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주가 태어난 것은 138억 년 전의 일이다. 그 광대한 시간 속에서 지구가 생겨났고, 생명이 움트기 시작했다.
45억 년이라는 지구의 역사 앞에서 인간의 100년은 얼마나 짧은가. 2백만분의 1, 0.000002%라는 수치는 우리의 존재가 얼마나 찰나인지를 말해준다.
하지만 그 찰나를 살아가는 우리는 결코 우연히 여기 있는 것이 아니다.
당신이 태어나기 위해서는 1억 개의 정자 중 단 하나가 난자와 만나야 했다. 1억분의 1. 그 경쟁을 뚫고 당신이라는 존재가 세상에 왔다. 나 역시 마찬가지다.
우리는 각각 1억 분의 1의 기적으로 이 세상에 발을 디뎠다. 그것도 정확히 지금의 당신으로, 지금의 나로. 부모님이 하루만 다르게 만났어도, 단 한 순간이라도 달랐다면, 우리는 지금의 모습으로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리고 74억 명의 사람들이 살아가는 이 지구에서, 우리는 같은 나라, 한국이라는 땅에 태어났다. 5천만 명. 전 세계 인구의 0.07%에 불과한 이 작은 확률 속에서 우리는 같은 언어를 쓰고, 같은 하늘을 보며 살아간다. 같은 계절의 변화를 느끼고, 같은 문화 속에서 숨 쉰다.
그런데 여기서 끝이 아니다.
그 5천만 명 중에서, 수많은 사람과 스쳐 지나가며 살아가는 이 삶에서, 나는 바로 당신을 만났다. 5천만분의 1. 오늘 아침 지나친 지하철의 누군가도, 카페에서 옆자리에 앉았던 사람도, 같은 건물에서 일하는 수백 명도 아닌, 바로 당신. 수많은 골목길 중 같은 길을 걷고, 수많은 시간 중 같은 순간에 그 자리에 있었던 우리.
2백만분의 1 × 1억분의 1 × 74억분의 5천만 × 5천만분의 1.
계산기로도 표현하기 어려운 이 천문학적인 확률을 우리는 뚫고 왔다. 우주가 시작되고, 지구가 식고, 생명이 진화하고, 문명이 일어나고, 수많은 조상이 이어져 내려온 그 끝에서 우리는 만났다. 빅뱅부터 지금, 이 순간까지, 모든 것이 완벽하게 정렬되어야만 가능한 일이었다.
어쩌면 우리는 그저 우연히 마주친 두 사람일 뿐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우연이라는 말 속에는 이토록 경이로운 필연이 숨어 있었다. 너와 내가 같은 시대를 살아가고, 같은 공간에 존재하고, 같은 순간을 나눈다는 것. 이것은 단순한 우연이 아니라, 우주가 138억 년 동안 준비해 온 하나의 완성된 결과물이다.
그런데 만남은 시작일 뿐이었다.
우리는 만났고, 말을 나누었고, 어느 순간 서로의 눈을 오래 바라보게 되었다. 수많은 사람 중에서도 유독 당신의 목소리가 귓가에 맴돌았고, 당신의 웃음이 내 하루를 바꾸어 놓았다. 그것을 사람들은 사랑이라고 불렀다.
사랑. 이것은 또 다른 기적이었다.
만남보다 더 희박한 확률. 만난다고 해서 모두가 사랑에 빠지는 것은 아니니까. 마음이 통한다는 것, 서로를 이해한다는 것, 상처받을 수도 있는데 기꺼이 마음을 연다는 것. 이 모든 조건이 동시에 맞아떨어져야 사랑은 시작된다. 타이밍도, 감정도, 상황도 모두 맞아야 한다. 어쩌면 만남보다 더 기적 같은 일인지도 모른다.
당신을 사랑한다는 것은, 우주가 138억 년 동안 준비한 이 만남에 내가 응답하는 방식이다. 천문학적인 확률을 뚫고 만난 당신을 그냥 지나치지 않겠다는, 이 기적을 소중히 여기겠다는 나의 대답이다.
생각해 보면 참 두렵기도 하다. 이 모든 확률이 조금만 어긋났어도 우리는 만나지 못했을 것이다. 당신이 그날 그 장소에 없었다면, 내가 다른 선택을 했다면, 우리의 타이밍이 조금만 달랐어도. 스쳐 지나가는 인연으로 끝났을 수도 있다. 서로를 알아보지 못했을 수도 있다.
하지만 우리는 만났고, 사랑하게 되었다.
그러니 오늘, 내 곁에 있는 당신을 다시 본다. 스쳐 지나갈 수도 있었던 사람. 만나지 못했을 수도 있었던 사람. 사랑하지 않을 수도 있었던 사람. 하지만 모든 불가능한 확률을 뚫고 내 앞에 서 있고, 내 손을 잡고 있고, 내 이름을 부르는 당신.
당신의 존재 자체가 기적이고, 우리의 만남이 기적이며, 이 사랑은 우주가 138억 년을 걸쳐 완성한 가장 아름다운 우연이다.
그래서 나는 당신을 사랑한다. 확률을 거스르고, 시간을 넘어, 우주의 모든 별이 정렬된 그 순간에 내게 온 당신을. 이 광활한 우주에서 나와 당신이 만나 사랑한다는 것, 그것은 어쩌면 우주가 우리에게 건네는 가장 조용하고도 위대한 기적인지도 모른다.
그리고 이 기적을 나는 매일 살아간다. 당신과 함께.
이 글을 쓰고 나는 가수 이선희의 ‘그중에 그대를 만나’를 조용히 들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