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정함이 세상을 구한다

by 첫여름

한 명의 손을 떠난 다정함은 다른 사람을 거쳐 세상의 또 다른 사람에게 전달된다.

그러니 내가 누군가에게 다정함을 베푸는 것은, 사람 한 명이 아닌 세상에 남기는 흔적이다.



어린 기억에 남아있는 나의 다정함에 대한 첫 기억은 미국에 있다.

애매한 영어 실력에 겁이 많은 채로 미국의 운동캠프에 보내진 14살 시절.

진흙탕에서 미끄러져 너무 민망했을 때 유일하게 먼저 손을 내밀어줬던 18살 짝언니가 있었다.

짝언니는 아마 기억도 못하겠지만 혼자였던 나에게 누군가의 손길은 그 시기를 버텨낼 수 있는 큰 힘이 되어주었다.


그 외에도 수많은 이들이 베푼 다정함을 토대로 나는 지금 이 자리에 서있다.


해부학 수업 당시 감사히 카데바를 기증해 주셨던 할머님.

더 나아질 세상을 위해 본인의 전부를 기부해 주신 그 숭고한 마음이 얼마나 다정한지는 감히 논하기가 어렵다.

그리고 그 희생 위에 쌓아 올린 개인적인 노력을 통해, 세상에 전할 수 있게 된 크고 작은 선의들이 있다.


후배의 어려운 상황을 알고서는, 모르는 척 비용을 받지 않고 집으로 보내셨던 선배님.

세상의 부조리함에 그래도 덩그러니 혼자 내버려진 게 아니라는 생각에 눈시울이 붉어졌었다.


지하철 계단에서 커다란 짐을 먼저 들어주시겠다고 해주신 아저씨.

사실 텅 빈 캐리어라 하나도 무겁지 않아, 마주 보고 웃었지만 그 따뜻한 마음이 감사했다.

비행기에서도 짐을 내리려고 할 때 도와주시는 주변의 손길도 자주 있었다.


그 외에도 지금의 내가 있도록 해준, 그러나 기억에 뚜렷이 남아있지 않은 따뜻함의 손길들이 더 있었을 것이다.



대부분의 사람은 때때로 약자의 입장이 된다.

모든 분야에서 본인이 최고일 수는 없다.

해외에서 이방인의 신분으로 머물 때, 물리적으로 힘이 더 약할 때, 을의 입장으로 근무할 때, 등등.


다정함이 세상을 구한다는 게 다소 거창한 말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베푸는 사람의 입장에서는 그다지 많은 노력이 들지 않은 행위일 수도 있다.

하지만 누군가 내민 다정한 손이, 분명히 그날 그 사람의 세상을 구할 수는 있다.


사실 사회에 나와서는 다정함보다는 냉정함도 많이 마주하게 된다.

그 온기를 지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애쓰는 모든 대상들에게 감사를 표한다.

당신이 세상에 내놓은 다정함은, 누군가의 마음에 오랫동안 가지고 갈 온기로 남아있을지도 모른다.



* 개인적으로 애정하는 다정한 영화들이 있다 : Everything everywhere all at once, 엘리멘탈, 와일드 로봇