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미가 다른 이름으로 불리어도 향기롭듯이
“ 스스로 나를 발견해야 진정한 내가 되는 거야
어린 시절 네 자신이 어떤 걸 원했는지
진지하게 기억을 떠올려 보도록 해
남의 이야기를 들어봤자 자신을 잃을 뿐이야
의미는 스스로 찾아내는 거야 “
(영화 괴물의 아이 중)
l 마지막 강의, 랜디포시 지음, 살림 출판사
l 한 줄 요약
췌장암으로 시한부 인생을 선고 받은
한 교수의 마지막 강의
제목이나, 한 줄 요약 뿐 아니라
이 책의 장르가
자기계발서라는 점에 비추어보았을 때,
선뜻 펼치고 싶은 욕구가 들지는 않을지도 모른다.
삶을 현명하게 살아가는 데 필요한 처세술은
이미 서점이나 도서관에 있는 책 뿐 아니라
특히 최근에는
인스타그램이나 유튜브 같은 sns에서도
어렵지 않게 접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때로는 이런 생각이 떠오른다.
“다수의 인정을 받은 사람이 한 말이라고 해서,
꼭 그것이 정답일까?”
“미처 발견하지 못한 오류가 있지는 않을까?”
“보편적인 내용을 정답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아닐까?”
개인에게 맞는 인생 전략은,
다채로운 경험을 통해
개인 스스로가 설정하고
조정해나가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자기계발서는 옳지 않다, 는 것이 아니라
자기계발서는 부록이지,
적어도 답지는 아니라고 생각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이 책의 리뷰 또한
저자가 제시한 세부적인 ‘인생 전략’ 보다는,
보다 거시적인 관점에서 진행될 예정이다.
예컨대
‘저자는 왜 이러한 내용의 책을 썼는가’와 같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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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질_어떤 사물을 그 자체이도록 하는
사물의 고유한 성질
본디부터 가지고 있는 사물 자체의 성질이나 모습
시한부 선고를 받은 대학교수인 저자는
마지막 강의의 제목과 내용을 고민하며
이런 생각을 한다.
“무엇이 날 유일무이한 사람으로 만들까?”
“무엇을 내가, 나만이, 진실로 제공할 수 있을까?”
그리고 이런 결론을 내린 후,
담당자에게 재빨리 이메일을 작성했다.
‘지금까지 내가 이룬 모든 것들과
내가 사랑하는 모든 것들은
어린시절 가졌던 꿈과 목표에 뿌리를 두고 있었다.
46년간 지녀온 그 모든 특별한 꿈들(무척 의미심장한 것에서부터
지나치게 황당무계한 것까지) 이야말로 남과 다른 나만의 개성이 아니던가.’
저자는 ‘암이 날 개성있게 만들지는 않아’
라고 생각하며,
암에 대한 내용은 쓰고 싶어하지 않았다.
대신 자신의 어린시절 꿈, 목표를 개성,
즉 ‘자신을 유일무이하게 만들어주는 것’으로
생각하고 책의 첫장부터 마지막장까지
이에 대한 내용으로 채웠다.
대학교수, 컴퓨터과학자, 남편, 아버지,
친구, 형제, 췌장암 말기의 환자 등에서 벗어나
보다 ‘본질’적인 자신의 모습을 고민한 결과
46년간의 꿈을 곧
자신의 본질이라고 정의내린 것이다.
“당신은 자신이 생각하고 있는 것보다 훨씬 멋져”
“그런데 왜 나는 그런 식으로 생각하는 걸까?”
라고 나는 질문해보았다.
“그건 당신이 자신의 절반으로만 살기 때문이야”
라고 그녀는 시원스럽게 말했다.
“나머지 반은 어딘가에 아직 손도 대지 않은 채
남아 있을 거야”
(출처 무라카미 하루키_양을쫓는 모험 중)
그리스 로마 신화 속 등장인물인
반인반마 켄타우로스.
조화롭지 않은 상체와 하체를 가졌다.
어쩌면 켄타우로스처럼,
내 절반은 맞지 않는 것으로
이루어져있지는 않을까?
다수에게 인기가 많은 것이 곧,
내 것이라고 생각한 것은 아닐까?
1. 실존주의
그럼 맞지 않는 것, 맞는 것이
타고나면서 정해져있는 걸까?
이에 대해 실존주의자 사르트르는 말한다.
“사물은 본질이 실존에 앞서지만,
인간은 실존이 본질에 앞선다”고.
예를 들어 의자는 앉을 수 있는 것이라는
본질을 갖고 만들어지지만,
인간은 살아가면서
자신의 쓸모, 목표 따위를 만들어간다는 것이
사르트르를 포함한 실존주의자들의 주장이다.
2. 기독교
기독교에서는 ‘소명’을 이야기한다.
영어로 calling
실존주의와는 반대로
어떤 특별한 목적을 위해
부름을 받은 것,
초월적 존재가 개인에게 부여한
목표나 계획을 의미한다.
3. 사진작가 니키리
나는 누구인가,
본질과 비슷한 의미인 정체성에 대해
사진작가 니키리는
자신이 어떤 집단에 속해있는지,
누구와 함께 있는지에 따라 변화하는 것이라고 했다
그러니 정체성을 확고히 정의하려는 노력을
사람들이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이야기한다.
니키리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어느 한 집단이나 분야에 매몰되어
가장 중요한 가치를 잊지 말기를,
‘나’라는 존재의 본질적 유일함 앞에서는
그 어떤 것도 중요하지 않다. ’
‘나의 본질을 세상에 맡길 수도,
아니면 내가 정할 수도 있다.
어찌되든 크게 상관없다.’
본질은 만들어가는 것일까,
타고나는 것일까?
아니면 사회에 의해 만들어지는 것이든
내가 선택하는 것이든
그건 중요치 않은 문제인걸까?
리뷰를 시작할 때,
본질이란 어떤 사물의
고유한 속성이라고 작성했다.
그 고유한 속성이란게 어떤 것일까.
사르트르가 말한 실존에 반대되는 개념?
기독교에서 이야기하는 소명?
니키리가 말하는 개인의 정체성?
그 고유한 속성이라는 것을
저자는 꿈, 목표로 정의내리고
죽기 전 자신의 꿈을 되새기며
달성해나가는 과정에서 필요한 전략들을
전달하고자 책을 썼다.
여전히 나의 본질이 무엇인지,
그것이 과연 타고나는 것인지,
아니면 만들어가는 것인지,
혹은 사회에 의해 만들어지는 것인지
정의 내리기 어렵다.
그러나 상황과 환경에 따라 변하는 것이 아닌
변치않는 ‘고유’한 속성이 곧 본질이라면,
본질은 어쩌면 저자가 죽기 전까지
탐구했던 ‘꿈’을 의미하는 것은 아닐까.
하루키 소설 ‘양을 쫓는 모험’ 주인공 처럼
자신의 절반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기에,
책과 강의를 통해 가능한 많은 사람들에게
삶의 교훈을 전달하고자 하는 마지막 꿈까지도
실현시킨 저자의 모습이 경이로운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