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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수문자의 얼굴에 비추어진 일상

by 이정호

아침 출근길, 인파가 몰려드는 지하철역 앞에서 잠깐 멈추어 선다. 머릿속에는 오늘 마쳐야 할 업무와 끝내지 못한 일들로 복잡한 감정이 한꺼번에 몰려든다.


그럴 때면 문득, 습관처럼 스마트폰 자판 위에 찍히는 여러 기호들이 눈앞에 떠오른다. 가만 들여다보니 그 작은 특수문자들이 마치 사람처럼 저마다의 표정을 짓고 있는 게 아닌가.


이들은 서로 다른 얼굴을 하고 있지만, 우리 삶 구석구석에 조용히 숨어들어, 흐트러진 마음을 추스르고 다음 발걸음을 내딛게 해주는 것 같다.


쉼표(,)

오늘의 나는 마치 쉼표가 절실한 문장 같다. 지금 당장 멈추지 않으면 나 자신도 모르게 어떤 벽에 부딪힐 것만 같은 하루가 이어질 때, 쉼표는 길 한가운데 놓인 작은 벤치가 되어 준다.


하나둘 떠오르는 걱정거리를 잠시 내려놓고, 벤치에 앉아 숨을 고르듯 쉼표는 마음과 마음 사이에 잠깐의 여유를 선물한다. 의미 있는 멈춤이 결국 다음 문장을 더 잘 이어갈 수 있도록 도와준다는 사실을 나는 비로소 쉼표에서 배운다.


물음표(?)

가끔은 내가 어디로 가고 있는지조차 잘 모르겠다. 무언가 쫓기듯 달려가는 매일 속에서, 물음표는 “정말 괜찮니?” 하고 살포시 다가와 나에게 묻는다.


그 질문이 때로는 불편하기도 하지만, 정직한 물음이 없이는 내가 진짜 원하는 것, 그리고 나를 움직이는 동력이 무엇인지 찾기 어렵다. 물음표는 그렇게 내가 스스로에게 질문할 용기를 내도록 돕고, 막연한 고민을 조금씩 구체적인 방향으로 이끌어준다.


괄호(())

사람 사이의 거리는 미묘하다. 가까이 있고 싶지만 너무 성급하게 다가서면 불편해질까 두렵고, 먼저 다가오길 기다리자니 또 금방 멀어질까 아쉽다.


그럴 때 괄호가 나타나, 너와 나를 부드럽게 감싸주며 이야기한다. “우리 사이에 균형을 만들자. 따뜻하게 감싸되, 서로를 지키는 공간이 되길.” 서로의 가치를 존중하면서 조심스레 소통하게 해주는 괄호는, 실은 보이지 않는 울타리로 우리를 더 안전하게 이어 준다.


따옴표(" ")

우리는 수많은 말을 주고받지만, 정작 진심은 쉽게 입 밖으로 꺼내지 못할 때가 많다. 따옴표는 이렇게 말한다. “소중한 표현은 함부로 다루지 말고, 꼭 필요한 순간에 꺼내어 봐.” 누군가에게 정말로 하고 싶은 이야기가 생길 때, 그 말을 정성껏 포장해 따옴표 안에 살며시 올려놓으면 말 한마디가 주는 무게감과 따스함이 배가된다.


이 작은 문장 부호가 나에게 가르쳐 준 건, 소중한 마음은 때로 조심스러운 예의를 갖추어야 더욱 빛난다는 사실이다.


느낌표(!)

가끔은, 아무 이유도 없이 기분이 붕 뜨거나 가라앉을 때가 있다. 그럴 때 느낌표는 “지금 이 순간의 감정을 소리 내어 표현해 봐”하고 내 등을 가볍게 밀어준다. 억눌러 둔 감정들을 순간적으로 폭발시키며 새로운 활력을 찾아주는 느낌표.


이제 나는 가슴 뛰는 감정을 억제하기보다는, 정말 필요한 순간에 스스로에게 “좋아!” “해보자!” 하고 똑똑히 소리 내며 다짐할 줄 안다.


해시태그(#)

세상은 늘 연결되고 싶어 한다. 내가 모르는 누군가가 올린 사진 한 장, 그 아래 달린 해시태그 하나로 전혀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가 합쳐진다. 우리 삶이 온라인과 오프라인을 가리지 않고 뒤엉켜가는 시대 속에서, 해시태그는 사소한 것들조차 함께 나누는 기쁨을 알려준다.


서로가 서로에게 닿을 수 있는 무수한 지점을 만들며, 마침내 한 폭의 거대한 그림을 완성하는 것이다. 이 연결의 아름다움 안에서, 우리는 외롭지 않게 살아갈 용기를 얻는다.


마침표(.)

마침표를 찍어야 하는 때를 놓치면 모든 문장은 질질 끌리기 마련이다. 하루를 마무리할 때, “여기까지가 오늘의 노력이었다”라고 마침표로 딱 정리해 주지 않으면 어딘가 찝찝하다.


쉬지 않고 달려온 내게 조용히 다가와 “괜찮아, 그만해도 돼”라고 말해주는 기호가 바로 마침표다. 스스로에게 명확한 쉼을 허락하면, 그다음 날은 더 맑은 마음으로 시작할 수 있다. 결국 ‘끝맺음’은 단지 종결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을 위한 결단이다.


등호(=)

인생에서 “이것만이 정답이다”라고 말할 수 있는 일이 얼마나 될까. 등호는 너와 나의 차이를 인정하면서도, 결국 우리는 크게 다르지 않다고 조용히 말해준다.


정해진 답이 없는 삶 속에서, 등호는 상대방을 향해 “우리는 모두 같다”라고 말하는 대신 “우리는 서로 다른 모습의 같은 사람”이라 제안하는 듯하다. 그 잔잔한 인정의 순간이, 얼마나 많은 갈등을 풀어낼 수 있는지 깨닫게 된다.


빗금(/)

빗금은 마치 도로 위 정류장 같아서, 정신없이 달려가다가도 잠깐 멈추어 쉬어가라는 신호를 준다. 우리는 매일 선택의 기로에 선다. 이 길일까 저 길일까 망설이면서도 여유를 내지 못해 허둥거린다.


그럴 때 빗금이 “조금 쉬었다 다시 가도 돼. 여기는 중간 기착지이니까.” 하며 안도감을 건넨다. 완벽한 길이 아니라도 잠시 비껴가거나 우회할 수 있음을 빗금은 자그마한 틈새로 보여주는 셈이다.


줄임표(...)

마지막으로, 줄임표는 끝나지 않은 가능성을 이야기한다. 어쩌면 우리 삶에는 쉼표도, 마침표도 아닌 채로 아직 발견하지 못한 무언가가 남아 있을지 모른다.


줄임표는 바로 그 여백을 받아들여, 미완성의 아름다움을 보여준다. 살아가다 보면 예측할 수 없는 순간과 감정들이 끝없이 솟아오른다. 줄임표는 그 모든 순간을 “아직은, 아직 더 있어...” 하고 부드럽게 이어 주어 내일의 기대를 품게 한다.


이어져 가는 삶의 조각들을 특수문자들은 서로 다른 표정을 지으면서도 한 울타리 안에서 조화를 이룬다.


마찬가지로 우리도 제각기 다른 모습으로 살아가지만, 같이 모여 서로의 이야기를 완성해 간다. 마음이 복잡해질 때마다, 나를 뒤흔드는 수많은 감정과 생각을 이 작은 기호들에 비추어 본다. 그럴 때면 보이지 않던 길이 스르르 열리고, 서로를 향한 공감과 이해가 이전보다 조금은 더 깊어지는 기분이 든다.


오늘도 쉼표, 물음표, 따옴표, 그리고 줄임표까지, 나를 에워싼 모든 특수문자들이 내 이야기 속에서 끊임없이 살아 숨 쉰다. 결국 우리가 만들어 가는 삶이란, 문장부호 하나조차 무심히 흘려보내지 않을 때 더욱 다채롭고 아름답게 완성되는 것이 아닐까 생각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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