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현 정부의 내년도 연구개발(R&D) 예산 삭감이 현실화되는 가운데 시스템반도체와 AI반도체에 대한 R&D 예산이 대폭 삭감되는 일이 가시화되고 있다.
현 정부의 110대 국정과제에는 반도체, AI, 배터리 등 미래전략산업 초격차 확보를 제시하였으나 최근 발표된 산업통상자원부 자료에 의하면 AI반도체, 차량반도체, 전력반도체에 대한 R&D 예산이 전년 대비 무려 53.1%가 삭감되었다.
한국은 자본재나 천연자원이 부족하여 그동안 반도체, 자동차, 디스플레이, 스마트폰 등 기술집약적인 산업을 육성정책으로 내세워 OECD 10대 경제 강국으로 도약한 바 있다. 그러나 미국과 중국의 패권 전쟁은 계속되고 있으며, 최근 미국은 중국에 대한 첨단기술 접근제한 규제 등을 발동한바 있다. 그럼에도 중국은 끊임없이 반도체, 스마트폰 등의 고급기술에서 선방하고 있으며, 급기야 8월 29일 화웨이는 Mate 60 시리즈의 스마트폰을 발표하였다. 대중국 반도체장비 수출통제 기준인 14nm(나노미터, 10억 분의 1m)를 훨씬 능가하는 7nm 공정 프로세서인 Kirin 9000s를 자체 개발하여 탑재하였고, 디자인이나 성능 면에서도 애플 iPhone 14 및 삼성 Galaxy S23과 동급의 수준을 자랑하고 있다. 이에 미국 상무부에서는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특히 화웨이는 5세대 이동통신인 5G 시장에서 정작 한국이 세계 최초 평창동계올림픽을 계기로 상용화에 성공한 통신시장의 기지국 장비를 점유하고 있어 결코 쉽게 보아서 될 상대가 아니다. 아직 메모리 분야에서는 삼성전자가 3nm의 세계 최고 기술을 보유하고 있으나 반도체 분야는 총성 없는 전쟁으로 불릴 만큼 그 패권 다툼이 심한 분야이다. 따라서 항상 R&D를 비롯한 설비투자를 지속적으로 하지 않고서는 패권을 빼앗길 수밖에 없다. 인공지능을 비롯한 자율주행차, 우주, 항공, 위성, 6G 등 반도체 없이는 그 어느 것도 구현 가능한 것이 없기 때문에 더욱 그러한 것이다.
반도체에 대한 R&D 예산은 인력비용보다 설비투자비의 비중이 월등히 높은 분야인 만큼 대폭적인 예산 삭감은 목표 연구결과를 얻지 못하는 상황으로 밖에는 볼 수 없다. 사활을 걸고 반도체 R&D에 투자하는 미국, 중국, 대만, 일본과는 대조적으로 우리 정부의 당초 구상과는 정반대로 가는 정책을 보며 1990년대 그렇게 호황을 누렸던 일본의 소니(SONY)가 2000년대 몰락하는 과정을 반면교사로 삼아야 할 것이다.
메모리반도체의 편중현상을 해소하고 시스템반도체에 투자하는 전략을 세우고, 서울대학교 반도체공동연구소장을 지내신 이종호 교수님을 과학기술정보통신부장관으로 영입한 것은 참으로 고무적인 일이었다. 그러나 손바닥 뒤집듯이 바뀐 정책에서 과거 외환위기인 IMF 상황에서도 R&D 예산만큼은 삭감하지 않았던 사례를 떠올려야 한다.
중국의 반도체 산업을 견제하기 위해 결성된 Chip4(미국, 한국, 대만, 일본)나 파운드리(Foundry)를 지나 팹리스(Fabless)를 지향하는 현실에서 반도체에 대한 R&D 예산 삭감은 앞으로 한국의 국격이 어떻게 될는지 깊이 생각해야 하는 대목이라고 본다.
※ 정보통신신문 링크 : [ICT광장] 거꾸로 가는 한국의 반도체 육성 정책 - 정보통신신문 (koit.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