로 오기 시작하면서 이상하다고 여기던 차다.
초등 6학년 고학년부터 중등부까지 공부가 힘들어서 그만둔 경우보다는 친구사이가 멀어지거나 싸웠을 때가 더 많다. 특히 남학생들보다 여학생들이 압도적으로 많다.
편 가르기 하거나 친구를 소유하고 싶은 마음이 커질 때 이런 일들이 발생한다. 결석한 친구와 가장 친했던 친구가 등원하자마자 따로 불러서 이야기해보았다.
역시나 둘 사이에 문제가 있었다. 서로 절교했다 한다. 어떤 방식으로 이야기를 했는지 물어보니 장문의 문자를 넣었다고 한다. 그리고 답으로 왜 그러냐고. 내가 뭐 잘못한 거 있냐고 그 친구가 사과했단다. 그런데 이 친구는 단호했다. 받아줄 마음이 없단다. 여러 가지 요인이 있겠지만 나는 그 속에서 나의 어렸을 적 모습이 떠올랐다.
중고등시절, 그리고 대학교시절 마음을 다해서 정제된 글을 썼다고 생각하고 보냈던 손 편지가 상대에게 내 마음과는 다르게 닿지 않아서 오해를 불러일으켰던 일들이 하나둘 생각났다.
지금처럼 핸드폰이 있던 시절도 아니고 즉각적인 반응이 없던 시절에도 글이란 것이 오해를 풀기에는 역부족이었다. 글에는 상대방의 표정과 말투 등을 느낄 수 없기에 상대방이 어떻게 받아들이냐에 따라서 완전히 다르게 받아들이수 있겠구나 싶었다.
뉘앙스_어감 따위의 미묘한 차이 그것에서 오는 느낌이나 인상이 글에서는 느낄 수 없다. 전체적인 내용으로는 파악이 된다 할지라도 사람의 관계에서는 직접 만나서 이야기하고 풀어야 할 부분이 분명히 있다.
아이들의 모습을 보면서 또 나의 모습이 겹쳐지고 어떻게 하면 잘 해결될 수 있을지 고민해 보는 과정에서 말과 글 사이의 간극을 느낄 수 있었던 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