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Four Seasons
한국인들이 가장 사랑하는 클래식 안토니오 비발디의 사계로 이야기를 시작해보려고 합니다.
사계절이 뚜렷한 나라인 한국, 그래서인지 이 음악은 우리에게 유독 친근하고 오래도록 사랑받아왔죠.
비발디의 사계를 시작으로 영국 현대 클래식 작곡가 막스리히터가 재작 곡한 <리콤포즈드: 사계>에 대해
이야기해보려 합니다.
안토니오 루치오 비발디(Antonio Lucio Vivaldi)
그는 1678년 베네치아에서 태어난 음악가이자 사제였습니다.
그의 선천적인 붉은 머리 덕에 '붉은 머리의 사제'(II Prete Rosso)라는 별명을 갖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의 삶은 교회제단보다는 음악의 무대로 기울어져 있었죠.
게다가 그는 심한 천식을 앓고 있어 사제업무보다는 작곡과 연주에 더 집중했다고 전해집니다.
그의 아버지 조반니 바티스타 비발디(Giovanni Battista Vivaldi)는 바이올리니스트였고 비발디 역시 자연스럽게 바이올린을 배우며 음악의 길로 들어서게 됩니다.
비발디의 사계는 단순한 기악작품이 아닌 기악음악과 문학작품이 결합한 음악입니다.
비발디는 악보출판 당시 각 악장마다 짧은 소네트(시)를 붙여, 어떤 풍경을 묘사해야 하는지, 연주자들은 어떤 느낌을 가지고 연주를 해야 할지를 세세히 적어두었습니다.
해당 소네트들은 비발디 본인이 직접 쓴 것으로 추정되고 있습니다.
봄(La Primavera, RV 269)
새들이 지저귀고, 시냇물이 흐르며, 꽃이 피는 소리마저 들릴 듯한 음악
비발디의 봄은 마치 추운 겨울을 나고 첫 햇살이 피부에 닿는 순간을 생생히 묘사하는 듯합니다.
그는 이 곡을 쓸 당시 베네치아의 고아원이자 음악학교에서 아이들의 음악교육을 담당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인지 그들로부터 받은 생기와 에너지가 고스란히 담겨 있습니다.
소네트의 1악장은 생명이 피어나는 활기찬 분위기, 2악장은 충직한 개를 옆에 두고 잠이 든 양치기의 모습을,
3악장은 양치들의 춤과 봄의 절정을 노래합니다.
여름(L'Estate, RV 315)
한낮의 태양 아래, 여름은 가장 강렬한 색채의 계절이지만 비발디는 그 이면의 고통과 두려움을 포착합니다.
당시 이탈리아의 여름도 한국의 여름만큼이나 덥고 고통스러움이 느껴지듯 굉장히 무겁고 처지는 1악장으로 시작됩니다. 그러다 2악장에서는 천둥과 번개를 동반하는 장마가 시작되는데요, 비발디는 기량 있는 바이올리니스트였기에 바이올린의 속주로 천둥과 번개의 두려움을 묘사합니다.
재미있는 점은, 여름에도 동물이 등장하는 것인데, 바로 파리와 벌레떼입니다.
더운 날씨에는 파리와 벌레떼들이 기승인데 비발디 역시 이를 놓치지 않고 성가진 파리와 벌레떼들의 성가심을 음악으로 표현합니다.
가을(L'Autunno, RV 293)
와인이 익고 들판은 금빛으로 물드는 수확의 계절, 가을입니다.
수확을 축하하고자 축제가 열리고, 축제에 빠질 수 없는 것이 바로 술입니다.
비발디는 인간의 원초적인 기쁨과 나른한 휴식을 유쾌하게 그려냅니다.
미끄러지는 듯한 음들과 변덕스럽고 빠르게 변화하는 리듬들이 술에 취한 농부들의 모습을 그려내는데요, 그러다 2악장이 되면 갑자기 고요한 멜로디로 술에 취해 잠이 든 조용한 마을을 노래합니다.
그가 얼마나 삶의 다채로운 모습을 재치 있게 담아내는지를 보여주는 악장이죠.
겨울(L'Inverno , RV 297)
차갑고 투명한 공기, 얼어붙은 창밖 풍경.
비발디의 겨울, 고요하면서도 날카롭습니다. 맹추위로 인해 이가 덜덜 떨리고, 발을 동동 구르는 모습으로 겨울은 시작됩니다. 겨울의 묘미는 바로 아늑하고 따뜻한 집에서 이불을 뒤집어쓰고 귤을 까먹는 것 아닐까요?
비발디 역시 같은 생각을 했는지, 따듯한 집에서 벽난로를 쬐며 겨울비가 내리는 창문을 바라보는 모습을 노래합니다. 겨울비가 창문에 떨어지는 모습을 '피치카토' 기법 (현을 손으로 뜯는 현악기의 주법)으로 또르르 떨어지는 빗방울을 표현합니다.
300여 년이 지난 지금도 이 음악이 여전히 감동을 주는 것은 자연을 단순히 묘사하는 것이 아닌 계절의 변화 속에서 인간의 삶을 비추어 그 속에 담긴 감정의 결이 우리와 크게 다르지 않기 때문입니다.
익숙하지만 다시 꺼내 듣게 되는 곡.
계절처럼 되풀이되지만 이번에는 조금 다르게 다가오지 않으신가요?
익숙함을 다시 듣는법, 막스 리히터
막스 리히터는 독일 태생, 영국에서 활동한 영국 현대 작곡가입니다.
영국 스코틀랜드 에든버러 대학교, 런던 왕립음악학교에서 작곡을 전공하였고, 현대음악의 거장 루치아노 베리오의 사사를 받은 이른바 ' 정통 클래식 작곡가'인 셈이죠.
하지만 그의 음악은 영화음악과 다큐멘터리로 더 많이 알려져 있습니다.
레바논 전쟁의 참상을 다룬 <바시르와 왈츠를> , SF 영화 <컨택트> 등
"비발디 사계를 어릴 적부터 많이 들었고 사랑했다, 하지만 쇼핑센터, 광고 심지어 휴대폰 연결음에서 까지 듣다 보니 새로운 방법으로 다시 사계와 사랑에 빠지고 싶었다“
그래서 그는 "재작곡'이라는 대담한 선택을 하게 되죠.
막스 리히터는 비발디의 사계를 진심으로 사랑했던 작곡가였고,
그 애 대한 애정으로 비발디의 사계를 단순 리메이크, 편곡이 아닌 재작곡이라는 대담한 도전을 하게 됩니다.
그전까지 리메이크와 재해석을 하는 아티스들은 많았지만 이처럼 재작곡을 한 경우는 잘 없었는데 그 결과
그는 단숨에 세계적인 작곡가로 자리매김하게 됩니다.
그는 현대적인 감각 안에 비발디의 언어를 지켜내는 것이 커다란 숙제였을 것 같습니다.
곡을 독창적으로 자신만의 스타일로 재구성 했지만 그 속에 '비발디의 DNA'를 잃지 않게 노력한 결과 그만의 독창적인 음악세계가 구축됩니다.
저 역시 애정하는 애청곡이 있지만 자주 듣다 지겨워져 어느새 플레이리스트 한 구석으로 밀어놓고 한동안 듣지 않았던 기억이 많습니다. 익숙해지고 반복되다 보면 이렇듯 우리는 감흥을 잃게 되는데요, 거기에 멈추지 않고 새로운 시선으로 대상을 바라보고 변화를 주는 리히터의 삶의 태도가 우리에게 영감을 가져다줍니다. 비단 음악뿐 아니라 매일 지나치던 출퇴근길에 일부러 돌아가서 간다던지, 새로운 길로 가다 보면 미처 보지 못했던 소중한 장소들을 발견하고, 나만의 소소한 행복들이 더해지며 익숙한 것들을 더 깊게 사랑할 수 있지 않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