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roica

6.25 전쟁 발발 75주년을 기리며

by 여자말러리안

2025년은 6.25 전쟁 발발 75주년입니다.

1950년으로부터 정확히 75년이 지난 오늘 우리는 다시 한번 '전쟁'이라는 비극 속에 음악이 인간에게 어떤 위안과 의미를 전할 수 있는지 함께 되새겨보고자 합니다.

시간이 흐른 뒤에도 남아 있는 음악들은 그 순간의 숨결과 감정을 고스란히 담아,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 깊은 울림을 전합니다.

음악은 기록이자 기억이고, 때론 말보다 더 깊은 이야기를 품고 있죠.

지금부터 전쟁이라는 주제를 담은 있는 네 편의 음악과 함께, 그 속에 담긴 인간의 용기와 희생 그리고 '영웅'의 흔적들을 함께 따라가 보도록 하겠습니다.




쉰들러 리스트 포스터


첫 번째

존 윌리엄스(John Williams)가 작곡한 Main Theme from Schindler's List입니다.

1994년에 개봉한 이 작품은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이 만든 전쟁영화로, 실화를 바탕으로 하고 있습니다.

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의 사업가 오스카 쉰들러는 처음에 이익을 위해 값싼 유대인 노동자들을 자신의 공장에 고용했지만, 시간이 흐르고 나치의 유대인 학살 현장을 직접 목격하게 되고, 그는 자신의 전재산을 털어 1,200명의 유대인을 구하는 길을 선택합니다. 쉰들러가 직접 작성한 '리스트'에 이름을 올린 이들은 강제수용소로 보내지지 않고 살아남을 수 있었죠. 이 '리스트'가 바로 영화 제목이기도 합니다.

이 음악은 20세기를 대표하는 영화음악 작곡가 존 윌리엄스가 작곡했으며, 세계적인 유대계 바이올리니스트

이자크 펄만(Itzhak Perlman)이 바이올린 솔로를 맡았습니다.

사실 저는 고등학교 시절, 영화를 보기 전에 먼저 이 음악을 먼저 알게 되었습니다. 비록 영화의 줄거리는 알지 못해도 애잔하면서 쓸쓸한 선율이 도대체 어떤 이야기를 품고 있을까 궁금해졌고, 결국 영화를 찾아보게 되었고 그게 저에게는 영화음악에 빠져들게 된 계기가 아니었을까 싶습니다.



존 윌리엄스는 이 곡을 작곡할 때부터 이자크 펄만의 연주를 염두에 두고 있었다고 전해집니다. 그는 펄만이 이 곡을 연주할 때야 비로소 음악이 완성된다고 확신했는데, 이는 단순한 기술적 완성도를 넘어 음악에 담긴 깊은 감정을 온전히 순수하게 전달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 펄만의 연주뿐이라는 믿음에서 비롯된 것이었습니다. 한편, 감독 스필버그 역시 유대인으로서 이 영화에 특별한 애정을 담아 작품을 완성했다는 점도 흥미롭습니다.





이자크 펄만


스티븐 스필버그와 존 윌리엄스는 수십 년간 서로에 대한 깊은 신뢰와 바탕으로 영화음악의 새로운 지평을 이어나가고 있습니다. 함께 완성한 대표작으로는 <죠스(Jaws)>, <레이더스: 인디아나 존스> (Raiders of the Lost Ark), <E.T.>, <라이언 일병 구하기(Saving Private Ryan> , 그리고 최근작 <더 파벨만스(The Fabelmans)> 등이 있습니다.


존 윌리엄스와 이자크 펄만


포보스 기사 중,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은 존 윌리엄스의 음악에 대해 "내 영화는 사람들의 눈에 눈물을 고이게 하지만, 그것을 흘러내리게 하는 것은 존 윌리엄스의 음악이다"라며, 그의 음악이 관객의 감정을 깊이 흔들고 이야기에 생명을 불어넣는 힘이 있다고 평했습니다.


다시 음악이야기로 돌아와, 해당 주제 음악은 영화 곳곳에서 반복적으로 등장합니다. 유대인소녀 빨간 코트를 입고 학살 현장을 홀로 걷는 장면, 그리고 쉰들러가 자신이 더 많은 유대인을 구하지 못했다는 죄책감에 오열하는 장면 등 쉰들러 내면 변화와 참회, 그리고 희생당한 이들을 향한 깊은 애도의 감정을 오롯이 전해줍니다. 극한의 상황 속에서도 자신의 모든 것을 기꺼이 내어 희생하며, 먼저 나서서 손을 내밀고, 차별과 억압 속에 놓인 이들에게 용기와 연대를 건네는 것이 진정한 영웅이 아닐까 생각이 듭니다.






두 번째 곡 표트르 일리치 차이코프스키 < 1812 서곡> op.49

두 번째 곡은, 러시아에게 아주 특별한 해를 기념하기 위해 작곡된 작품입니다.

바로 1812년, 나폴레옹의 대군이 러시아를 침략했던 해이죠. 당시 나폴레옹은 무려 60만 대군을 이끌고 러시아를 침공하여 모스크바까지 점령합니다. 하지만 러시아 민중들의 끈질긴 저항과 러시아의 강추위가 더해져 프랑스 군을 마침내 몰아내게 됩니다. 이 작품은 치열했던 저항과, 러시아인들의 승리를 기억하는 승전가인 셈입니다. 가사가 없지만, 알고 듣다 보면 치열한 전쟁의 흐름과 반전이 음악 속에 고스란히 느껴집니다.

사실 이 곡이 작곡된 시기는 1812년이 아닌, 그로부터 70년 뒤인 1882년입니다. 나폴레옹 격퇴 70주년을 기념하기 위한 행사에 맞춰 만들어졌습니다. 차이코프스키는 당시 친구이자 스승이던 니콜라이 루빈스타인의 권유로 이곡을 불과 6주 만에 완성하게 됩니다. 하지만 정작 차이코프스키 자신은 이 작품에 대해 그다지 애착이 없었던 듯합니다. 그의 후원자 폰 메크 부인에게 보낸 편지에는 이렇게 털어놓습니다.

"어떤 기념행사를 위해 작곡하는 것만큼 맥 빠지는 일도 없다. 나는 이 곡을 아무런 애정 없이 썼고, 그렇기에 가치도 없다." 그 당시 차이코프스키는 단순히 작곡료를 벌기 위해 시작한 일이었지만 현재는 러시아 민중의 애국심을 고취시키고 승전의 상징이자 대표적인 관현악곡으로 사랑받고 있습니다.


그럴 수 있었던 이유는, 이 곡이 단순한 행사용 음악에 머무르지 않고

차이코프스키가 치열한 전쟁 서사를 다양한 음악적 장치로 생생하게 표현했기 때문입니다.

특히 프랑스의 침공과 러시아의 저항이라는 역사적 갈등을
대비되는 선율들의 교차와 충돌로 그려낸 점이 이 곡의 백미라 할 수 있습니다.
프랑스 군대가 침략하는 장면에서는 프랑스 국가인 ‘라 마르세예즈(La Marseillaise)’가 등장하고,
이어 러시아 민중의 강렬한 저항을 나타내는 민속 선율 ‘U vorot vorot(우 보로트, 보로트)’가 이어집니다.

곡 중반부에 이르면 프랑스와 러시아 선율이 뒤엉키고,
다양한 타악기가 더해져 긴장감과 팽팽한 대립을 생생히 그려냅니다.

그리고 마침내, 이 긴장감의 절정을 알리는 ‘대포 소리’가 등장하는데요,
악보에는 실제 ‘cannon’ 즉 대포를 쏘라는 지시가 명확히 적혀 있습니다.

곡 후반까지 인내심을 가지고 기다리면,
생생한 대포 폭발음을 들을 수 있죠.

1812 서곡 음반을 선택할 때는,
연주뿐 아니라 이 대포 소리의 리얼함도 꼭 확인해야 할 ‘숨은 관전 포인트’라 할 수 있겠습니다.

2001년 텔락에서 발매된 신시내티 팝스 오케스트라의 SACD 버전은 19세기 프랑스 대포를 실제로 사용해 녹음한 것으로 유명한데, CD 뒷면에 볼륨을 무심코 올리면 스피커 우퍼가 터질 수 있다는 경고문이 붙어있습니다.







세 번째 곡은 토마소 지오반니 알비노니의 ‘아다지오 G단조’입니다.

알비노니는 이탈리아 베네치아 출신으로, 비발디와 함께 바로크 시대를 대표하는 작곡가 중 한 명입니다. 비발디보다 7년 먼저 태어났으며, 다수의 오페라와 소나타를 작곡했지만 오늘날까지 전해지는 작품은 많지 않습니다. 그중 가장 널리 알려진 곡이 바로 이 ‘아다지오’와 몇몇 오보에 협주곡 정도라 할 수 있죠.

이 곡은 매우 익숙한 선율로, 누구나 한 번쯤은 들어봤을 법한 음악입니다.
G단조라는 조성은 흔히 우스와 쓸쓸함을 가장 잘 표현하는 키로 꼽히는데요,
브루흐의 바이올린 협주곡 1번, 모차르트 교향곡 40번, 비탈리의 샤콘느 역시 이 조성으로 작곡되어 있습니다. 알비노니의 아다지오 역시 애수에 차 있으면서도 절제된 슬픔이 깊이 배어 있는 작품입니다.

하지만 이 곡에는 흥미로운 비밀이 있습니다. 사실 이 ‘아다지오’는 20세기 음악학자 레모 지아조토(1910~1998)에 의해 재구성되거나 심지어 작곡되었다는 의혹이 존재합니다.

1945년, 제2차 세계대전 막바지에 영국과 미국 공군의 드레스덴 폭격으로 섹슨 도서관이 파괴되자,
지아조토는 이 도서관 잔해 속에서 바로크 시대 악보의 일부를 발견했다고 주장합니다.
그 악보는 알비노니가 작곡한 교회 소나타 작품 4의 일부로 추정되는데,
선율의 일부와 베이스 라인, 화음 기호만 적힌 미완성 스케치였습니다.

그는 이 불완전한 악보를 바탕으로 오르간과 현악 합주를 더해 현재 우리가 듣는 ‘아다지오’를 완성했습니다.
즉, 이 곡은 알비노니의 순수한 작품이라기보다는,
지아조토가 알비노니의 주제를 바탕으로 새롭게 창작한 ‘알비노니 스타일의 아다지오’라 할 수 있죠.

이처럼 ‘알비노니의 아다지오’는 아름다운 위작으로,
작곡가와 연구자, 그리고 역사적 상황이 얽혀 만들어진 독특한 음악적 이야기를 품고 있습니다.


보스니아 내전

알비노니의 ‘아다지오 G단조’는 음악사적으로도 특별하지만,

20세기말 보스니아 내전이라는 비극적 사건과 맞닿으며 더욱 깊은 의미를 갖게 되었습니다.

보스니아 내전은 1990년대 초 유고슬라비아가 해체되면서 발생한 민족 간 갈등에서 비롯된 내전으로,
특히 수도 사라예보는 약 4년간 세르비아계 민병대에 의해 포위당해 수많은 민간인이 희생된 참혹한 도시였습니다. 1992년 5월 27일, 사라예보의 한 빵집 앞에서 빵을 사기 위해 줄을 서 있던 민간인 22명이 포탄 공격으로 목숨을 잃는 비극적인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베드란 스마일로비치


이 소식을 접한 사라예보 필하모닉 수석 첼리스트 베드란 스마일로비치는 사살이 일어난 바로 다음날, 자신의 첼로를 등에 메고 해당 장소에서 22일간, 전쟁의 한복판에서 ‘아다지오’를 연주했습니다. 이 22일 동안 어느 누구도 그의 연주가 이어지는 시간만큼은 총을 쏘지 않았고, 지하에 숨어 있던 민간인들은 첼로 선율을 들으며 잠시나마 희망과 위로를 얻었습니다. 스마일로비치의 이 연주는 단순한 음악 행위를 넘어, 그의 용기 있는 행동은 보스니아 내전의 참상을 세계에 알려 결과 내전이 예상보다 조기에 종료되는 데에도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이 첼리스트야말로 진정한 영웅이 아닐까요? 폭력과 절망 속에서도 희망을 잃지 않고 평화를 노래한 그의 모습은 우리 모두에게 깊은 영감을 줍니다.







오늘 우리가 감상할 마지막 곡은 베토벤의 교향곡 3번, 흔히 ‘에로이카’라 불리는 작품입니다.

이 곡은 1803년부터 1804년 사이에 작곡되어 1805년에 초연되었는데요, 당시로서는 파격적으로 긴 연주 시간, 약 50분에 달하는 대곡이었고, 기존 고전주의 교향곡의 틀을 깨며 낭만주의 음악의 서막을 열었다고 평가받는 작품입니다. 이렇게 평가되는 이유로 1악장을 예를 들어 설명하자면, 에로이카 1악장은 전통적인 소나타 형식을 기반으로 하지만, 여러 면에서 그 형식을 크게 확장하고 변형한 작품입니다.

첫째, 전개부가 매우 길고 복잡해졌습니다. 고전주의 시대 소나타 형식에서는 전개부가 비교적 짧고 주로 기존 주제를 변형하는 역할을 했지만, 에로이카 1악장에서는 전개부가 200마디가 넘을 정도로 확장되어, 기존 주제들을 자유롭게 변주하고, 새로운 제3주제까지 등장시킵니다.

둘째, 조성의 자유로움이 두드러집니다. 전통적으로 소나타 형식은 주로 원조성과 그 인접 조성 내에서 이동하지만, 이 곡은 장 7화음과 같은 강한 불협화음, 그리고 잦은 조바꿈으로 인해 조성 감각이 매우 불안정해지고 다채로워졌습니다.

셋째, 리듬과 박자의 파격적 변형이 눈에 띕니다. 기본 3/4박자를 유지하면서도 짝수 박자가 삽입되어 박자 감각에 혼란을 주며, 이는 당시 클래식 음악에서 매우 혁신적인 시도로 평가받습니다.

마지막으로, 재현부와 종결부 역시 단순히 주제를 반복하는 것이 아니라 변주와 새로운 주제의 도입을 통해 소나타 형식의 경계를 허물며, 전체적으로 기존 소나타 형식보다 훨씬 더 유연하고 드라마틱한 구조를 보여줍니다. 이러한 점들이 모여 에로이카 1악장은 소나타 형식을 확장하고 심화시킨, 낭만주의 음악으로 넘어가는 중요한 이정표로 평가받습니다.


베토벤은 이 곡을 원래 나폴레옹 보나파르트에게 헌정하려 했습니다.

당시 그는 프랑스혁명과 계몽사상, 그리고 자유와 정의의 이상을 높이 평가하며, 나폴레옹이 인류 보편의 자유를 실현할 영웅이라 믿었기 때문이죠. 하지만 나폴레옹이 황제로 즉위하고 독재자의 길을 걷는다는 소식을 듣고는 크게 실망했습니다. 그는 악보 첫 장에 ‘보나파르트’라고 썼던 헌정 문구를 격노하며 찢어버렸고, 헌정을 철회하여 ‘익명의 영웅’ 혹은 ‘모든 시대의 영웅’을 위한 음악으로 바꾸었습니다.

이 ‘에로이카’는 민중을 위해 봉사하는 진정한 영웅의 정신, 즉 자유와 정의를 향한 인간 정신의 고귀함을 표현한 작품입니다. 베토벤은 당시 프랑스 대사였던 루돌프 클로이쩨를 통해 나폴레옹과 프랑스혁명의 이상을 자세히 들을 기회를 가졌고, 플라톤의 ‘공화국’도 탐독하며 진정한 영웅상을 고민했습니다.
그가 처음 쓴 ‘보나파르트’ 헌정은 그런 배경에서 나온 것이지만, 황제가 된 나폴레옹의 야심과 권력욕에 큰 실망을 느끼며 작품의 방향을 바꾼 것이죠.


에로이카’에 얽힌 가장 중요한 배경 이야기 중 하나는 ‘하일리겐슈타트 유서’입니다. 1802년, 32살의 베토벤은 점점 심각해지는 청력 손실로 인해 큰 절망에 빠졌습니다. 치료할 방법이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된 그는, 자신의 고통과 내면의 혼란을 담아 두 동생에게 자살을 결심하는 편지를 씁니다.

이 편지는 베토벤이 당시 머물던 비엔나 인근의 조용한 마을 ‘하일리겐슈타트’에서 쓰였기에 ‘하일리겐슈타트 유서’라 불리죠. 편지에는 이렇게 적혀 있습니다. “이대로 죽는 것이 후회 없다. 죽음이 나를 끝없는 고통에서 해방시켜 줄 것이기에.” 하지만 베토벤은 결국 죽음을 선택하지 않았고, 이 절망과 고뇌는 그의 창작 에너지로 전환되어 그 후 1803년에 ‘에로이카’ 교향곡을 쓰기 시작합니다. 이 곡은 베토벤이 고통 속에서도 인간의 존엄과 자유, 이상을 노래한 위대한 예술적 승리이자, 그가 죽음과 싸우며 만들어 낸 희망의 상징이라 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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