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킬&하이드와의 저녁식사

I’m back off the wagon.

by 하늬바람

(물음표, 쉼표, 느낌표)


에필로그.

지킬&하이드와의 저녁식사

I’m back off the wagon.



이 글은 프롤로그가 아닙니다.

에필로그이지만 시작글입니다. 무슨 말장난인가 싶겠지만, 끝으로부터 시작해보고 싶습니다.

‘슬기로운 금주생활’ 이야기를 끝내고 ‘물음표, 쉼표, 느낌표’라는 제목으로 에세이를 새로 시작합니다. 그리고 앞으로 쓰여질 글들의 마무리를 지금 시작하고 가겠습니다. 그래서 이 글은 에필로그입니다. 그리고 저번 글들의 에필로그이기도 합니다.


우선 금주생활을 끝내는 건 음주를 해야 되는 거겠죠. 그래서인지 금주생활 100일이 넘어가고 이틀 후 102일째 꿈인지 생시인지 환상적인 경험을 했습니다.

지킬&하이드 와 저녁식사를 하는 꿈이었습니다. 그는 나의 친구로 등장했고, 물론 술도 함께였습니다.


지킬이 말합니다.

고생했네. 술은 계속 끊을 것인가?


응.. 가볍게 기념으로 한잔하고 앞으로 줄일 생각인데.


그렇다면 내가 축하해 주지. 알다시피 난 술을 못한다네. 조금만 마셔도 잠이 와..


그 친구는 누구보다 다정합니다. 그런데 갑자기 차갑게 느껴질 때가 있는 친구였습니다. 심각하진 않은데 차갑게 정색을 하고 다른 사람처럼 보일 때 적잖이 놀랬습니다. 그런데 그의 차가움은 남을 싫어해서가 아니라 자신을 지키기 위함이란 것을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꿈속에서 지킬과 식사를 하면서 계속 이야기를 합니다. 지킬이 저러다가 하이드가 되는건 아닐까 생각합니다. 하지만 아무 문제가 없습니다. 그는 고상하고 우아하며 훌륭한 매너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다 꿈속에서 나는 문득 깨달았습니다.

이상한 건 그가 아니라 나였다는 사실을.

내가 지킬과 하이드였습니다. 내가 취해서 하이드가 돼 가고 있었던 겁니다. 그리고 꿈이 깼습니다.


꿈에서 깨어나서 지킬과 하이드를 다시 떠올렸습니다. 괴물은 언제나 타인의 얼굴을 하고 나타나는 게 아니라 때로는 가장 익숙한 얼굴이라는 것을, 그리고 그건 나일수도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결국 꿈속에서 나는 나의 내면 속 지킬과 하이드와 술을 마신 겁니다.



I’m back off the wagon.

다시 술을 마신다는 관용어입니다. 금주 후 102일째에 다시 술을 마셨습니다. 꿈이 아니라 실제로 마셨습니다.

단순히 생각해 보면 나의 내면 속에서 지킬은 금주이고, 하이드는 음주일 수 있습니다. 프로이트의 꿈의 해석에 의하면 저의 잠재의식이 그런 식의 꿈으로 나오지 않았을까 생각해 봅니다. 아니면 사실이었을까요.


조승우가 나오는 뮤지컬 대사를 옮겨봅니다.

"성실한 지킬 안에는 악보다는 선이 더 많았고, 방종한 지킬 안에는 분명히 선보다는 악이 더 많았어. 사람들은 나를 한 사람으로 보았지만, 사실 나는 두 명이었어."

"만일 내가 어떤 식으로든, 악한 사람을 선한 사람으로부터 분리할 수 있다면 내 안에서 악한 사람을 완전히 몰아내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네."

...


최근에 읽고 있는 책이 ‘이기적인 유전자’입니다. 무려 40주년 기념 에디션입니다. 더 특이한 건 40년이 지났는데도 수정한 내용이 없다는 겁니다. 앞에 서문만 더 끼워 넣었습니다. 저자 리처드 도킨스가 얼마나 대단한지 알 수 있는 대목입니다. 유전자가 이 지구의 지배자이고 우리는 유전자를 운반하는 생존기계라는 것이 이 책의 핵심내용입니다.

*유전자는 도덕적 의도가 없습니다: 유전자는 그저 자기 복제를 통해 후세에 자신의 사본을 가능한 한 많이 남기려는 맹목적인 자기 복제자일 뿐입니다. 유전자는 단순한 화학 물질 덩어리이며, 의도나 감정, 선악의 개념을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선악은 인간이 만든 기준입니다: 도킨스는 자연계 자체에는 선하거나 악한 행동이 없으며, 도덕이나 윤리는 인간이 사회생활을 위해 만들어낸 문화적, 사회적 개념이라고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결국 지킬박사는 실패할 수밖에 없는 실험에 도전했고, 하이드는 죄가 없습니다. 하지만 주는 메시지는 강렬합니다. 나의 내면 안에 꿈틀거리는 악이 존재하고 있다는 거죠.

제가 앞으로 써나갈 글들은 지킬과 하이드를 넘나들고 싶습니다. 아니 들여다보고 싶습니다. 절대적 선악이란 존재하지도 않고 저와 같은 인간 군상들의 삶과 일상들을 들여다보면 그 안에서 무언가를 보게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게 글의 매력이니까요.


그리고 뮤지컬 주제곡은 꼭 들어봐야죠.



지금 이 순간 마법처럼

날 묶어왔던 사슬을 벗어던진다

지금 내겐 확신만 있을 뿐 남은 건 이제 승리뿐

... 생략..

지금 이 순간 내 모든 걸

내 육신마저 내 영혼마저 다 걸고

던지리라 바치리라 애타게 찾던 절실한 소원을 위해

지금 이 순간 나만의 길

당신이 나를 버리고 저주하여도

내 마음속 깊이 간직한 꿈

간절한 기도 절실한 기도 신이여 허락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