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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복희 Oct 30. 2023

순매원에서


꽃바람이 유혹해서 새벽 6시경에 집을 나선다. 시간 반을 달려 도착한 곳은 산비탈이다. 감나무 위에 까치가 재잘재잘 인사를 하고. 엄나무가 가시를 곧추세우며 시끄럽다고 봄투정을 한다. 며칠동안 따듯한가 싶더니 어제는 비가 오고, 이제는 바람이 불어 옷깃을 여민다. 나풀거리는 나비 날개 위에 내 마음을 실어 본다.그래도 봄꽃은 웃고 있다.


동네를 한 바퀴 돌아 보는데 20여분이 채 안 걸린다. 진풍경 하나가 시야에 들어 온다. 산비탈 여기저기 고운 옷을 입고 큰 가방을 하나씩 맨 사진작가들이다. 마을이 예쁘고 매화가 피는 계절이면 꽃과 강물과 경부선 기차가 한폭의 그림이 되기 때문이다. 매화밭을 산책하는데 기다렸다는 듯이 사방에서 카메라 셔터 눌러대는 소리가 분주하다. 휘돌아가는 완행 열차와 가지 끝에 매달린 매화꽂을 한 장의 사진 속에 담기 위함이다. 기차가 지나가는 몇 초동안 빨리 사진을 찍어야 한다. 한꺼번에 두 마리 토끼를 다 잡기 위해 촉을 세우고 있다. 멋진 작품을 위해 무릎을 꿇은 아저씨, 비탈길에 엉거주춤 자세로 선 총각, 삼각대를 한 곳에 고정시키고 손만 호호거리는 아주머니도 있다.


순매원 매화밭은 원동 매화마을의 터주대감이다. 근래에는 SNS의 영향 탓인지 발 디딜 틈이 없다. 마을 입구 임시주차장에는 매화축제 구경을 온 관광버스가 즐비해 있다. 이른아침 부모를 따라 집을 나선 어린아이, 두 손 잡고 하트를 그리며 셀카 찍는 연인들, 낙동강 강물 따라 달리기하는 햇살. 모두가 여유롭고 행복해 보인다. 우리는 예전의 아름다운 순매원을 상기했다. 그런데 장사 목적으로 수많은 빨간 플라스틱 원탁과 의자가 놓여있어 눈살을 찌푸리게 만든다. 하지만 속도없이 먼저 구경 온 사람들이 시켜놓은 빨간 원탁 위에 김이 모락모락 나는 어묵탕이랑 빨간 떡볶이는 군침을 돌게 한다.


매화꽃차는 맛과 향이 일품이다. 꽃을 조금따서 꽃차를 만들고 싶지만 취하지 못하고 눈으로만 만족한다. 향기에 취하고, 꽃송이를 보고만 있어도 입꼬리가 귀에 걸린 듯하다. 그런데 갑자기 신호가 왔다. ‘안 돼’ 내몸 속에서 가스가 금방이라도 탈출하고 싶어한다. 어쩔 줄 몰라 하는데, 때마침 “뿌~우~앙~~~~~~~~ ”기적을 울리며 완행열차가 들어선다. 동행한 지인은 폰 카메라로 사진을 찍기 여념이 없고 난 순간을 놓치지않고 가스를 배출한다. ‘뽀오옹 뽕’ 혼자 안도의 숨을 쉬었다. 그러자 눈동자 돌아가는 소리가 들린다. 지인은 “시원하게 끼라” 하며 눈앞을 가리는 꽃나무 가지를 젖히면서 지나간다. 민망하다. 속은 편안하고 얼굴은 저녁 노을을 닮았다.


커피생각이나 카페를 들어갔다. 하지만 하늘이랑 가까이 하고 있는 H 카페는 자리가 남아있지 않다. 카페안에서도 모두가 사진찍기 바쁘다. 어느곳을 찍어도 카메라만 가져다 놓으면 작품이 될 듯하다. 청매 홍매, 저마다의 빛깔과 향기 또한 다르다. 나에게는 백매가 가장 크게 보였다. 핑크빛으로 익어가는 매화를 보고 나도 급하게 시를 한 번 적어본다. 이 순간은 역사 속의 이황도 부럽지가 않다. 몸과 마음이 가볍다. 살랑이는 봄바람이 가을바람으로 바뀌고 강줄기 따라서 매실이 다 익을 즘이면 나도 좀 더 성숙해져 있을까? 사진 기자들의 손발이 한산해질 즘 우리는 꽃길을 따라 내려왔다. 주차장 근처에는 지역 특산물 미나리가 삼겹살이랑 한 패를 먹고 호객행위를 한다. 그러나 오후의 빠듯한 일정으로 대구 쪽으로 핸들을 돌렸다. 자동차 뒷좌석에는 파릇파릇한 원동 미나리 한단이 차가 흔들릴 때마다 엉덩이를 들썩들썩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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