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온도가 머무는 공간, 숨 쉴 틈
(물음표 쉼표 느낌표)
- 온도가 머무는 공간, 숨 쉴 틈
오늘은 겨울이 가고 봄이 다 온 것처럼 포근한 날씨였습니다. 거리에 사람들이 넘치고 가는 곳마다 뭔가 활기를 띠기 시작합니다.
눈과 얼어있던 땅이 녹은 거리변에는 그 아래 묻혀있던 침엽수들의 바늘 침 같은 낙엽더미들이 모습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겨우내 숨어있던 것들이 숨을 쉬느라 얼굴을 내미는 것들은 낙엽만이 아닙니다.
길가변에 가로수도 온기가 돌고 뭔가 달라져있습니다. 자세히 보니 거친 나무줄기 사이로 물기가 올라오고 색도 좀 달라졌습니다. 알게 모르게 이렇게들 모두 봄을 맞을 준비를 하고 있었네요.
식물들은 따뜻해진 평균온도와 길어진 낮 시간(일조량)을 뿌리와 가지로 감지해 봄을 안다고 합니다. 땅속 얼음이 풀리면 뿌리가 활동을 시작한답니다.
사람들도 식물만큼은 아니지만 온도에 민감하게 반응합니다. 그래서 오늘 거리로 나온 거겠죠. 옷도 가벼워지고 표정에서도 봄이 느껴집니다.
이렇게 온도는 많은 것을 변화시킵니다.
생물들뿐만 아니라 제가 다루는 무생물인 재료들도 잘 보이진 않지만 온도의 영향을 많이 받습니다. 모든 공학의 가장 기본인 재료역학에서는 재료의 기본 특성도 알아야 되지만 온도의 변화에 어떻게 반응하는지를 알아야 됩니다.
일명 온도에 따른 변화량이란 건데 햇볕아래 장시간 노출될 때, 실내일 때, 열이 가해지거나 냉각되었을 때 등 각각의 온도상황에 따른 변화특성을 알아야 필요한 곳에 적합한 재료로 사용할 수 있습니다.
온도의 변화에 따른 재료의 늘음량과 줄음량을 고민해서 설계하고 설치해야만 됩니다. 작은 사이즈는 이런 변화량을 무시해도 되지만 우주선이나 거대한 기계장치나 빌딩이나 교량 같은 건물은 그 변화량이 커서 아주 중요한 핵심 설계요소입니다.
가장 쉬운 예를 들면 기차가 다니는 철로는 쇠가 아주 길게 연결되어 있으니 온도에 의한 늘고 줄어드는 양이 큰 영향을 미칩니다. 눈에는 안 보이지만 1m에 0.01mm만 늘어난다 해도 수백 m를 가면 철로가 튀어 오르거나 휘어져버립니다.
그래서 거대한 기계장치나 온도에 노출되는 건설물들, 그리고 극심한 온도변화를 겪어야 되는 우주선이나 잠수함 같은 구조물들은 그에 대한 대응을 하게 만듭니다.
앞서 쉬운 예로 들었던 철로는 중간중간을 끊어서 늘어날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 놓습니다.
도로나 건물도 마찬가지입니다. 온도변화를 잡아줄 틈 같은 건데 영어로는 Expansion Joint , 우리나라에서는 위치나 형식에따라 조인트, 신축이음장치, 연결부, 이음매 또는 줄눈이라고 부릅니다.
(오늘 자전거도로에서 만난 건데 자전거 표식아래 끊어놓은 줄눈이 보입니다)
또 한 가지 방법은 재료를 조그맣게 만들어 조립하듯이 연결하면 간격이 생겨서 숨 쉴 공간이 자연스레 만들어집니다. 일종의 블록식 조립이라 보면 되겠죠. 큰 건물이나 거대한 장치들은 블록으로 조립하면 온도변화에도 대응하고 유지관리도 쉬워집니다.
(이것도 오늘 길에서 만난 블록식 조립형 보도입니다)
기계들은 특수도장을 하기도 하고 온도팽창계수차이를 이용한 장치를 달기도 합니다.
(기계의 조인트들)
오늘 나무와 사람들이 온도변화에 반응하는 것처럼 우리 언어에도 온도가 있습니다. 따뜻한 말, 냉정한 말 같은 온도입니다. 내 언어의 온도는 몇 도나 될까 생각해 봅니다.
그리고 언어의 온도라는 베스트셀러 책이 떠오르네요. 말의 품격이 이분의 앞선 작품이었죠.
그리고 앞에서 이야기한 재료역학의 이음매나 줄눈처럼 글이나 언어에도 이런 온도변화에 대응하는 숨 쉬는 공간이 있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글의 문장에는 행간이 있고, 쉼표가 있습니다.
그리고 단어 사이에는 띄어쓰기가 있습니다.
이것들이 재료의 줄눈, 조인트 같은 공간역할을 하는 건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언어의 온도변화를 조절해 주는 장치로 말입니다.
그래서 말을 할 때도 너무 길어지지 않게 조금 끊어주고 쉬어주는 게 좋은 것 같습니다. 그리고 줄눈처럼 끊어진 그 공간에 따뜻한 눈길이나 ‘고생하셨어요’하는 느낌의 미소 한번 넣어주면 서로가 온도조절이 되는 것 아닐까 싶습니다.
글도 마찬가지입니다. 시나 소설, 에세이 글의 한 줄 띄어 쓴 그 여백의 공간에는 비어있는 것처럼 보여도 그 안에서 숨 쉬는 소리도 들리고 더 많은 것들이 읽히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