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호
오늘,
그림자가 남긴 족적을 바라본다.
햇살은 시간을 끌어당기듯
내 그림자를 길게 늘이고,
때로는 살짝 숨기며
말없이 따라왔다.
울타리 너머,
바람은 잎새조차 건드리지 못한 채
고요한 숨결로 머물렀고
나는 그 곁을 조용히 걷는다.
뒤안길이란 말이 떠오르다
문득 아쉬움이 그 위에 포개졌다.
어쩌면 나는
잠시 머물다 가는 나그네.
봇짐 하나 메고
말없이 흘러가는 하루의 조각들 속을 걷는다.
그림자는 아무것도 묻지 않고,
대신 나를 천천히 따라 그린다.
‘내가 가면,
너도 따라오겠니?’
그림자는 대답 대신
발자국 옆에 몸을 눕히고
기우는 해를 따라
자신을 길게 펼쳐 놓았다.
친구라 부르기엔
너무 조용하고
사랑이라 하기엔
조금 쓸쓸한 존재.
그래도 내일,
또 만나겠지.
아름다운 그림자.
내 삶을 묵묵히 지켜보는
조용한 동반자.
※ 2025 계간 <문학의봄> 시 부문 신인상(등단) 작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