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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민혁 Jun 17. 2024

왕관을 쓴 자 그 무게를 견뎌라

(1) 학생회장을 하게 될 줄이야

갓 스무 살 이제 대학교를 막 입학한 2018년도 어느 대학교의 한 18학번 신입생으로 들어온 나는 학생회의 인솔하에 면접 때 봤던 학교의 캠퍼스를 돌고 있었다. 그 당시의 나는 나보다 나이가 많은 사람들은 무조건적으로 불편해하고 존경했기에 교수님보다 먼저 본 2018년도의 우리 과 조교님과 학생회장 형은 그 누구보다 하늘 높이 있던 존재였다. 초, 중, 고등학교의 반장과는 확연히 다른 아우라가 느껴졌달까. 대학생활에 대해서 아무것도 모르는 신입생의 눈에는 행동 하나하나 위압감이 느껴졌었다.


그러한 학생회장 형을 처음 가까이서 마주하고 이야기 한 건 신입생 환영회. 오롯이 신입생만을 위한 자리이니만큼 학생회와 신입생을 제외한 다른 재학생은 없었다. 주량이 약했던 친구들은 하나둘씩 떨어져 나가고 점점 소수의 인원만이 남게 되면서 조금 더 학생회장 형과 가까워지게 되었고 잘 곳이 없어 길바닥에서 자야 할 운명을 지닌 신입생의 나를 자신의 집에 재우기로 약속까지 하게 되었다.


주로 술게임을 많이 했던 신입생 환영회는 아무래도 술게임에 무지했던 신입생들이 많이 불리하였고 그중 술을 좀 마신다 싶은 친구들은 집중적으로 공격받았는데 그중 한 명이 나였다. 신입생 치고 나름 술게임을 잘하는 편에 속해 방어는 잘했지만 나보다 최소 1년 많으면 3~4년을 더 다닌 학생회 임원들의 술게임 짬을 따라가기에 벅찬 건 사실이었다. 견고했던 방어선은 점점 흐트러지기 시작했고 그 틈 사이로 소주는 계속 들이쳐 결국 내 정신을 함락하기에 이르렀다. 그렇게 내 생에 두 번째의 블랙아웃이 일어났고 눈을 뜨고 났을 때에는 이미 많은 일이 벌어지고 난 뒤였다.


취한 나에게 직접적인 피해를 입은 사람 중 한 명인 학생회장 형은 자신이 피해본 일을 내가 부끄러워할 만한 일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지금까지도 철저히 지켜주었고 그러한 사실은 신입생의 나에게도 그리고 지금의 나에게도 존경심을 가지게 할 만했다. 더군다나 2018년도의 학생회는 과거부터 지금까지 뛰어넘은 학생회가 없다고 평가될 만큼 운영을 잘했던 학생회였다.


너무나 즐거운 신입생 생활을 보낸 나는 학생회장이란 자리에 범접할 수 없는 존경심을 느꼈고 막연하게 학생회를 한 번 해보고 싶다고 느끼게 되었다. 하지만 군대를 가야 한다는 현실에 발목을 잡혀 당장의 학생회는 참여하지 못한 채 군생활을 하게 되었다. 그 후 전역을 하고 복학을 할 때쯤 틈틈이 학교에 놀러 간 것이 도움이 되었는지 학생회 제의가 들어왔다. 학생회를 해보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았지만 집안 사정과 학교 생활에 다시 한번 적응해야 하는 상황으로 인해 전역한 뒤 2년 동안 학생회는 꿈만 꾼 채로 지나갔었다.


그렇게 학생회는 거의 포기한 채 학교를 다니던 2022년 10월 즈음 그 당시의 학생회장 형에게 연락이 왔다. 간단히 술을 한 잔 하자는 연락, 무엇인가 부탁하려는 느낌도 있고 술 마시는 거 자체도 좋아했기에 흔쾌히 술을 마시러 나갔다. 처음엔 시답지 않은 이야기로 술잔을 기울이다 슬슬 나오는 본격적인 이야기. 나를 부른 목적은 아니나 다를까 학생회 관련 부탁이었다. 하지만 예상과 벗어난 점이 하나 있었는데 단순히 학생회 임원이 아니라 무려 2023년도 학생회장 자리를 부탁하는 것이었다. 물론 학생회가 하고 싶었던 건 사실이었지만 학생회장은 의미가 다르다는 것을 알고 나 또한 완전히 자신이 없었기에 처음엔 거절을 하였다. 하지만 거듭되는 부탁과 주변인들의 추천 그리고 나 자신의 코로나 19로 인해 변화된 학과의 분위기를 예전처럼 되돌리고자 하는 욕망은 내 마음을 돌리기에 충분하였고 결국 나는 나와 함께할 학생회 임원을 찾아 나서기에 이르렀다.


원래 같으면 조금 더 이른 시기에 임원들을 찾고 공약을 준비했어야 했는데 고민하는 사이에 시간이 좀 지나가 버려 조금 다급한 상황이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생각해 놨던 부학생회장 후보들에게는 죄다 거절당하고 부장과 차장도 다 합쳐서 3명이 모자란 상황이었다. 절망적이던 상황 속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최후의 보루인 마지막 부학생회장 후보에게 자리를 제의했고 계속된 설득 속에 부학생회장으로 영입하였다. 그 후 부족한 자리는 복학하는 학생과 임원들의 인맥을 동원하여 채워 넣은 뒤 공약을 준비했다.


막연했던 학생회의 꿈을 학생회장으로 시작하게 될 것은 예상 못했지만 그때 그 시절 내가 존경했던 학생회장의 모습이 될 것을 다짐하며 우리 과의 화려한 재림을 위해 나는 우리 학생회 임원들과 함께 첫걸음을 내디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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