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만의 프루스트적 순간' , 마르셀 프루스트가 사랑한 포레
나는 무작정 프랑스 파리를 좋아했다. 센느강 변을 따라 가볍게 조깅을 한 뒤, 갓 내린 커피와 바게트를 들고 집으로 돌아가는 상상을 해본 적 없는 사람이 과연 있을까? 나는 초등학생 때 유럽여행을 간 적이 있었다. 기억을 더듬어 보면 에펠탑 밑 수많은 관광객 카메라 군단 틈에 섞여 똑같이 디지털 카메라를 들고, 무작정 셔터를 눌렀던 기억이 난다. 좋아하는 것에 이유가 어디있을까? 처음에는 말그대로 '그냥' 좋았다. 그것은 설명할 수 없는 막연한 호감이였고, 드라마 에밀리 파리에 가다를 보고 나서 애매한 호감은 어느새 선명한 동경이 되었고, 내가 사랑하는 에디트 피아프와 조르주 비제, 드뷔시, 라벨 그리고 포레까지 모두 프랑스 사람이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자, 그 감정은 처음엔 스쳐 지나간 감정이었지만, 시간이 흐르며 내 안을 완전히 점령해버렸다. 나는 결심했다. 파리지엔느(parisienne)가 되기로. 그래서였을까. 내 눈에는 프랑스와 관련된 것들만 자꾸 들어오기 시작했다. 음악도, 책도, 영화도, 어느새 프랑스로 향하고 있었다. 그래서 오늘 내가 소개하려는 작품 역시 프랑스와 깊은 인연을 가진 음반이다.
바로〈Proust, Le Concert Retrouvé〉이다.
1907년 파리 리츠 호텔에서 마르셀 프루스트가 직접 기획했던 음악회를 바탕으로, 그 프로그램을 오늘날 다시 재현한 특별한 프로젝트이다. 바이올리니스트 테오팀 랑글루아 드 스와르트는 1708년에 제작된 스트라디바리우스 “다비도프”를 사용하였고, 피아니스트 탕기 드 윌리앵쿠르는 1891년 에라르 피아노를 통해 당대의 음향을 되살렸다. 프로그램은 포레의 바이올린 소나타 A장조를 중심으로 레날도 안, 바그너, 쿠프랭, 쇼팽, 슈만의 작품들로 구성되어 있으며, 벨 에포크 시대 파리 살롱의 친밀한 공기를 고스란히 담아내고 있다. 프루스트의 작품을 아직 제대로 읽어본 적은 없지만 여유가 생길 때 꼭 포레의 음악을 들으며 탐독하리라 다짐해본다.
아래에는 앨범에 적힌 글들의 번역본이다.
스트라디스트라디바리우스 바이올린 “다비도프(Davidoff)”
안토니오 스트라디바리, 크레모나, 1708년 제작 (파리 음악박물관 소장, E.1111)
“다비도프”는 음악박물관이 소장한 다섯 자루의 스트라디바리우스 바이올린 가운데 첫 번째로 들어온 악기다. 1887년 러시아 첼리스트 카를 다비도프(1838–1889)의 미망인에 의해 기증되었다. 다비도프는 러시아 황제의 궁정 첼리스트이자 작곡가였고, 말년에 프랑스에 머물렀으며, 파리에서도 자주 연주했다. 그는 1886년 2월 26일 사망할 때까지 여러 음악적·사회적 모임에 참여했는데, 당시 프랑스 사회에서는 그를 “첼로의 차이콥스키”라 불렀다. 그의 죽음 직후, 1886년 6월 3일자 Le Figaro 신문에는 다음과 같은 기사가 실렸다:
“다비도프는 매우 잘생기고, 탁월한 스타일의 첼리스트였다. 그는 많은 작곡가들의 곡을 훌륭히 연주했을 뿐 아니라, 생제르맹 지역의 집에서 자작곡을 들려주며 그의 삶을 음악과 예술로 가득 채웠다.”
이 바이올린이 박물관에 입수된 것은 당시 음악계에서 큰 의미를 지닌 사건이었다. “스트라디바리우스를 소장한다는 것은 전 세계 모든 수집가들의 궁극적인 꿈”이라고 할 수 있으며, 이는 거의 실현 불가능한 목표였다. 당시 박물관의 보존가들은 제한된 예산 때문에 늘 좌절했지만, 기증 덕분에 이 악기를 소장할 수 있었다.
1887년 8월 4일, 이 바이올린은 파리 음악원 시상식 연주에서 처음 사용되었으며, 당시 12세의 어린 바이올리니스트 프리츠 크라이슬러가 연주했다.
“다비도프” 바이올린은 1708년 제작된 악기로, 흔히 스트라디바리의 “황금기”(1700~1720년) 작품 중 하나로 평가된다. 이 시기 악기는 공명판과 헤드 등 주요 부분이 원형 그대로 남아 있어 제작 수준을 잘 보여준다. 아름다운 무늬목으로 제작된 단풍나무 뒷판은 빛에 따라 은은한 광채를 띠며, 오랜 세월을 거친 바니시(니스) 또한 특별한 품격을 드러낸다.
2014년, 음악박물관은 이 악기의 음향적 가능성을 최적화하고 현대 연주자들에게 맞게 조율하기 위해 보존 차원의 복원 작업을 진행했다. 복원은 바탈자르 술리에(Atelier Cels)에 의해 이루어졌다. 이후 이 바이올린은 다시 대중 앞에 등장해 여러 무대에서 연주되었으며, 특히 테오팀 랑글루아 드 스와르트의 연주로 자주 울려 퍼지고 있다. 이번 음반 또한 복원 이후 이 악기로 남긴 첫 번째 기록물이다.
— 장-필리프 에샤르 (Jean-Philippe Échard) 파리 음악박물관 보존 책임자
포레와 포레에 대하여
“저는 선생님의 음악을 단순히 좋아하고, 존경하고, 사랑할 뿐만 아니라, 그것에 사로잡혀 있고, 여전히 그것에 사랑에 빠져 있습니다.”
1897년, 젊은 마르셀 프루스트가 가브리엘 포레에게 쓴 편지의 일부다. 그는 또 이렇게 덧붙였다.
“선생님의 작품을 두고 300페이지가 넘는 책을 쓸 수도 있습니다.”
물론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는 포레에 관한 책은 아니지만, 이 작곡가가 프루스트의 삶과 문학에 끼친 영향은 깊고 중대하다. 포레는 레날도 안과 함께 프루스트 청년기의 멘토이자 등불 같은 존재였다. 프루스트는 그와의 대화와 작품의 반복 청취를 통해 음악적·미학적 사고를 키웠다. 1895년, 24세의 프루스트는 안에게 이렇게 고백한다. “나는 오랫동안 매일 밤 포레의 음악을 들으며 살았다.” 그래서였을까. 1907년 7월 1일, 프루스트는 파리 리츠 호텔에서 열린 살롱 만찬에서 포레를 위한 자리를 마련한다. 르 피가로의 편집장 칼메트의 도움으로, 이 저녁에는 사교계와 예술계 인사들이 초대되었고 만찬 후 음악회가 이어졌다. 포레의 작품은 이 프로그램의 핵심이었다. 프루스트는 초대장에 이렇게 적었다. “‘포레와 포레’의 밤이 될 것입니다.”
또 다른 편지에서는 “포레의 연주가 포함된 여러 곡이 연주될 것입니다”라고도 밝혔다. 실제로는 피아니스트 리슬러가 연주자로 거론되었고, 포레의 바이올린 소나타 A장조(Op.13)와 베르세즈, 그리고 슈만·쇼팽·쿠프랭·바그너·레날도 안의 곡들이 포함되었다. 그러나 최종적으로는 리슬러의 거절로 일부 곡이 제외되고 조정되었다.
음악회 이상의 의미
프루스트는 단순히 사교적인 음악회를 의도한 것이 아니었다. 몇 년 뒤, 그는 ‘테아트로(Théâtrophone)’을 구독하며 원하는 음악을 집에서 청취했고(1911년), 1913년부터는 피아놀라 롤을 대여해 자신이 좋아하는 곡을 반복해서 들었다. 1909년 이후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집필을 시작하면서, 그는 등장인물과 서사의 흐름을 음악과 연결하며 음악적 선택을 소설에 반영했다. 특히 그가 창조한 ‘방퇴유(Vinteuil)의 소나타’는 실제 포레의 바이올린 소나타 A장조에서 영감을 얻은 것이었다. 『스완네 집 쪽으로』(1913)에서 방퇴유의 소나타는 “20세기 초 프랑스 음악의 모든 경향을 응축한 작품”으로 묘사된다. 실제로 프루스트의 초고에 남아 있는 유일한 실재 작품이 바로 포레의 바이올린 소나타였다.
포레 소나타의 의미
프루스트는 이 소나타에 담긴 미학적 의미를 누구보다 잘 이해했다. 작품은 1877년 1월 27일, 작곡자와 마리 타요가 초연했으며, 당시 프랑스 실내악의 새로운 장을 열었다. 소나타는 슈만의 영향이 짙게 배어 있었고, 생상스와 프랑크에게 큰 인상을 주었으며, 프루스트 역시 깊은 감명을 받았다.
특히 마지막 악장은 힘차고 격정적이며, 생상스의 소나타와 닮아 있었다. 프루스트는 자신의 소설 속 샤를뤼스(Charlus)라는 인물에 이 소나타의 의미를 투영시켜, 슈만과 생상스, 그리고 프랑스 낭만주의 음악의 계보를 하나의 상징적 인물로 압축했다.
쇼팽, 바그너, 그리고 프루스트
흥미롭게도 프루스트의 음악적 여정에는 쇼팽도 중요한 자리를 차지했다. 그는 쇼팽의 음악이 프랑스 실내악(포레, 드뷔시)의 성장을 가능하게 했다고 보았다. 그러나 1911년 이후, 사교계는 점점 바그너에 열광했고, 프루스트 역시 바그너의 음악을 탐구한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에서 ‘방퇴유의 소나타’는 바그너의 트리스탄과 이졸데와도 연결된다.특히 “할머니의 죽음 장면”을 묘사하는 대목에서는 바그너의 트리스탄 마지막 장면이 인용되며, 음악이 문학적 서사의 감정과 직결되는 순간을 보여준다.
마무리
결국 1907년 프루스트가 리츠에서 기획한 음악회는 단순한 살롱 이벤트가 아니었다. 그것은 훗날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로 이어지는 그의 “음악적 기억의 실험실”이었다. 이 프로그램에 담긴 포레, 레날도 안, 쿠프랭, 바그너, 쇼팽의 음악은 프루스트의 문학적 세계를 떠받친 “소리의 흐름(flot sonore)”의 원천이었다.
— 세실 르블랑 (Cécile Leblanc)ㅇ
음반정보
앨범명: Proust, Le Concert Retrouvé
연주자:
테오팀 랑글루아 드 스와르트 (Théotime Langlois de Swarte) – 스트라디바리우스 “다비도프”(1708)
탕기 드 윌리앵쿠르 (Tanguy de Williencourt) – 에라르 피아노(1891)
레이블: Harmonia Mundi
녹음: 2020년 9월, 파리 필하모니(Cité de la Musique)
발매: 2021년
수록곡 (Program)
•가브리엘 포레 (Gabriel Fauré, 1845–1924)
•바이올린 소나타 1번 A장조 Op.13
•「꿈 꾼 뒤에」 Op.7-1 (편곡)
•「자장가」 Op.16
•「녹턴 6번」 Op.63
•레날도 안 (Reynaldo Hahn, 1874–1947)
•「À Chloris」, 「L’Heure exquise」 (편곡)
•리하르트 바그너 (Richard Wagner, 1813–1883)
•「이졸데의 사랑의 죽음」 (리스트 편곡)
•그 외 작품: 로베르트 슈만, 프레데리크 쇼팽, 프랑수아 쿠프랭
앨범의 의미
1907년 7월 1일, 마르셀 프루스트(Marcel Proust)는 파리 리츠 호텔에서 가까운 지인들을 초청해 살롱 음악회를 열었습니다. 그는 레날도 안(베네수엘라 태생 작곡가, 지휘자)에게 보낸 편지에 프로그램을 남겼고, 그 기록이 이번 음반의 바탕이 되었습니다. 마르셀 프루스트(1871–1922)는 동성 간의 사랑과 욕망을 작품 속에서 깊이 탐구했으며, 이는 그의 편지와 동시대의 기록을 통해서도 드러난다. 특히 샤를뤼스 남작 등 동성애적 인물 묘사는 그의 성적 정체성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청년 시절 프루스트는 동세대 예술가 레날도 안(Reynaldo Hahn, 1874–1947)과 연인이자 예술적 동반자로 지냈다. 두 사람은 편지와 예술적 교류를 통해 서로에게 깊은 영향을 주었고, 이후에도 평생 우정을 이어갔다. 안을 통해 얻은 음악적·사교적 경험은 프루스트의 문학적 감수성과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의 미학적 토대를 형성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프루스트가 사랑했던 포레의 음악을 중심으로, 슈만·쇼팽·쿠프랭·바그너·안의 작품들이 더해져 벨 에포크 시대의 친밀한 살롱 분위기를 고스란히 재현합니다. 두 연주자는 당시 악기 그대로 1708년 스트라디바리우스와 1891년 에라르 피아노를 사용해, 20세기 초 파리 살롱의 소리를 오늘날에 되살렸습니다.
'나만의 프루스트적 순간'
이 음반은 단순히 한 장의 연주 기록이 아니라, 프루스트의 삶과 문학적 세계를 지탱했던 한 시절의 공기를 다시 불러내는 시도다. 1907년 리츠 호텔의 음악회가 그렇듯, 여기서 들리는 음악은 단순한 프로그램이 아니라 노스텔지아와 실험실 같은 의미를 지닌다. 연주자들이 손에 쥔 악기 또한 특별하다. 오랜 세월을 건너 복원된 스트라디바리우스 “다비도프”와 에라르 피아노는, 당대의 숨결을 지금 우리 앞에 되살려주며 시간의 간극을 메운다. 무엇보다 중심에 놓인 포레의 바이올린 소나타는 프루스트가 소설 속에서 ‘방퇴유의 소나타’로 변주해낸 작품으로, 음악과 문학이 서로에게 길을 내어주는 순간을 증언한다.
또 프루스트와 레날도 안의 관계가 특별하게 다가오는 이유는, 그것이 단순히 ‘사랑’이나 ‘연애’라는 범주로는 다 설명할 수 없는 차원에 있었기 때문이다. 두 사람은 서로를 예술적 자극과 영감의 거울로 마주했다. 누군가를 “음악적으로 사랑한다”는 건 단순히 호감 이상의 일이다. 그 존재가 음악처럼 내 안을 흔들고, 나의 창작과 표현을 바꿔놓는 경험이기 때문이다. 결국 문호나 예술가도 인간이기에, 그들의 삶에도 언제나 “영감을 주는 타인의 존재”가 있었다. 프루스트에게는 그것이 레날도 안이었고, 그 감정은 그의 사교 생활과 청취 경험, 나아가 문학의 문장 하나하나까지 스며들었다. 자신의 작품에까지 그 감정을 투영한다는 건, 사랑이나 우정이 내 안에서 예술로 승화되는 순간이라 할 수 있다. 그것은 특정한 연인에게만 국한되지 않는다. 스승이 될 수도, 동료나 친구가 될 수도, 혹은 하나의 예술 작품일 수도 있다. 중요한 건 그 관계가 내 감각을 뒤흔들고, 내 언어와 음악과 삶을 바꿔버릴 만큼 강렬하냐는 것이다.
결국 중요한 건, 나의 감각을 흔드는 그 순간을 어떻게 받아들이느냐다. 사랑일 수도 있고, 우정일 수도 있으며, 단 한 번 스쳐간 만남일 수도 있다. 하지만 그 강렬한 경험은 누구에게나 찾아올 수 있고, 그것이 내 안에서 예술로 승화될 수 있다면, 우리는 이미 삶 속에서 “나만의 프루스트적 순간”을 맞이하고 있는 셈이다.
이 음반을 듣는 누군가에게도, 언젠가 자신만의 ‘프루스트적 순간’을 만나기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