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m 높이에서 다이빙을
11.23 목요일 일기
첫째 날 저녁에 길거리에서 만난 사진사 이야기를 깜빡했네.
파씰 마을에서 아이들과 평온하고 즐거운 시간을 보낸 후, 숙소로 돌아가기 전 큰 야시장에 들렀었다.
삼각대 위에 작은 사이즈의 검은색 카메라를 설치한 후 교복을 입은 여학생 두 명을 찍어주는 사진사를 보았다.
혼자 여행이라 찍어 줄 사람이 없어서 고민이었는데 잘되었다 싶었다.
(외국인이라서 사진사가 혹시 가격을 배로 부를까봐) 촬영이 끝날 때까지 기다렸다가 여학생 두 명에게 얼른 다가가서 금액을 물어보았다.
그랬더니 주고 싶은 만큼 주는 방식이라고 했다.
좋아. 사진 결과물을 보고 마음에 들면 많이 주고 그렇지 않으면 적게 줘야지, 하고 결정하고 사진사에게 다가갔다.
“여기 말고 조금 더 밝은 곳에서 찍어줄 수 있나요?”
“그럼 이 쪽으로 가야해요”
길거리에서 사진을 몇 장 찍다가 어쩌다보니 말이 트여서, 대화가 계속 이어졌다.
“혹시 먹거리를 파는 곳을 알려줄 수 있나요?” 파씰 마을에서 제대로 먹은 것이 주스, 망고 뿐이라 배가 고팠다.
“가는 김에 저도 같이 가죠“
사람이 정말 많았다.
구름 인파 가운데, 한국인이 있는지 요리조리 눈을 돌렸다. 세부는 그래도 한국인이 많이 가는 관광지 중 하나인데, 아무리보아도 한국인은 보이지 않아 적적한 기분이 들었다.
‘이 곳에 외국인은 혼자인가?’ 라는 사실이
순간적으로 스치듯이 소외감이란 감정을 느끼게 만들었다. 유학이든 취업이든 어떠한 이유로든,
먼 타지에서 홀로 서기를 하는 이들의 마음이 어떤 것일지 그 전체를 가늠하는 것은 불가능하겠으나 아주 조금은 알 것 같았다.
시장 곳곳을 돌아다니며 설명해준 사진사에게 고마운 마음이 들어서 내가 살테니, 같이 맛있는 걸 먹자고 제안했다.
마침 둘 다 허기가 진 상태여서 본격적으로 구미가 당기는 것을 찾아 바삐 움직이기 시작했다.
“세부에서는 어떤 음식이 유명해요?”
“고기를 좋아한다면 레촌이라는 음식을 꼭 먹어봐야해요”
파란색, 빨간색 천막 아래에서 많은 노포들이 음식을 팔고 있었다.
레촌을 파는 가게도 여럿 있었는데,
우리가 관심있게 레촌을 쳐다보니 들어오라고 손짓을 했다. 잠시 기다리라고 하더니 원하는 양 만큼 고기를 잘라 접시에 내주었다.
우리나라에 있는 족발 같았다.
한 입 먹어보니 더 족발 같았다. 우리가 아는 그 맛보다 더 짭짤한.
꾸밈없이 말해보자면, 세부에서 먹었던 음식 중 대단히 맛깔났던 음식은 없었다.
그 이유는 첫 번째, 간이 세기 때문이다.
평소 국밥을 먹을 때도 다대기(양념)를 넣지 않고
담백하고 삼삼하게 먹는 걸 좋아하는 편이어서 그런지 더 짜게 느껴졌다.
두 번째 이유는, 후텁한 날씨이다.
후터분한 공기가 계속 주위를 감싸고 있으니 특히 밖에서 따뜻한 음식을 먹을 경우 더욱 그 음식의 ‘미미’를 느끼기가 어려워서 아쉬웠다. (더위를 워낙 잘 타서 그런 것 같다.)
* 추가로, 한국에 돌아와서 사진사가 메일로 보내준다던 사진을 확인하기 위해 메일함에 여러 번 들어가봤지만 찾을 수 없었다. 촬영 버튼을 제대로 누르지 않은 것인가, 메일을 제대로 적어가지 못한 것인가. 아무튼 아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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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 3시에 일어나 준비를 시작했다.
그리고 4시에 버스 탑승.
첫 탑승자는 나였다.
두 번 째로 탄 사람은 필리핀 여자였는데, 얘기를 해보니 나이는 서른 살, 이름은 캐서린이었다.
캐서린 언니와 대화를 조금 나누다가 잠이 들었다.
서늘한 에어컨 바람과 덜컹거리는 승차감에 중간 중간 잠이 깨기를 반복했다.
새벽 5시, 6시, 7시, 8시.
중간에 한 번 정차한 후 스노쿨링 장소에 도착한 것은 9시쯤이었던 것 같다.
야자수로 만들어진 그늘 아래 작은 움막이 있었고 그 곳은 정말 편의점과 다름 없었다.
초콜릿, 아이스크림, 과자, 음료수, 생리대, 담배 등 다양한 물건을 판매하고 있었다.
앳된 얼굴의 여자 한 명이 손님들이 주문한 음식을 가져오고 있었는데, 알고보니 주인 아주머니의 딸이었다. 자기 딸이 얼른 시집을 갔으면 좋겠다고 말하는 주인 아주머니. 이 숲 속에서는 어떻게 사람을 만나서 결혼을 하는 걸까.
진심으로 궁금해졌다.
구명조끼를 입고 물 속으로 들어갔다.
얕은 물 속에서 바다거북이를 볼 수 있었다.
육각형 모양의 울퉁불퉁한 등딱지를 이고 기어가는, 아니 유영하는 바다 거북이를 코 앞에서 구경한 후 물 위로 올라왔다.
약간 웃긴 사실이 하나 있는데,
구명 조끼를 입으면 당연하게도 물에 뜬다.
그렇기 때문에 물 속으로 들어가기 위해서는 구명 조끼를 벗거나, 아니면 투어 가이드들이 위에서 등을 힘껏 누른다. 물 속을 구경할 수 있도록.
나는 가이드가 등을 눌러주었고,
바다거북이와 함께 있는 모습을 다른 가이드가 수중 촬영해주었는데 물 속에서 그런 내 모습을 떠올려보니 조금 웃겼다.
로프로 튜브 몇 개를 연결한 후, 세 네 명씩 팀을 이루어 더 깊은 물 속으로 이동했다.
수심이 깊은 곳으로 갈 수록 차가웠고 물은 짙은 파란색을 띄고 있었다.
밑은 어떨까 궁금해서 물 속으로 얼굴을 파 뭍어보니 그 밑에 정어리 수십, 수백 마리가 몰려있었다.
회오리 모양으로 떼를 이루고 있는 정어리떼의 모습은 경이로웠다.
한 명씩 가이드와 함께 밑으로 들어가 정어리떼와 수중 촬영을 한다고 하길래 차례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런데 문제가 발생했다.
계속해서 일렁이는 파도 때문에 멀미가 나기 시작했다.
‘안돼... 여기서 돌아가면 후회하고 말거야’
머리 속에서 여러 번 돌아갈지 말지를 고민하다가 결국 가이드에게 말을 했다.
그랬더니 구명조끼 목덜미 부분을 붙잡고 물 밖으로 끌고 나갔다.
바다거북이와 사진 찍겠다고 가이드가 세게 등을 눌렀을 때보다 더 웃긴 모습이었다.
그 와중에 구명조끼도 안 입고 한 손에는 나를 붙들고 그 깊은 바다에서 모래 사장까지 수영해서 간 가이드가 대단하기도 했고 고마웠다.
그 다음 투어는 ‘카와산 캐녀닝’ 이었다.
이게 뭐냐면, 산 속 군데 군데 흐르는 계곡 물을 따라 수영도 하고 비탈길을 오르다가 낭떠러지(?)가 있으면 다이빙을 하는 거다.
수영은 좋지만 다이빙은 무서워서 안 하고 싶었다. 그리고 비탈길 오르는 것도.
그런데 투어 전 날, 여행사에서 원래 진행하려던 투어 참여자가 적어 다른 투어로 변경해야 할 것 같다고 연락이 왔길래 어쩔 수 없이 응한 것이었다.
이미 새벽 4시부터 투어를 시작한 데다가 수영도 실컷해서 지쳤는지, 참여 인원 10명 중 절반은 카와산 캐녀닝을 하지 않고 버스 안에서 기다리겠다고 답했다.
고민이 되었다. 4시간 동안 산을 올라야 한다니.
그 때, 옆자리에서 짝꿍처럼 오늘 하루를 함께 보낸 캐서린 언니가 자기는 카와산 캐녀닝을 가겠다고 했다. 결국 함께 가기로 하고 혹시 빠질 수도 있으니 귀걸이는 빼서 가방에 넣어두었다.
이끼 탓에 미끄럽고 높은 바위를 넘고 넘다 보니 다이빙을 할 순간이 되었다.
알고보니 처음 시작이 1m고 그 다음부터는 3m, 4m,7m,10m 이런 식으로 점차 높아지는 식이었다.
그 사실을 몰랐었기에 마냥 신나는 마음으로 1m높이에서 다이빙을 했다.
다이빙이라고 하기도 민망할 정도로 낮은 높이지만 뭐든 처음 경험은 설레고 기억에 오래 남는 법.
물과 살의 마찰이 기분 좋게 시원하게 느껴졌다.
그러다 영롱한 물 속을 유영하기도 했다.
또 다시 비탈길을 오르다보니 이번엔 4m 에서 뛸 차례라고 했다.
멀리서 보면 당연히 할 수 있을 것 같았는데,
막상 4m 높이의 절벽 꼭대기에 서니, 여기서 떨어지면 큰 일이 날 것 같아 발이 떨어지지 않았다.
결국 다이빙 포기. 은근히 실망한 낯빛의 가이드. 하지만 정말 무서운걸요.
걷고, 수영하다보니 어느 새 10m 높이의 절벽에 다다랐다.
캐서린 언니가 먼저 뛰었음에도 불구하고 그 앞에 서니 두려움에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았다.
그 때 가이드가 옆에서
“남!(내 이름) one more step!" 라고 했다.
‘그래 한 걸음만 내딛으면 되는 거지 뭐!’ 하고
달려가다가 낭떠러지 밑으로 한 걸음을 뻗었다.
확실히 떨어지는 시간은 더 길었다.
그리고 물 속으로 깊-게 풍덩!
코를 막아도 물이 들어오고 물과의 마찰 때문에 아프기도 했지만
성취감과, 내려오는 길에 영화 ‘아바타’같은 풍경을 바라보며 유유히 물 위를 배영할 때의 기분은 정말 달콤했다.
10m 에서 뛰어내린 후, 내려오는 길에 더 높은 절벽을 가리키며 가이드가 장난을 쳤다.
“남, 여기서도 뛰어내려야 해.”
“아니, 그건 자살 행위에요.”
그러자 다들 엄청 웃었다.
투어가 끝나고,
기다리고 있던 사람들에게 무용담처럼 자랑스레 다이빙 후기를 들려주고 가이드들이 준비해준 치킨과 밥, 면요리를 먹었다. 맞은 편에 앉은 25살 대학생들이 이것저것 질문을 해왔다.
“이민호 인기 많아요?”
”한국에서 누가 제일 인기 많아요?“
아무래도 필리핀에서 이민호가 꽤 인기가 많은 듯했다.
식사를 마친 후 공용샤워장에서 샤워를 하고 버스에 탑승했다.
숙소에 도착하니 저녁 아홉 시.
숙소 가는 길에 사람들이 슈퍼 앞에 옹기종기 모여 맥주 한 캔씩을 손에 들고
시끌시끌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이 정겹고 유쾌해보여 그 모습을 아빠에게 보여주고자 영상통화를 걸었다. 그러자 술을 권하는 현지인들. 반 잔 정도 얻어마시고 숙소로 돌아가 뻗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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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부에 대한 감상이랄까,
어땠냐고 묻는다면,
포근했다고 말하고 싶다.
그들은 여유롭고, 웃음이 많았다.
기억에 남는 한 가지 일화가 있다.
투어 중 바디안 해변에 잠깐 들렀는데, 다른 사람들은 대부분 해변을 구경하지 않고 벤치에 앉아있겠다고 했고, 캐서린 언니와 나만 서로 비키니 입은 사진을 열심히 찍어주고 있었다.
시간이 꽤 많이 지체된 것 같아서 미안한 마음에 눈치를 보며 얼른 돌아가자고 하는 나와 달리,
언니는 아무렇지않아했다. 돌아가보니, 어느 누구도 버스를 탈 준비를 하지 않고 있었다. 아무도 우리를 재촉하지 않아서 신기하기도 하고 오히려 조금 뻘쭘해지는 순간이었다.
여행 전,
세부에 대해 알아보다가 필리핀은 더운 지방이라 그런지 게으르고 행동이 느린 특성이 있다는 글을 어딘가에서 본 적이 있다.
그들이 게으르고 우리가 부지런한 건지,
아니면 그들이 여유가 있고 우리가 조급한 건지,
어떤 관점에서 바라보는가에 따라 달라진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이러한 관점은 여행자의 태도와 표정에도 드러난다고 생각한다.
그들이 게으르다고 생각할 수도, 여유있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다만 여유롭다고 생각하는 편인 이유는,
우리나라의 빨리빨리 문화에 대한 싫증과 여유로움에 대한 갈망이 투사된 듯 하다.
더불어 이왕이면 ‘긍정적인’쪽으로 관점을 잡는 것이 여행을 할 때 그들과 더 긴밀히 교류하고 마음 깊이 친밀해질 수 있는 방법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