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은 누구의 것인가?

바르비롤리의 장 시벨리우스 교향곡 2번

by 여자말러리안


열 명이 있으면 열 가지 해석이 있고, 백 명이 있으면 백 가지의 교향곡이 탄생한다.

photo by 김승준


1902년 헬싱키. 시벨리우스의 교향곡 제2번이 연주되자 청중들은 숨죽여 귀 기울이다가, 곧 눈물과 환호로 답했다. 그들에게 이 음악은 교향시 핀란디아의 뒤를 잇는, 민족의 독립을 향한 뜨거운 외침이자 핀란드인의 가슴에 불을 지피는 함성이었다. 시벨리우스 자신은 이 곡을 정치적 선언이라기보다, 내면의 심정을 드러낸 ‘영혼의 고백’에 가깝다고 표현했다는 전언이 있다. 하지만 교향곡의 출발점은 전혀 다른 곳에 있었다. 후원자 악셀 카르펠란(Axel Carpelan)의 권유로 이탈리아 라팔로 근교의 산악 별장에서 머물던 시벨리우스는, 햇살과 고대 유적이 가득한 남유럽의 풍경 속에서 새로운 구상을 시작했다. 그는 처음엔 돈 주앙 설화에 바탕한 오케스트라 환상곡을 쓰려했다. 끝없는 욕망과 허무, 그리고 죽음의 그림자를 담아내려 했던 그 스케치는 결국 완성되지 못했지만, 일부가 교향곡 2번 속으로 흡수되었다. 특히 2악장의 무겁고 비극적인 선율은 그 흔적을 여전히 간직하고 있다.

이탈리아적 밝음과 돈 주앙의 어둠이 공존하는 이 작품은, 초연 순간 핀란드인들에게 민족적 승리의 교향곡으로 수용되었다. 그러나 시벨리우스 자신은 정치적 선언을 부인하며, 이 곡이 “영혼의 고백”에 더 가깝다고 여겼다는 전언이 전해진다. 청중이 들은 것은 독립의 함성이었고, 진실은 아무도 알지 못한다.



시벨리우스는 1889년부터 1890년도에는 베를린에서, 1891~1891에는 빈에서 유학하였는데, 그의 유학 생 활은 음악적으로 매우 귀중한 경험이었지만 오랜 타향 생활에서 오는 결핍 감이 그를 술과 담배에 빠지도록 했다. 방종하고 무절제한 생활은 그의 건강을 해쳤을 뿐만 아니라 경제적 어려움도 가져왔다. 그러나 1892년 시벨리 우스는 아이노 예르네펠트(Aino Järnefelt)를 만나 결혼을 했고 헬싱키 음악 원에 취직하여 생활의 안정을 찾으며 작곡 활동에 전념했다. 또한 1901년 시벨리우스는 청각에 이상이 생겨 건강의 악화로 고통을 받기 시작했다고 한다(인용: 장시벨리우스의 분석연구 An analytical Study of <five songs, op.37 by Jean Sibelius>-세종대학교 대학원 음악학과 강 남 희(2022년 8월))

작곡가의 개인 내면이 음악에 담겼을지 아무도 모를 일이다.


그렇다면 음악은 누구의 것일까. 작곡가의 고백일까, 아니면 청중이 부여한 집단적 의미일까. 교향곡 제2번은 바로 그 질문을 던진다. 한 작품은 창작자의 손을 떠난 순간, 시대와 사회, 그리고 수많은 청중의 해석 속에서 새로운 얼굴을 얻는다. 그래서 오늘 우리가 듣는 시벨리우스의 교향곡 2번은 단 하나의 답을 갖지 않는다. 그것은 동시에 민족의 교향곡이자, 한 인간의 영혼의 고백이며, 지금 이 순간 우리 각자의 삶과도 맞닿는 이야기다. 또 다른 이들은 이 교향곡을 민족주의적 상징이나 내면적 고백으로만 보지 않았다. 부드럽게 흐르는 선율과 목가적 정취 속에서 핀란드의 전원을 노래한 작품, 곧 ‘시벨리우스의 전원 교향곡’이라 부르기도 했다.

그렇다면 음악은 누구의 것일까


photo by 김승준

아마도 그것은 어느 한 사람의 것이 아니라, 각자의 귀와 마음속에서 다시 살아나는 또 하나의 이야기일 것이다. 시벨리우스의 교향곡 2번이 백 년을 넘어 오늘 우리의 삶에도 울림을 남기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나에게 이 교향곡은 핀란드의 전원을 노래한 목가적인 교향곡 같기도 하고, 동시에 핀란드인들의 애환을 담은 '핀란디아'교향시의 연장선처럼 들리기도 한다. 특히 2악장은 조용히 가라앉는 깊은 묵상처럼 느껴지기도 하고 핀란드의 어둡고 적적한 날씨를 대변하듯, 잠시 멈추어 선 듯한 그 정적은, 단순한 침묵이 아니라 내면을 향한 응시로 느껴지기도 하다. 그리고 3악장과 4악장의 아타카는 폭발적인 오케스트라의 에너지로 마치 억눌린 감정이 해방의 환호로 치닫는 듯한 순간을 그려내는 듯하다. 결국 나는 이 교향곡에서 목가적 풍경, 개인의 고백, 민족적 감정의 고취 이 세 가지를 모두 느낀다. 흥미로운 것은, 핀란드인이 아닌 한국인인 나 역시 그 감정에 깊이 공감한다는 점이다. 어쩌면 우리 민족이 겪어온 억압과 해방의 역사가, 시공을 넘어 음악이라는 언어 속에서 서로의 마음을 울리고, 보이지 않는 공명으로 이어지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photo by 김승준


핀란드는 오랫동안 스웨덴의 지배를 받다가 다시 러시아의 통치 아래 놓였고, 그 속에서 독립의 열망을 키워나갔다. 한국 또한 오랜 식민지와 분단의 아픈 역사를 지나오며 자유를 갈망했던 기억을 지니고 있다. 그래서일까. 시벨리우스의 교향곡 2번을 들을 때 나는 핀란드인의 마음을 단순히 ‘타자의 역사’로만 느끼지 않는다. 그것은 곧 나의 역사이자, 우리 모두의 기억으로 다가온다.



첫 번째 바르비롤리 지휘와 로열 필하모닉의 시벨리우스 2번은 서정적이고 목가적인 색채가 강하다.

현악기의 두터운 레가토와 금관의 둥근 울림은 핀란드의 전원을 연상시키고, 느린 악장에서는 시벨리우스가 고향을 그리워하는 모습을 머릿속으로 그려보게 된다. '민족의 서사시' 보다는 '자연 속의 서정시'가 어울리는 음반.





두 번째 클라우스 메켈레와 오슬로 필하모닉의 2번은 핀란드의 젊은 지휘자가 자기 나라의 작곡가를 전집으로 담아낸 음반을 냈다는 자체만으로 가슴이 뜨거워진다. 서정적이고 목가적인 분위기보다는 차갑고 투명한 북유럽 정서가 물씬 느껴지며 핀란드의 겨울 공기처럼 음표 하나하나가 나라롭게 빛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