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가 축적해 온 기술과 지식의 역사는 결코 완벽한 계산과 치밀한 계획에 의해서만 이루어진 것이 아니다.
오히려 조금은 우스꽝스러울 정도로 무심코 저지른 실수, 예기치 않은 상황에서의 우발적 사건, 또는 단순한 호기심으로 인한 실험 실패가 진정한 ‘발견’으로 이어진 사례가 헤아릴 수 없이 많다.
우리는 이러한 실수의 산물들을 마주할 때마다 의아한 미소를 짓곤 한다. 누군가는 “참 어리석은 과정에서 나온 결과군” 하고 혀를 찰지 모르지만, 사실 그러한 순간들은 인간이 지닌 불완전성과 독창성이 어우러져 새로운 장을 연 증거이자, 결코 간과할 수 없는 삶의 축복이 되었다.
페니실린은 과학사에서 가장 상징적인 실수로부터 비롯된 성과다. 알렉산더 플레밍이 세균 배양 접시를 치우지 않고 방치했다는 사소한 부주의로 인해, 세균의 성장을 억제하는 푸른곰팡이가 발견된 것이다. 이 우연한 발견은 인류가 수많은 감염 질환의 굴레에서 벗어나는 길을 열었고, 지금까지도 수많은 생명을 살리는 필수 의약품으로 자리 잡았다. 백신이나 항생제의 발달이 모두 치밀한 설계에서 비롯된 것은 아니다. 오히려 번잡한 실험실 한 구석에서 비롯된 작은 실수가 약학사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는 점은 실로 흥미롭다.
X-레이 또한 마찬가지다. 뢴트겐이 방사선을 연구하던 도중 전혀 예상치 못한 형광 현상을 관찰한 사건은 인류에게 몸속을 투시하는 능력을 선사했다. 이전까지 의학진단은 몸을 직접 절개하지 않고서는 내부 구조를 확인하기 어려웠지만, 이 ‘예기치 않은 빛’ 덕분에 우리는 비가시 세계를 가시화하는 기적을 얻게 되었다. 이는 ‘보이지 않던 것을 보이게 하는 실수’라는, 아마도 과학사에서 가장 값진 아이러니가 아닐까?
가정의 주방을 혁신한 마이크로웨이브 오븐(전자레인지) 역시 피할 수 없는 우연으로부터 탄생했다. 레이더 기술을 연구하던 중 주머니에 넣어둔 초콜릿이 느닷없이 녹아버린 사건은, 음식 조리에 새로운 속도를 부여하는 가전제품의 시대를 열었다.
더 나아가 실험실에서 탄생한 플라스틱은 무수히 많은 형태로 변형 가능하다는 독특한 성질을 바탕으로 우리의 산업과 일상을 뒤바꿔 놓았다. 플라스틱이라는 물질은, 본래 의도한 목적과는 전혀 다른 용도로 다양하게 활용되며, 현대 문명에서 떼어놓을 수 없는 핵심 소재가 되었다.
역시나 사소한 실수에서 탄생한 포스트잇(Post-it)과 코카콜라(Coca-Cola)는, 우리 생활 속에서 신선한 반전을 이룬 대표 사례다.
접착제를 개발하다가 생각보다 약한 접착력이 나오는 바람에 ‘차라리 붙였다 떼어낼 수 있는 메모지를 만들어보자’는 생각으로 탄생한 포스트잇은, 전 세계인의 업무 문화를 변화시켰다. 이 작은 사각형 종이는 사무실, 가정, 학교 어디서나 정보를 공유하고 기억을 환기시키는 핵심적인 도구로 자리 잡았다.
코카콜라는 의약용 시럽을 만들다 나온 우발적 부산물이었고, 그 톡 쏘는 탄산음료는 전 세계적 기호품으로 거듭났다. 이 단순한 사건이 현재 전 세계적으로 가장 널리 알려진 탄산음료의 서막이 될 줄 누가 상상했을까?
또한 산화물 반도체의 발견도, 반도체 물질의 특성을 통제하려던 연구 과정에서 빚어진 부주의 속에 새로운 전자공학의 토대를 마련했다. 이러한 발견들은 모두 인류의 기술 발전을 가속화하고, 우리 삶을 더 편리하고 풍요롭게 만들어주었다.
여기에서 우리는 흥미로운 통찰을 얻게 된다. 인간은 완벽하지 않은 존재다. 이 사실은 인간의 역사 자체가 증명한다. 공들여 설계한 실험에서 꼭 예기치 못한 변수가 나타나고, 꼼꼼히 계산한 계획에도 빈틈이 생긴다. 그러나 그러한 빈틈은 단지 결점으로 남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길을 밝히는 틈새로 작용한다. 실수란 실상, 정밀한 기계가 범하지 않는 특유의 결핍이자 비약이다. 이 결핍은 오히려 인간이기에 가능한 독창적 사고와 미지의 세계로 나아가는 촉매로 작동한다.
오늘날 우리는 인공지능과 최첨단 기계들, 그리고 효율성과 정확성을 극한까지 추구하는 시스템 속에 살고 있다. 이들 기술은 탁월한 계산력과 일관된 처리 능력으로 우리의 삶을 관리하고 편리하게 만들어준다. 하지만 이 완벽한 메커니즘의 세계에서 정작 놓치기 쉬운 것이 있다.
그것은 바로, 인간만이 가질 수 있는 사유(思惟)와 철학, 가치관과 미학의 영역이다. 기계는 오류 없는 수행자가 될 수 있지만, 그 수행의 방향을 결정하는 창의적 사고와 ‘인간다움(humanness)’은 오직 인간에게서 비롯된다.
인간다움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단순히 실수를 저지르는 불완전성에 머무르지 않는다. 인간다움은 실수로부터 새로운 의미를 읽어내고, 그 순간을 자양분 삼아 다음 단계로 나아가는 성찰적 동력이다.
여기에는 철학적 질문을 던지고, 예술적 감각을 발휘하며, 도덕적 판단을 내리고, 나아가 미래를 상상하는 고유한 내면세계가 자리 잡고 있다. 완벽한 계산으로부터 결코 태동할 수 없는 창조성과 관용, 그리고 실수를 성장의 발판으로 삼는 역동성이 바로 그 증거이다.
궁극적으로, 인류가 실수를 통해 ‘창조’를 거듭해 온 역사는 인간의 한계를 스스로 인정하고 그로부터 확장해 나가는 과정이었다. 그렇게 얻어진 성과물들은 우리의 삶을 혁신했고, 더 나은 환경, 더 쾌적한 생활, 더 깊은 통찰을 가능케 했다.
페니실린부터 X-레이, 마이크로웨이브 오븐, 플라스틱, 포스트잇, 코카콜라, 산화물 반도체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우연의 산물들이 우리 손안에 놓여 있다. 이 모든 것들은 불완전한 인간이기에 가능한 ‘행복한 실수’들의 계보라 할 수 있다.
인간다움이란 그저 오류 없는 완벽함이 아니라, 부족함과 실수를 통한 새 길 찾기, 생각의 확장, 그리고 그로부터 빚어지는 풍요로운 결과에 있다. 그것이 바로 호모 사피엔스가 가진 고유의 힘이며, 어떤 인공지능도 가질 수 없는 인간성의 매력이다.
실수를 부끄러워하기보다 실수를 밑거름 삼아 도약하는 것, 그 과정에서 삶의 가치를 재발견하는 것, 이것이야말로 참으로 인간다운 모습이며, 인간다움을 빛나게 하는 원천이라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