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호
부산에 서면
바람이 먼저 고향을 꺼내 놓는다
짭조름한 파도 냄새 속에서
잊고 지내던 시간들이
모래처럼 발끝에 스민다
자갈치 아지매의 웃음은
파도보다 먼저 넘실거리고
굵은 삶의 주름 사이로
바다의 햇살이
조용히 반짝인다
항구에 기대 선 배들은
먼 길을 돌아온 사람들처럼
잠시 숨을 고르며
갈매기 몇 마리
하늘과 바다 사이를
흰 편지처럼 오간다
나는 물빛을 들여다보다가
문득
고향 너머에 두고 온
친구의 얼굴을 본다
햇살에 흔들리는 바다 위에
은빛 비늘 같은 기억들이
둥둥 떠올라
가슴 한쪽을 스친다
잡으려 손을 내밀면
그대는 물결이 되어
내 마음 깊은 곳으로 흘러들고
나는 끝내
그리움 한 마리를 품은 채
바다를 바라본다
저 멀리 수평선 위에
조용히 마음 하나를 띄운다
부산의 바다는
오늘도 아무 말 없이
그 마음을 흔들며
나의 오래된 고향을
천천히 불러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