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하는 생각이 내가 아님을 알아차리기
강원도로 겨울여행을 떠나는 날, 꼬불꼬불 길을 운전해 홍천의 힐리언스 선마을에 도착했다.
여기는 핸드폰 데이터가 터지지 않아, 특정 장소를 제외하고는 바깥세상과 소통을 할 수가 없다.
어쩔 수 없이 세상과 잠시 단절되어 눈앞의 공간에만 집중할 때 은은하게 느껴지는 자유로움이 있다.
평소에는 내 몸이 어디에 있든 다른 곳에서 일어나는 일들까지 신경을 쓰고 있곤 한다.
퇴근하고 저녁을 먹으면서 낮에 근무할 때 있었던 일을 곱씹는다던가.
포근한 방 침대에 누워서는 유튜브를 보며 바다 건너 세상의 소식에 몰입한다던가.
정신없는 일상에서 잠시 틈이 보이면 사소한 고민들이 자리를 비집고 들어온다.
당장 내려야 할 선택에 대한 고민이 해결되면, 그에 꼬리를 잇는 다음 고민이 수면 위로 떠오른다.
몸이 어디에 있든 마음은 이곳저곳을 멋대로 누비고 다닌다.
거기에는 핸드폰과 인터넷의 역할도 큰데, 그 연결고리를 강제로 끊어버리면 비로소 눈앞의 현실에 집중하기가 더 쉬워진다.
강원도는 휴가를 보내기 위해 방문했던 기억이 한가득이라 나에게는 편안한 감정이 묻어있는 곳이다.
서울을 벗어나 강원도에 들어설 때부터 그 특유의 차분하고 시원한 기분 좋은 분위기가 몸을 감싼다.
무사히 힐리언스에 도착해 주차를 하자마자 토끼 두 마리가 함께 나무 아래로 달려가는 것이 보였다.
힘차고 활기찬 토끼들의 귀여운 모습에 자연스러운 미소를 띠고 가족들과 짐을 나르기 시작했다.
하루 정도 연락이 늦을 것이라는 소식을 주변에 전하고 나서는, 홀가분한 마음으로 숙소로 향했다.
이제 손에 쥐어진 핸드폰은 풍경을 담는 카메라의 역할로서만 남아있는 것이다.
저녁을 먹고, 테라피와 요가를 한 이후에는 따뜻한 물에 몸을 담갔다.
자연을 앞에 두고도 멀리 서울에 놓고 온 해결되지 않은 문제들에 마음 한 켠은 얽매여 있었다.
그래도 요가 시간을 통해 ‘내가 하는 생각’이 ‘나’는 아니라는 걸 오랜만에 상기할 수 있었다.
머릿속에 드는 생각을, 마음속에 일어나는 감정을, 그 이외에 ‘나’와 동일시했던 수많은 것들을 관조적으로 바라본다.
찐득하게 붙어있던 욕심과 상처들, 온 마음으로 행복했던 순간들까지 전부 걷어내는 것이다.
그렇게 잠시나마 흐린 구름들을 걷어낸 투명한 맑은 하늘을 오랜만에 느껴볼 수 있었다.
한 발짝 떨어진 곳에서 바라보면 참으로 많은 것들이 가벼워진다.
‘나’는 거울 속에 비치는 다양한 순간순간의 모습이 아닌, 거울 그 자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생각도 감정도 아닌, 그것을 알아차리는 ‘알아차림’ 그 자체라는 것을 말이다.
숙소에 돌아가 잠을 청하기 전에는 맑은 밤하늘에 있는 수많은 별들을 한참 동안 그저 바라보았다.
작년에도, 그 이전에도 무거운 머리를 뒤로 꺾고 어깨가 뻐근해질 때까지 별들을 바라보았던 기억이 있다.
거리감을 짐작할 수 없는, 지평선에 맞닿아있을 것만 같은 별의 무리가 늘 신기하다.
별을 바라볼 때는 그 반짝임에 다른 잡생각들이 힘을 잃어버린다.
다음날 아침, 추워진 날씨 탓인지 목이 칼칼한 채로 잠에서 깨어 아침식사를 위해 숙소를 나섰다.
식사 이후 귀여운 고양이와 토끼들도 만나고, 카페로 이동해 편한 의자에 앉아 서울에서부터 들고 온 책을 호기롭게 펼쳤다.
하지만 추운 날씨에 따뜻한 공간에 들어와 있으니 무거운 눈꺼풀에 저항 없이 몸에 힘이 풀렸다.
결국 부족했던 잠을 청한 뒤 책은 나중에 읽어보기로 다짐하고는, 가족들과 함께 다음 목적지인 속초로 길을 떠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