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동, 경계를 초월하는 떨림의 깊이

by 이정호

우리는 눈으로 볼 수도, 귀로 들을 수도, 마음으로 느낄 수도 있는 파동 속에서 살아간다.


이 파동은 결코 한 가지로 정의할 수 없는 복합적 존재다. 주파수만을 기준으로 구분할 때는 오디오, 전파, 빛 등으로 다양하게 말하지만, 과학의 뿌리를 따라가면 결국 모든 것은 ‘에너지가 공간을 통해 전달되는 과정’이라는 공통된 특징으로 연결된다. 그러나 여기서 멈추지 않고 한 걸음 더 깊이 들어가면, 파동은 곧 삶과 세계를 이해하는 근본적인 연결고리가 된다.


소리 파동이 전해주는 경험은 직관적이다. 우리는 귀로 음악을 듣고, 잔잔한 울림에 가슴이 벅차오르며, 때론 심장 박동과 합쳐져 새로운 감정을 창조해 낸다.


무수히 많은 악기가 오케스트라 안에서 서로 다른 주파수로 진동하면서도 하나의 아름다운 화음을 이룰 수 있는 것은, 파동이 서로 공명하는 지점이 있기 때문이다. 그 공명은 물리학적으로 설명 가능하면서도, 동시에 우리의 영혼을 건드리는 미묘한 떨림을 만들어낸다.


전파의 파동은 눈에 보이지 않지만, 그 존재는 우리 일상을 촘촘히 지배한다. IoT와 AI, 이동통신 등 현대 기술의 근간을 이루는 이 전파가 없다면, 우리는 이토록 빠르고 광범위한 소통과 연결의 세상에 살지 못했을 것이다.


전파는 비가시 영역에서 끊임없이 움직이면서도 우리가 버튼 하나만 누르면 원하는 정보를 얻을 수 있도록 해준다. 이러한 편리함 뒤에는, 자연계를 지배하는 파동의 원리가 고스란히 자리 잡고 있다. 보이지 않는 영역에서 발생하는 진동이 어떻게 이토록 방대하고도 정교한 정보의 흐름을 가능케 하는지 깨닫는 순간, 과학적 신비감과 경외심이 함께 다가온다.


빛의 파동은 한층 더 신비롭다. 카메라 렌즈를 통해 포착되는 빛은 우리의 눈이 인지할 수 있는 극히 일부일 뿐이다. 하지만 이 파동 덕분에 우리는 색, 명암, 형태를 구분하고, 세상의 다양성을 인식한다. 더 나아가 빛은 양자역학적으로 파동이면서 입자라는 이중적 특성을 지닌다.


어쩌면 이중성이라는 개념이야말로 우리가 사는 세계가 얼마나 복합적이고 유연한지 보여주는 가장 극명한 예시가 아닐까. 빛은 타자(他者)의 존재를 확인케 해주는 통로가 되어주면서도, 동시에 그 자체가 독립된 에너지가 되어 우리 의식에 직접 파동을 일으킨다.


하지만 파동을 과학과 기술의 영역에만 가두는 것은 제한적이다. 우리는 사람과 사람을 이어주는 파동이 있음을 직감적으로 알고 있다. 마음과 마음 사이에 흐르는 공감의 에너지는, 학문적인 언어로 ‘파동’이라 칭하기에는 어딘가 모자란 것 같지만, 그 본질은 크게 다르지 않다.


상대방의 말 한마디, 미소, 시선이 만들어내는 잔잔한 울림은 물리적인 파동처럼 분명히 우리에게 전달된다. 그리고 그 울림은 때로는 의학적 치료 이상의 정신적 치유 효과를 발휘하기도 한다.


식물에 전해지는 파동도 그러하다. 식물에게 말을 걸고, 노래를 들려주면 더 잘 자란다는 이야기는 과장된 미신처럼 들리기도 하지만, 그 기저에는 살아있는 존재 간에 교감할 수 있는 보이지 않는 끈이 있다는 믿음이 깔려 있다.


이는 파동 이론에선 단순 진동으로 설명할 수도 있지만, 철학적으로는 ‘생명과 생명 사이의 교감’이라고 확장할 수 있다. 결국 이 교감은 파동의 또 다른 형태, 즉 우리가 아직 완전히 규명하지 못한 미묘한 에너지의 흐름일지도 모른다.


사물에 스며든 파동 역시 무궁무진하다. 오래된 건물을 지을 때마다 들어간 망치질의 진동, 그곳에서 살아가던 사람들의 발걸음, 그리고 시간의 경과에 따른 하중의 미세한 떨림이 건물 곳곳에 겹겹이 축적되어 있다.

그 벽을 손끝으로 느껴보면, 단순히 차가운 콘크리트가 아니라 수많은 이야기가 깃든 흔적이 전해지는 듯하다. 어떤 이들은 이를 ‘장소가 가진 아우라’라고 부르기도 하고, 또 어떤 이들은 무형의 역사적 흔적이라 말하기도 한다. 학문적인 단어로 ‘파동’이니 ‘진동’이니 정의하려 들기보다, 그저 감각과 감성을 열어두고 수용할 때 비로소 그 깊은 떨림의 함의를 체득할 수 있는지도 모른다.


결국 파동은 경계를 초월한 존재다. 물질세계와 정신세계 사이에 뚜렷한 경계가 없음을 보여주는 은유이자, 실제로 에너지가 전달되는 장(場)이다.

물리학에서 파동은 분명 엄격한 수식으로 기술될 수 있으나, 동시에 그것을 관통하는 인문학적·철학적 해석 역시 허무맹랑하지 않다. 오히려 파동은 학문 간의 경계를 허물고 융합을 촉진시킨다. 우리가 공명할 수 있는 ‘시공간의 어딘가’를 찾아내면, 그 연결점에서 새로운 통찰이 태어난다.


결국 이 모든 파동들이 모여 우리는 더 깊이 있는 공감을 나누며, 더 큰 세계를 이해한다. 눈에 보이고 귀에 들리는 것만이 전부가 아니라, 불가시·불가청 영역 속에도 여전히 살아 숨 쉬는 무수한 파동들이 우리 삶을 둘러싼다. 파동은 단지 에너지를 전달하는 수단이 아니라, 우리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매 순간 증명해 주는 매개체다.


그 매개체를 통해 서로 다른 존재들이 만나고, 영향을 주고받으며, 이 세계를 수놓는 빛과 소리와 마음이 서로 어우러진다. 그리고 우리는, 그 파동 속에서 끊임없이 울리고 있는 우주적 선율에 귀 기울이며, 스스로가 ‘살아 있음’을 조금씩 더 깊이 깨닫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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