떨어지는 것들은 돌아오기 위해 – 쉼표 편
(물음표 쉼표 느낌표)
- 떨어지는 것들은 돌아오기 위해 – 쉼표 편
‘슬기로운 금주생활’ 100일 달성을 하고 이 때 쓴 글들을 브런치북 두권으로 엮어서 발간했습니다. 그리고 새로운 수필집 매거진을 만들면서 제목을 무엇으로 할 것인지 고민했습니다.
고민의 결과 저의 일상과 생각을 기록할 에세이집 제목은 ‘물음표 쉼표 느낌표’로 정했습니다.
하루를 살다 보면 문장보다 먼저 물음표를 만나는 날이 있고, 쉼표에 머무는 날이 있고, 느낌표로 끝나길 바라는 날이 있습니다. 이 글들은 그렇게 하루에 붙은 문장부호들에 대한 기록이 될겁니다.
물음표로 하루를 시작하는 날이 많았습니다. 가끔은 멈춰야 할 이유도 모른 채 쉼표에 앉아 있고, 우연히 찾아오는 느낌표 하나에 괜히 하루를 위로받습니다. 그런 나의 이야기를 적고자 합니다.
며칠 전 벽에 걸린 달력의 11월을 뜯어냈습니다.
두꺼웠던 달력은 이제 마지막 한 장만 소설 속 마지막 잎새처럼 매달려 있습니다.
12월의 달력사진은 눈 덮인 흰 산과 산속을 가로지르는 도로의 모습입니다. 그 도로의 주변에 키가 큰 나무들이 줄지어 서있습니다.
아침저녁으로 만나는 나무들의 무성한 잎사귀들은 이제 낙엽이 되어 앞다투어 떨어집니다.
자전거로 출퇴근을 하니 자전거길에 나뒹구는 낙엽들이 바퀴에 부서지는 소리는 부스럭도 아니고 바스락도 아니고 빠사삭 정도로 표현해야 됩니다.
‘비에 젖은 낙엽신세’라는 말은 사회에서 밀려나거나 퇴직 후 처량한 모습을 빗댄 말입니다.
‘떨어지는 낙엽도 조심하라’는 말은 다 된 일이나 중요한 일을 앞두고 사소한 것 하나라도 조심하라는 말입니다. 추풍낙엽(秋風落葉)이란 사자성어도 가을 바람에 낙엽이 떨어지듯이 강한 힘 앞에 상대방이 우수수 떨어지는 형세를 비유하는 말입니다.
결국 낙엽은 힘없고 처량하다는 비유로 쓰입니다.
이렇게 떨어지는 낙엽은 자연스레 자연으로 돌아갑니다. 그런데 쓸모없는 것 같은 이 낙엽이 글을 쓰는 작가에게는 다르게 보이나 봅니다.
이효석 님은 ‘낙엽을 태우면서’라는 수필에서 낙엽 타는 냄새를 '갓 볶아 낸 커피의 냄새', '잘 익은 개암 냄새' 같다고 표현합니다.
그리고 쓸어 담은 낙엽을 태워 목욕물에 사용할 물을 데우는 과정이 사소하지만 수수하고 긍정적인 삶의 자세를 보여줍니다. 소시적 교과서에서 이 수필을 읽고 작가의 글을 쓰는 모습을 상상해보며 그 소재가 된 일상이 자연의 순환을 닮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강원도 평창에 갈 일이 있을 때 봉평에 있는 이효석 기념관을 찾아간 적이 있습니다. 그의 대표작 ‘메밀꽃 필 무렵’과 ‘낙엽을 태우면서’를 다시 읽고 간 건 물론입니다. 단편소설과 수필이라 금방 읽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낙엽들이 소복이 쌓인 화단이며 도로변이며 하천 주변을 보면 가을정취와 더불어 이효석 님의 커피 향이 자연스레 느껴집니다.
김소월님은 개여울 시(詩)에서 ‘가도 아주 가지는 않노라심은 굳이 잊지 말라는 부탁인지요’ 라고 말합니다. 그의 시구처럼 떨어진 꽃과 잎도 새살처럼 잊지않고 다시 돋아납니다. 앞에 뜯어낸 달력들도 새로 걸리게 됩니다.
"랩걸, 과학과 나무와 사랑"이라는 책에 나온 글을 담아 놓았는데 이 분위기에 맞아떨어져 옮겨봅니다.
나무에서 잎이 떨어지는 과정을 과학자적 시선과 깊은 성찰로 표현하고 있어 인상 깊었습니다.
"나무 한 그루가 1년 내내 쌓아온 공든 탑을 모두 무너뜨리고 버리는 데에는 1주일밖에 걸리지 않는다. 마치 거의 입지도 않은 새 옷을 너무 유행에 떨어져 다시는 못 입을 것처럼 던져버리듯이.
1년에 한 번씩 가진 것을 모두 버리는 것을 상상할 수 있는가? 몇 주 사이에 모든 것을 다시 쌓아 올릴 수 있다는 확신이 들기 때문에 그런 행동이 가능한 것이다. 이 용감한 나무들은 자신들이 지닌 모든 속세의 보물들을 땅으로 보내고, 거기서 그 보물들은 곧바로 썩고 분해가 된다.
그들은 어떻게 하면 내년의 보물과 영혼을 하늘에 쌓아 올릴지 모든 성인과 순교자들을 다 합친 것보다 더 잘 알고 있다."
11월 달력종이를 뜯어내니 나온 마지막 한 장은 마지막 잎새처럼 매달려 있지만, 가장 뒤에서 자기의 시간이 오기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소중하지 않은 날이 어디 있겠습니까.
일 년의 마지막 달이라고 하지만 태양주위를 끊임없이 공전하는 지구입장에서 보면 순환루프의 한 점일 뿐입니다. 원은 시작점도 끝점도 없습니다.
낙엽도, 달력도 떨어지고 하늘에서 눈도 떨어지는 날입니다.
떨어지는 것들은 다시 돌아옵니다.
지금은 쉼표의 시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