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혼의 무게를 잴 수 있을까?

영혼의 과학: 누군가를 잃은 후 우리가 느끼는 어떤 무게에 관하여

by 김이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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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여고괴담 두 번째 이야기'에는 이런 일기가 등장한다. '그러나 없다. 아닌가, 있나. 없는 것 같아. 아니야, 있어. 없다고 했지. 그것은 거짓….' 영혼에 대한 과학자들의 생각도 이와 비슷했던 것 같다. 영혼은 있는 것 같기도 하고, 없는 것 같기도 한 아리송한 존재였다. 여느 장기처럼 해부학적으로 확인할 수도 없었다.


이에 1907년, 미국 매세추세츠 주의 명망 있는 의사 '던킨 맥두걸(Duncan MacDougall)' 박사가 영혼의 존재를 과학적으로 밝히려는 연구를 시작했다. 영혼이 눈에 보이지도, 손에 잡히지도 않는 것이 아닌, 명백한 실체를 가진 물질임을 확인하고자 했던 것이다. 그는 양로원에서 임종을 앞둔 6명의 사람을 대상으로, 이들이 누운 침대 아래에 초대형 저울을 설치해 이들이 죽는 순간 일어나는 몸무게의 변화를 쟀다. (영혼의 무게를 물리적으로 측정하고자 한, 놀라운 발상이다!) 그 결과, 줄어든 몸무게의 평균값은 '21g'이었다.


21g! 막 숨을 거두는 순간 사람의 몸에서 21g이 줄어 들었던 것이다. 그것이 몸을 떠난 영혼의 무게라면, 자유시간 초코바 1개의 무게인 36g에도 못 미치는 그 무게 속에 우리의 영혼이 잘 압축되어 들어 있었던 걸까?


당시 과학자들은 그 정도 질량의 차이는 체내의 수분과 공기가 빠져나가면서 생길 수 있는 차이에 불과하다고 지적했다. 이에 맥두걸은 개를 대상으로도 같은 실험을 했지만 몸무게 감소를 확인할 수 없었다며, 영혼은 인간에서만 측정 가능한 고유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이는 너무 적은 피험자를 대상으로 한 실험이었고, 21g은 인간의 몸무게의 극히 일부분에 불과해 설득력이 부족했다. 심지어는 다른 과학자들이 이를 재현했을 때 같은 결과가 나오지도 않았다. 그래서 맥두걸의 실험 결과는 끝내 과학계에서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그러니 그 실험으로부터 한없이 많은 시간이 흐른 지금, 영혼의 무게를 재는 일이 가능하다고 주장하는 과학자는 더 이상 없다. 영혼을 비롯해, 수많은 초자연적 현상들이 어떤 조작과 트릭도 없는, 현상 그 자체의 물리적 측정을 조건으로 내건 과학자들 앞에서 힘을 잃었다. 유리 겔러의 숟가락 구부리기 마술이 거짓임을 밝힌 인물로 유명한 '초능력자 사냥꾼'이자 마술사였던 제임스 랜디(국적 미국)가 1964년 증명 가능한 초자연적 능력을 보여 주는 이에게 미화 1천 불의 상금을 내건 일화는 이 이야기를 논할 때 빠지지 않는다. 1천 불의 상금은 이후 화제에 힘입어 쑥쑥 늘어나 무려100만 불까지 올라갔지만, 2015년 그의 파라노말 챌린지가 종료될 때까지 아무도 상금을 타지 못했다. 한 마디로, 초자연적 현상은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그렇다면 우리가 죽었을 때, 우리의 영혼은 어디로 가는 걸까?


2013년 미국 미시건대학교 연구진이 쥐를 대상으로 한 뇌파 연구에 따르면, 심장이 멈춘 후 뇌마저 죽음을 맞는 마지막 20초~30초 동안, 뇌의 전 영역에서는 아주 폭발적인 뇌파가 검출되었다. 인간을 대상으로 한 실험 결과도 크게 다르지 않다. 2020년 캐나다 브리티시컬럼비아대학교 연구진이 의식불명 상태에 빠진 환자들이 숨을 거두기 직전 의식을 갖고 있는지를 뇌파 분석으로 확인한 결과, 의식불명 환자들에게서도 분명한 뇌파의 변화가 일어났다. 최후의, 최후의 순간까지 살아 있는 뇌. 뇌가 보여 주는 강렬한 뇌파는 마치, 꺼지기 직전 강하게 타오르는 촛불 같다. 100억 개가 넘는 뇌 신경세포들이 전기적 신호를 주고받는 상호작용으로 만들어졌던 '정신'은, 영혼은, 그렇게 찰나의 순간 빛난다. 그 후에는 뇌파가 완전히 사라지고 영원한 침묵, 죽음이 온다.


영혼은 단백질로 잘 빚어진 우리의 육체 속에 일시적으로 깃드는, 그러나 육체가 부서지면 한순간에 사라지고 마는 연약하고 무의미한 것에 불과한 걸까. 그런데 왜 그 일시적인 것의 기억이, 우리에게는 낭만이 되고 사랑이 되고 슬픔이 되고, 누군가를 떠나보낸 사람들에게는 괜찮은 듯 하다가도 가끔씩 아려오는 후유증으로 남는 것일까. 왜 우리의 마음은 서로의 가장 연약한 부분을 중력처럼 이다지도 끌어당겨 감싸 안는 것일까.




이제 나의 이야기를 하려고 한다. 나는 오랫동안, 언젠가 기회가 된다면 그 사람에 대한 글을 쓰고 싶다고 생각해 왔다.


2013년 겨울에 그를 만났다. 그는 나의 가족도, 친구도 아닌, 사회 초년생으로 함께 몇 개월간 서툴게 직장 생활을 한 인턴 동료였다. 그는 나보다 나이가 많았지만 비슷한 시기에 같은 회사에 인턴으로 들어왔고, 5개월 후 내가 회사를 떠난 후에도 그 회사에 남았다. 그 후에도 우리는 카카오톡으로 몇 번 서로의 안부를 묻곤 했는데, 그 어느 날인가, 여행을 좋아한다던 그 사람이 나에게 이런 약속을 했었다. 자신이 한때 인도 여행을 갔었는데, 그때 찍은 사진들이 참 예뻤다고. 우리가 다시 얼굴을 보는 날, 그 사진들을 보여 주겠다고.


그 사람은 여행을 무척 좋아해 남미에 배낭여행을 다녀온 적도 있고, 함께 여행하기를 즐기는 몇 살 연상의 여자친구도 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여자친구는 부산에 사는 사람이라고 했다. 그래서 기차를 타고 여자친구를 만나러 부산에 가는 일이 많다고, 그런데 그런 장거리 연애가 자신에게는 제법 체질이라고 했던 것 같다.


생각해 보면 그때의 나는 그렇게 바쁘지도 않았던 것 같은데, 누군가를 위해 내어줄 시간이나 마음의 여유가 없었던 것도 아닌데, 막상 회사가 아닌 곳에서 둘이서 얼굴을 보기에는 사뭇 어렵고 거리감이 느껴졌던 걸까? 그 사람이 보여 준다던 인도 여행 사진을 보지 못한 채 보자, 보자, 얘기를 하던 어느 날, 내가 그 사람과 함께 다녔던 회사의 같은 팀 선임에게서 난데없이 연락이 왔다. 그리고는 다짜고짜 연락받았어요? 했다.


선임은 그 사람이 불과 얼마 전 회사를 그만두었는데 어젯밤에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났다고, 그래서 그 팀 사람들이 조문을 간다는 통에 우리도 연락을 받았노라고, 시간이 되면 오늘 함께 조문을 가지 않겠냐 물었다.


나는 혼란스러웠다. 정신이 없는 가운데, 장례식장이 어디냐고 물었더니 인천이라고 했다. 우리 팀은 지금 갈 거예요. 같이 갈 수 있으면, 같이 가요. 선임의 말에 나는 지금은 갈 수 없어요, 회사에 당장 일이 있고, 조문을 갈 만한 차림으로 나오지도 않았어요, 허둥거리며 대꾸했다. 그러자 선임은 알겠다며, 아무튼 나도 소식을 알고 있어야 할 것 같아서 알려 주려고 전화를 했다며 그렇게 전화를 끊었다.


나는 그 사람의 장례식장에 가지 못했다. 7년이 지난 지금은, 왜 그랬는지 정확히는 모르겠다. 나는 무엇이 그렇게 황망하고, 무서웠던 것일까. 장례식장에 가서 마지막 인사를 하지 못한 걸 두고두고 후회할 거면서.


무슨 사고가 어떻게 났길래 사람이 세상을 떠날 수 있는지, 자세한 내막도 알지 못한 채 그렇게 그 사람과 헤어졌다. 며칠 후, 문득 생각이 나서 카카오톡을 보니 메시지를 보내면 당장이라도 답장이 올 것 같은 그 사람의 메시지가 그대로 남아 있었다. 인도 여행에서 찍은 사진들, 참 예뻤어요. 그 사진들, 보여 줄게요.




그 사람과 함께 회사를 다녔던 한남동에 1년에 몇 번씩은 우연처럼 찾아갈 일이 생겼다. 한남동 육교에 서면 함께 근무했던 회사 건물이 보였다. 회사가 이전하면서, 이제 그 건물에는 다른 입주사가 들어와 있었다.


정말 이상하게도, 그렇게 가깝지도, 서로에 대해 잘 알지도, 오랜 시간을 알고 지내지도 않았는데 나는 한남동 육교에 서면 꼭 그렇게 버릇처럼 그 사람에 대한 생각이 났다. 나는 그 순간 곁에 있던 사람들에게, 그 사람에 대한 이야기를 해 주었다. 그리고 그 사람에 대한 기억을 떠올리면 마음이 아프다고 말했다.


내 또래의 젊은 사람의 죽음을 처음 맞닥뜨렸기 때문일까. 그게 아니면, 더 이상은 보자, 라는 말을 할 수 없는 사이가 된 그 사람의 마지막 메시지들이 두고두고 마음에 남아 내 기억의 벽을 두드리기 때문일까.


7년 동안은 그랬다. 그렇게 혼자서 30대가 된 지금은, 그 사람에 대한 기억이 예전처럼 아프지는 않다. 다만, 나는 이제 그 사람에게 끝내 보내지 못한 답장을 보내고 싶다. 내가 지금도 당신을 기억한다고. 한남동 육교에 서서 당신을 생각하는 순간이면 무언가 내 마음에서 툭, 낙엽처럼 가볍게 떨어지면서 내 마음의 바닥을 치는데, 나는 그것이 당신이 존재했다는 증거라고 생각한다고. 당신의 영혼의 무게를 내가 느꼈노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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