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필멸이기에 '인간다움'을 갖는다
태어나니 엄마는 신이었고, 아빠는 왕이었다. 금수저도 이런 금수저가 없다. 커서는 키가 4미터70에 다다랐고, 테스토르테론이 넘쳐 초야권까지 행사하며 중뿔난 황소처럼 날뛰었다. 길가메시 이야기다. 기원전 2100년, 지금으로부터 4100년전 점토판에 새겨진 신화이자, 최초의 문학작품이다. 그는 야수에서 인간으로 바뀐 엔키두를 형제 이상의 친구로 삼게 됐다. 든든함은 커졌고 두려움은 사라졌다. 그들은 수메르의 제우스라 할 수 있는 엔릴 신이 지목한 삼목산 지킴이 훔바바를 처단하러 나섰고 계획대로 처단했다. 이어 길가메시는 사랑과전쟁의 신 이슈타르의 미움을 사 하늘에서 내린 황소와도 싸우게 되는데, 그 역시 처치한다. 두 번이나 신성모독을 저지른 이들에게 발끈한 신들은 엔키두에게 죽음을 내린다. 버디의 죽음을 통해 길가메시는 처음으로 죽음의 현존과 그 공포를 뼈 속 깊이 느낀다. 이 때부터 영웅서사는 실존서사로 바뀐다. 이후 길가메시는 불멸을 찾아 떠나지만, 결국 필멸의 인간으로 돌아온다.
20대에 그저 호기심에 읽었던 길가메시는 이번엔 웅장했고 처연했다. 인간이 문자로 남긴 최초의 이야기의 주제는 ‘불멸’이었다. 사실 불멸말고 무엇이 있겠는가. 내일 무슨 일이 닥칠지 모르는 인간에게 너무나 정확한 뼈때리는 진실은 죽는다는 사실 한가지니까. 인간의 삶을 수렴해 보면 결국 파스칼이 말한 “인간은 태어날 때 사형선고를 받은 것”으로 귀결된다. 그러나 인간이 필멸이라는 사실은 인간만이 가진 특권일 수도 있다. 무슨 궤변이냐는 돌팔매가 날아온다. 인간은 필멸이기에 매순간을 마지막으로 산다. 영생하는 신은 그렇게 매 순간 마지막 처럼 살 수 없다. 아마도 신이 인간을 부러워하는 단 한가지 아니겠는가. 유한함이 없다면, '인간다움'은 성립되지 않는다.
길가메시가 불멸의 비법을 얻기 위해 인간에서 신이 된 우트나피티쉼을 만나러 가는 길목에서 죽음의 강을 건너기 전, 그는 여인숙 주인장 시두리(Siduri)를 만난다. 그녀는 우매하게 불멸을 찾아나선 길가메시에게 현명한 잔소리를 날린다. “당신이 찾고 있는 영생은 발견할 수 없어요. 신들은 인간을 창조하면서 인간에게는 필멸의 삶을 배정했고, 자신들은 불멸의 삶을 가졌지요. 길가메쉬, 배를 채우세요. 매일 밤낮으로 즐기고, 매일 축제를 벌이고, 춤추고 노세요. 밤이건 낮이건 상관없이 말이에요. 옷은 눈부시고 깨끗하게 입고, 머리는 씻고 몸은 닦고, 당신의 손을 잡은 아이들을 돌보고, 당신 부인을 데리고 가서 당신에게서 즐거움을 찾도록 해주세요. 이것이 인간이 즐길 운명인 거예요. 그렇지만 영생은 인간의 몫이 아니지요.”
길가메시 서사시보다 1000년쯤 뒤에 작성되기 시작한 구약성경의 전도서 9장에도 비슷한 구절이 나온다. “너는 가서 기쁨으로 네 음식물을 먹고 즐거운 마음으로 네 포도주를 마실지어다 이는 하나님이 네가 하는 일들을 벌써 기쁘게 받으셨음이니라. 네 의복을 항상 희게 하며 네 머리에 향 기름을 그치지 아니하도록 할지니라. 네 헛된 평생의 모든 날 곧 하나님이 해 아래에서 네게 주신 모든 헛된 날에 네가 사랑하는 아내와 함께 즐겁게 살지어다. 그것이 네가 평생에 해 아래에서 수고하고 얻은 네 몫이니라.
카르페 디엠. 필멸의 인간만이 누릴 수 있는 삶의 숭고한 철학이다. 매 순간을 마지막 처럼 사는 인간 삶의 의미는 바로 지금 이 순간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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