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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채연 Jan 25. 2022

나는 왜 글을 쓸까?

거의 매일 일기를 쓴다는 것


일상에서 흥미로운 소재를 발견했을 때, 무기력하고 혼란스러울 때, 그것을 기록으로 남기는 일은 어떠한 말로 형용할 수 없이 짜릿하다.

글은 읽는 것도 좋지만, 쓰는 것은 더더욱 좋다. 스물 다섯 해를 살며 개인적으로 느꼈던 그 이유는 이렇다.


* 크게 특별한 일이 없었던 하루에도 생기를 불어넣어 준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처음 일기를 쓰기 시작하는 때는 대부분 초등학교 1학년, 담임선생님에 의해 타의로 한 글자, 한 글자 삐뚤빼뚤 적어 내려 가기 시작할 때 아닐까.

나 또한 마찬가지였다. 1학년은 아직 유치원을 막 벗어난 나이이기에, 선생님께서는 글자를 쓸 줄 모르는 아이들을 배려하기 위함이었는지 '그림일기'를 숙제로 내주셨었다. 학교가 끝나고 서점을 운영하시던 어머니가 퇴근하실 때까지 기다렸다가 어머니와 함께 집에 돌아오면 얼른 그림 일기장에 그날 있었던 일을 그리고, 쓰고는 했다.

그렇지만 매일 학교와 미술 학원, 어머니가 운영하시던 서점에서 많은 시간을 보내다 보니 일기에 쓸 내용은 금세 고갈되어버리곤 했다. 그래서 사소한 일이지만 조금이라도 재미있었거나 슬펐던 일, 또는 칭찬을 받기 위함인 스스로의 미담까지 정확하지 않은 글자로 써 내려가고는 혼자 뿌듯해하곤 했다. 그렇게 일기를 쓰다 보면 별 볼 일 없어 보였던 하루 동안에 기억할만한 일들이 꽤 많이 일어났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학교에서 길을 잃어서 울었던 일, 내가 좋아하는 남자애가 다른 여자애를 좋아한다고 했던 일, 준비물을 가져오지 않아 혼날 뻔했던 친구를 도와준 일 등을 적어놓은 그때의 일기를 보면 아직도 생생하다.

이렇게 아무에게도 들려주고 싶지 않은, 그러나 누군가 알아주었으면 하는 이야기들을 적은 일기는 여덟 살 어린이에게 숙제라기보다 또 하나의 비밀 친구처럼 느껴졌을 것이다.


* 글쓰기 실력이 성장한다.

교환일기를 주로 쓰곤 했던 중*고등학생을 벗어나 2016년, 대학생이 되었다.

대학교 1학년 초반에 썼던 일기를 보면 낯선 그라운드에서 적응하기 위해 애썼던 꽤나 우울한 기록이 가득하다. 그러던 어느 날, 고등학교 친구가 함께 여행을 가자고 해서 일본 오사카에 가게 되었고, 일본에 도착한 순간 이방인이 되어 전철에 타는 것부터 음식을 주문하는 일까지 아주 사소한 일들이 익숙지 않은 일이 되는 그 경험들이 너무나도 신비롭고 짜릿해서 그날부터 여행을 가지 않고는 못 배기는 사람이 되었다. 대학교 2학년, 3학년 여름*겨울 방학마다 평일엔 유치원에서 실습을 하고 주말엔 식당, 뷔페, 키즈카페 등에서 아르바이트를 해서 여행 경비를 모았다. 많지 않은 금액으로 여유 있게 갈만한 곳은 일본이었기에 방학 때마다 오사카, 교토, 후쿠오카, 치바, 가마쿠라 등 그 나라의 구석구석을 돌고 나니 외국에서 살아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고, 대학교 4학년, 휴학을 하고 도쿄에서 한 달 정도를 지내게 되었다. 그때부터 도쿄에서 있었던 일들을 기록할 수 있는 방법을 찾다가, '블로그'를 시작하게 되었다. 그러다 조금씩 달리기 시작하는 댓글을 보며 나 혼자서만 이 글을 읽는 것이 아니라 누군가가 이 글을 읽는다는 것을 자각하게 되고 나면서부터 조금 더 신중하고, 타당하게 글을 써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처음 도쿄에서 쓴 글을 읽다 보면 충분한 사유 없이 결론을 내리는 것에 급급해서 설득력이 부족한 글도 있고, 맥락이 자연스럽게 연결되지 못하는 글도 있다. 지금도 목표 중 하나인 담백하면서 깊이 있는 글을 쓰는 것이 쉽지 않지만 그래도 처음에 쓴 글과 비교해보면 조금이나마 자연스러워지고 있다는 나름대로의 확신이 있기에 글쓰기를 여전히 손에서 놓지 않는다.


* 나만의 책 출판 기회를 얻을 수 있다.

휴학생이었을 때, 도쿄 한 달 살기는 시작일 뿐이었다. 남은 휴학 기간 동안은 더 넓은 세상을 구경하기 위해 문구점에서 5개월 간 아르바이트를 하였고, 그 후 약 118일 간 세계 여행을 하였다.

미리 예약했던 남녀 혼용 18인실 도미토리에서 나를 제외한 모두가 남자여서 당황스러웠던 노르웨이, 버스킹 하는 사람들을 보며 그림을 그렸던 영국, 배낭을 잃어버렸던 스페인, 순례길을 걸었던 포르투갈, 시골에 있는 현지인의 집에 초대받았던 조지아, 마음에 드는 인도 사람을 만나 사랑을 고백했던 인도까지. 스마트폰 동영상과 사진으로는 담을 수 없는 세상을 블로그와 공책 일기장을 번갈아가며 최소 이틀에 한 번 씩 아주 솔직한 단어와 문장을 사용해 기록으로 남겼다. 그리고 한국에 돌아와 118일간 있었던 일들을 더 많은 사람들과 공유해야겠다고 다짐했다. 다행히 그동안 빼곡히 적어놓은 일기가 있었고, 그 일기를 토대로 여행 에세이를 출판할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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