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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민혁 Jun 17. 2024

그 시절의 '연애 도사' 그게 나였다.

여러분들의 연애를 위하여

학창 시절 여러분들의 주변에 한 명쯤 있던, 연애는 하지도 않으면서 남들 연애 상담이나 들어주고 있던 친구가 있을 것이다. 그 시절 여러분의 그 친구 그게 나였다.


고등학교 1학년 공부에 대한 압박감이 확 다가올 시절 나는 공부에는 영 관심이 없었다. 뭐 아주 관심이 없었던 건 아니지만 공부보다 더 관심 가는 것이 나에게는 있었는데 그것은 바로 연애에 관한 것이었다. 고등학교 1학년 '17살' 사랑이라는 것을 잘 알 나이는 아니지만 누가 누군가를 좋아한다는 사실만으로 여기서 난리 저기서 난리를 치던 그 시절의 1학년 8반 고등학생들과 거기에 포함되어 있던 나는 그 누구보다 연애에 대해서 열정적이었다. 그 중심에는 의도치 않았지만 내가 있었는데 사소한 장난을 기점으로 그들의 '연애 도사'가 되어버렸다.


사건의 시작은 학기 초, 작년까지 각기 다른 중학교에 다니던 36명의 아이들이 새로이 고등학교 1학년 8반의 교실에 입성하였다. 학기 초라면 서로 데면데면한 사이라 어색하게 인사하는 것이 일반적일 텐데 그 당시 우리 반은 유독 친화력이 좋은 친구들만 모였는지 금세 다들 친해져 반 단톡방은 물론이요 남자 단톡방, 여자 단톡방이 금방 만들어졌고 활동 또한 활발했다. 특히나 16명의 남자아이들은 신기하게도 누구 하나 소외되는 사람 없이 모두 친해졌고 매 쉬는 시간마다 교실 뒤 서 있는 책상에 둘러서서 서로의 개인적인 이야기를 했었다. 대부분 그 나이의 이제 막 친해진 철없는 남자아이들이 하는 이야기는 크게 세 가지였다. 중학교 성적, 게임 그리고 '연애' 예를 들면 이런 이야기


"너 이때까지 몇 명 사귀어 봤냐?"

"나 2명 너는"

"난 1명 난 순정파야 인마"

"너네 뭐냐 난 남고라서 여자는 꿈도 못 꿨는데.."


번 되지도 않는 연애 경험을 밝히며 과거의 연애, 짝사랑, 그리고 고백을 받았던 이야기까지 앞서 말한 게임과 중학교 이야기도 했지만 주로 연애 이야기를 많이 하며 시간을 보냈다. 매일 그런 이야기를 하니 얼마 지나지 않아 서로에 대한 과거 연애 이력이나 짝사랑 이력은 거의 다 알게 되었고 그들은 슬슬 현재의 짝사랑 대상은 누구인지, 현재 잘 되고 있는 대상이 있는지에 대해서 궁금해했다.


하지만 과거의 사랑 이야기는 추억이라 생각하며 흔쾌히 이야기하던 그들은 현재의 사랑 이야기는 타격이 직접적으로 오기에 선뜻 먼저 이야기하는 사람이 없었다.


진전 없이 서로의 과거 이야기만 도돌이표처럼 하던 어느 날 집에 귀가해 휴대폰으로 재밌는 것을 찾던 나에게 중학교 시절 친구가 이름 궁합테스트라며 사이트를 하나 보내왔었다. 총 세 명을 1, 2, 3 순위로 적은 다음 궁합 보기를 누르면 되는 간단한 테스트라 흥미가 생긴 나는 그 당시에 괜찮게 생각했던 친구들을 한 명 한 명 채워나간 뒤 궁합 보기를 눌렀다. 그러나 나의 눈앞에 뜬 것은 결과창이 아니었다. 대신 떠 있는 '당신은 속았습니다'라는 글이 적힌 창. 그 상태로 30초 한참을 바라보다 적은 내용이 친구한테 간다는 것을 깨달은 뒤 바로 우리 반 남자 단톡방에 보낼 생각을 하였다. 


사이트를 보내준 친구에게는 오히려 고맙다는 인사를 던지고 나는 바로 1학년 8반 남자 단톡방에 그 사이트를 올렸다. 우리의 단톡방에 아무렇지 않게 호기심이라는 덫을 놓고 나는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내가 잠든 동안 대부분의 순진한 아이들이 덫에 걸려들었고 수집된 정보들은 차곡차곡 나의 휴대폰 안에 쌓였다. 쌓이는 정보와 비례해 우리 반 남자아이들의 분노도 쌓여갔고 아침에 일어나 학교에 도착한 나는 그 분노를 고스란히 받아야 했다.


늘 그렇듯 쉬는 시간에 1학년 8반의 교실 뒤에 모인 우리들은 평소와 달리 험악한 분위기가 감돌았고 나는 나를 죽이겠다는 일념하나로 모인 그들에게 둘러싸여 열심히 해명과 사과를 했다. 그로 인해 최종적으로 이르렀던 결론은 내가 그들을 최대한 도와주는 것이었고 다행히도 또래의 아이들보다는 연애경험과 이성에 대한 경험이 조금이나 많았던 나는 나름의 신뢰를 받으며 그들의 연애 상담을 시작하였다. 대략 십여 명 가량의 상담을 들어주며 한 달을 보냈다.


결과는 무려 한 반에서만 여섯 커플이 나오는 결과를 이끌어냈다. 그것도 다른 반의 개입 없이 순수하게 우리 반에서만 여섯 커플이 탄생한 것이다. 학창 시절을 보낸 여러분들은 이 결과가 실로 어마무시하다는 것을 알 것이다. 감히 자신 있게 말하지만 좋아하는 사람이 겹치지만 않았어도 나는 더욱더 엄청난 결과를 낳았을 거라 생각한다. 이러한 자신감과 결과를 바탕으로 나는 그들의 연애 도사가 되었고 지금 글을 쓰는 이 순간에도 한 번씩 연애 상담을 하러 연락이 온다.


비록 나는 그 1년을 솔로로 지냈지만 그런 건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모순적이게도 내가 연애하는 것은 그렇게 절실하지 않았고 나의 연애는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몰랐기 때문이었다. 어찌 보면 제삼자이기에 남들에게 과감한 고백을 하라는 지시도 하였고 호감을 표현하라는 지시도 했다. 워낙 친화력이 좋은 아이들이었기에 그런 행동들이 좋은 결과로 이어졌었던 것이라 생각한다.


이러한 경험이 이후의 나에게도 도움이 되기도 했다. 남에게 무언가를 가르칠 때 가장 공부가 많이 된다고 하지 않던가 그때의 경험이 그 이후로 나의 이성과의 만남에 큰 도움이 됐다고 생각한다.


이 글을 읽는 여러분들도 혹시 연애가 하고 싶다면 남의 연애사를 열심히 들어보는 것을 추천한다. 무슨 일이든 남의 이야기를 주의 깊게 들어준다면 그 사람은 나름 좋은 사람이라 생각되니.


현재의 내 친구들이자 과거의 순수한 청년들에게 심심한 사과를 전하며 나는 또 다른 누군가의 연애 도사가 되러 떠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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