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실용을 지향한 인재 국가의 설계자들
조선 초기, 세종은 단순한 왕권을 넘어 한 나라의 미래를 설계하는 건축가와 같았습니다. 그는 집현전을 단순한 학술 기관을 넘어 국가의 지식과 기술을 총괄하는 종합 연구소로 기능하게 했습니다. 이곳에서 학자들은 한글 창제와 같은 인문학적 업적뿐만 아니라, 농업 기술, 천문학, 의학 등 백성의 삶에 직결되는 실용 학문에 매진했습니다. 해시계인 앙부일구와 물시계인 자격루가 탄생한 것도 바로 이러한 실용주의적 정신의 결과였습니다. 세종은 지식이 책 속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현실의 문제를 해결하고 백성을 이롭게 하는 데 쓰여야 한다는 확고한 철학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정조 역시 이와 같은 실용의 정신을 계승하고 심화시켰습니다. 그는 규장각을 통해 정치 개혁과 학문 혁신을 동시에 추진했으며, 특히 초계문신제를 통해 젊은 관료들을 재교육하고 신분과 파벌을 초월한 인재를 적극적으로 등용했습니다. 이는 기존 질서에 안주하지 않고 새로운 시대를 이끌 인재를 육성하려는 정조의 강한 의지를 보여줍니다. 또한, 수원 화성 축조는 단순히 성곽을 쌓는 사업을 넘어, 거중기 등 최신 과학 기술과 효율적인 행정 시스템을 융합한 대규모 국책 프로젝트였습니다. 이처럼 세종과 정조는 이론과 실제를 결합하고, 인재를 키워 국가의 혁신을 이끌어내는 데 통치 역량을 집중했습니다.
2. 현대 한국의 역설적 풍경, 인재 미스매치의 심화
세종과 정조가 지향했던 실용적 인재 육성의 가치는 현대 한국에서도 핵심적인 과제로 남아있습니다. 한국은 반도체, 바이오, 자동차, 조선산업, 국방 기술 등 첨단 기술 분야에서 세계적 경쟁력을 확보하며 기술 혁신을 통해 국력을 키워왔습니다. 이 역동적인 성장의 중심에는 뛰어난 공학자와 기술 인력이 있었으며, 이들에 대한 사회적 수요는 최고조에 달했습니다. 이는 세종과 정조가 과학 기술과 실용 학문을 장려했던 정신의 21세기적 발현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한국 사회는 이와 동시에 깊은 역설을 안고 있습니다. 기술 혁신의 중요성이 강조될수록, 안정성과 높은 사회적 명예가 보장된 의사, 변호사, 고위 정치인 등 전통 전문직에 대한 선호가 더욱 공고해지는 현상입니다. 많은 젊은 인재들이 미래의 불확실성을 회피하고자 전통적인 직업군으로 몰리면서, 정작 국가의 미래를 이끌어야 할 첨단 기술 분야에서는 인력난이 심화되고 있습니다.
이러한 인재 미스매치는 장기적으로 국가의 혁신 동력을 약화시키고, 사회 전체의 활력을 떨어뜨릴 수 있는 심각한 문제로 대두되고 있습니다. 세종이 지식의 활용성을, 정조가 인재의 실용성을 강조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여전히 안정과 혁신 사이에서 균형을 잡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3. 세종과 정조의 시선으로 바라본 균형 있는 정책 방향 제안
현대 한국이 이 역설적 상황을 극복하고 지속 가능한 성장을 이루기 위해서는 전통적 가치와 혁신을 조화롭게 아우르는 새로운 정책적 접근이 필요합니다. 이는 단순히 어느 한쪽을 억제하는 것이 아니라, 모든 분야의 가치를 재정의하고 사회 전체의 잠재력을 극대화하는 것을 목표로 합니다. 세종과 정조가 백성의 삶을 풍요롭게 하기 위해 지식과 인재를 활용했듯이, 우리는 모든 국민의 재능이 존중받고 발휘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야 합니다.
이를 위한 구체적인 정책 방향은 다음과 같이 제안합니다.
가) 사회적 가치 재정의 와 인식 전환
사회 발전의 동력이 되는 공학자, 과학자, 숙련 기술자들의 가치를 높이 평가하는 사회적 분위기를 조성해야 합니다. 단순한 처우 개선을 넘어, 이들이 사회적 존경과 명예를 얻을 수 있도록 국가적인 차원의 홍보와 지원을 강화해야 합니다. 기술자가 곧 국가의 미래를 책임지는 핵심 인재라는 인식을 확산시켜야 합니다.
나) 미래 역량을 키우는 교육 시스템 혁신
주입식, 점수 위주의 교육에서 벗어나 문제 해결 능력, 창의성, 융합적 사고를 키우는 방향으로 교육 시스템을 전환해야 합니다. 4차 산업혁명 시대에 필요한 소프트웨어 교육을 강화하고, 인문학과 기술이 결합된 융합 교육을 통해 학생들이 다양한 분야에 대한 이해를 높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야 합니다.
다) 안전망을 갖춘 혁신 생태계 구축
도전과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는 사회 분위기를 만들기 위해, 정부는 혁신을 시도하는 이들을 위한 강력한 사회적 안전망을 구축해야 합니다. 실패를 용인하고 재도전할 수 있는 기회를 보장하는 제도적 지원을 통해, 많은 인재들이 안정적인 직업 대신 위험을 감수하고 혁신에 뛰어들 수 있도록 독려해야 합니다.
라) 전통 분야의 혁신 장려
전통 전문직에도 기술 혁신을 접목할 수 있도록 지원해야 합니다. 법률, 의료, 행정 등 기존 전문직 분야에 인공지능, 빅데이터 기술을 접목하는 융합 프로그램을 지원하여, 전통적인 지식과 현대 기술이 시너지를 낼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해야 합니다. 이는 전통 분야의 경쟁력을 높이는 동시에, 혁신이 특정 분야에 국한되지 않고 사회 전반으로 확산되는 계기가 될 것입니다.
결론적으로, 세종과 정조가 보여주었던 실용과 개혁의 정신은 과거의 유산이 아닌, 현대 한국이 나아갈 길을 밝히는 이정표입니다.
이들의 통찰을 바탕으로 전통과 혁신이 상생하는 정책을 펼쳐 나간다면, 우리는 모든 국민의 재능이 존중받고 발현되는 풍요로운 미래를 만들어낼 수 있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