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네상스에서 바로크 후기까지, 그리고 사람이야기
베토벤하우스에서 시작된 첫 번째 하우스 콘서트 시리즈, 바로크 트리오 : 다색 찬연(多色燦然)
그 첫 무대의 진행을 맡게 되었다. 고도의 첨단 음향시설과 노출 콘크리트 건물에서 고음악 연주라니!
그 자체로 특별한 무대였다. 연주는 5시였지만 4시부터 리허설을 시작해야 했기에,
하프시코디스트 아렌트 흐로스펠트 선생님은 직접 하프시코드를 들고 와 조립하셨다. 이 모습은 단순한 준비가 아니라 음악을 맞이하기 위한 의식처럼 보였다. 악기를 운반하고 세심하게 조율하는 모습은 겸손하면서도 묵묵한 그들의 태도 속에는, 음악에 대한 존중과 삶에 대한 깊은 성실함이 배어 있었다. 준비 단계에서부터 이미 ‘공연’은 시작되고 있었던 셈이다.
그리고 바이올리니스트 프랑수아 페르난데즈 선생님과 김윤경 선생님을 처음 뵈었을 때 환히 웃어주시던 모습이 아직도 생생하다. 하프시코드가 완성되고 튜닝이 시작되자, 곧이은 A음은 이곳을 단숨에 바로크 궁정으로 바꿔놓은 듯했다. 그 소리는 단순한 기준음이 아니라, 과거로 향하는 문을 여는 열쇠였다. 이어지는 현의 조율 하나하나는 시간을 거꾸로 되돌리는 의식처럼 들렸다. 현대식 건물의 차가운 콘크리트 벽도, 그 순간만큼은 오래된 궁정의 살롱으로 변해 있었다. 뒤이어 김윤경 선생님의 소리가 더해지자, 그 작은 울림은 곧 서로의 선율을 끌어안으며 하나의 공간을 채워나갔다. 두 음이 교차하는 순간, 지금 이곳은 단순한 리허설 무대가 아니었다. 현재와 과거가 겹쳐지는 층위 위에서, 우리는 이미 음악의 한가운데에 들어와 있었다.
리허설이 한창일 무렵, 나의 마음은 무거워져 갔다. 곧이어 무대에 올라 오프닝 멘트와 세계적인 연주자들을 관객들 앞에 소개해야 했기 때문이다. 나에게 이 일은 단순히 이름을 부르고 이력을 나열하는 일이 아니다. 그분들의 발자취와 지금까지 이어온 삶의 궤적을 이해하고 그것을 제 목소리고 전해야 하는 일이었다.
두려움 속에는 책임감이 있었다. 연주자들의 삶과 음악을 온전히 이해하고 싶은 마음(불가하겠지만) , 그리고 그것을 통해 관객과 연주를 더 깊이 연결하고자 하는 마음이 함께했다. 나의 말은 단지 서두의 인사에 머무르지 않는다. 때로는 관객에게 첫인상을 심어주고, 때로는 연주자들의 길고 고된 여정을 짧은 순간 속에 압축해 전달하는 통로가 된다. 단어를 고르고 문장을 잇는 일은, 그저 말하기가 아니라 다리 놓기였다. 무대 위에서 흐르는 음악이 관객의 마음에 닿을 수 있도록, 나는 그 사이에서 작은 연결고리가 되어야 했다. 두려움은 여전히 남아 있었지만, 바로 그 조심스러움이야말로 내가 지켜야 할 태도라고 스스로 다짐했다.
프랑수아 페르난데즈 선생님은 네덜란드 헤이크 왕립음악원에서 현대 고음악 연주의 선구자 시기스발트 쿠이켄을 사사하였고, 라 쁘띠드 방드(La Petite Bande)라는 유럽 고음악을 대표하는 오케스트라에 입단하시고 1986년에는 악장을 역임하셨다. 비올라 다 감바, 비올라 다모레, 비올른 첼로 다스팔라 와 같은 다양한 고악기들을 다루시며 현재는 파리 국립 고등음악원과 브뤼셀 왕립음악원에 교수로 계시며 후학양성에도 힘을 쏟고 계신다.
김윤경 선생님은 예원학교, 서울예고, 서울대학교에서 수학하시다가 미국 노스웨스턴대학교에서 학업을 이어가시다 후에 고음악에 깊이 매료되셔 유럽으로 떠나게 된다. 다다른 곳은 바로 벨기에 브뤼셀 왕립음악원이었고 앞서 소개한 페르난데즈 선생님을 사사하게 되며 특별한 인연을 맺게 된다. 무대 위에선 '음악적 파트너' , 무대 밖에선 '인생을 함께하는 동반자'로.
페르난데즈의 선율에 김윤의 선율이 겹쳐지는 순간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드러나는 존중과 신뢰가 남는다. 한쪽이 이끌면 다른 쪽은 자연스레 호응하고, 또 다른 순간에는 서로의 음을 포개며 한 호흡으로 이어갔다. 그 조화로움은 단순한 앙상블이 아니라, 함께 살아온 시간이 만들어낸 깊은 울림 같았다.
대기실에서 시간이 생겼고 나는 망설임 끝에 페르난데즈 선생님께 조심스럽게 고민하다가 한마디를 건넸다.
"It's such an honor to meet you here" 내가 조심스레 던진 한마디에 선생님은 어린아이처럼 기뻐하며 웃으셨다. 그 모습은 세계적인 거장의 위엄과는 또 다른, 순수한 인간적인 따뜻함이었다. 잠시 침묵으로 여운을 남기시더니, 이내 마음이 풀리신 듯 천천히 이야기를 시작하셨다. 거장들이라 하면 보통 우리는 위엄과 권위, 혹은 다가가기 어려운 어떤 장벽을 떠올리곤 한다. 하지만 가까이서 마주한 프랑수아 페르난데즈 선생님과 김윤경 선생님은 전혀 달랐다. 세계 무대에서 이름만으로도 울림을 주는 분들이지만, 대기실에서 마주한 모습은 놀랄 만큼 겸손했고, 환히 웃어주실 때의 따뜻함은 오히려 어린아이 같았다. 그 순간 나는 ‘진정한 거장’이라는 말의 의미가 무엇인지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그들의 겸손은 단순한 성품의 문제가 아니었다. 음악을 대하는 태도, 함께 연주하는 동료와 학생을 대하는 방식, 무대와 청중을 대하는 시선 속에서 자연스레 드러나는 것이었다. 눈에 보이는 화려함보다, 오래도록 쌓아온 진정성이 그들의 몸짓 하나하나에서 배어 나왔다. 그래서일까, 나는 오히려 나 자신을 되돌아보게 되었다. 과연 나는 음악을, 그리고 나의 일을 어떤 마음으로 대하고 있는가. 나는 겉으로 드러나는 성취에만 매달리지는 않았는가. 짧은 만남이었지만 그 순간은 제게 큰 영감을 주었다. 음악을 한다는 것은 결국 삶을 어떻게 살아가느냐와 떼려야 뗄 수 없는 일이라는 것을, 선생님들의 존재가 보여주고 있었기 때문이다. 거장들의 겸손과 따뜻함을 곁에서 직접 마주한 경험은, 제게 진행자로서의 책임뿐 아니라 한 사람으로서의 태도에 대해서도 깊이 생각하게 하는 계기가 되었다.
무대가 끝나고, "선생님들 앞에서 직접 소개를 하느라 너무 떨렸습니다. 제가 잘 설명했는지도 모르겠어요" 말씀드렸더니, 김윤경 선생님은 미소를 지으며 이렇게 말씀하셨다 "맞아요, 저도 사람들 앞에서 이야기하는 건 늘 어려워요."
오늘 무대 위에 흐른 음악은 르네상스에서 바로크 후기까지의 다채로운 색채를 담고 있었지만, 그 가운데 나에게 가장 크게 다가온 것은 결국 ‘사람’이었다. 거장의 겸손함, 동반자로서 서로를 존중하는 연주자들의 태도, 그리고 그 모든 것을 따뜻하게 바라보는 청중의 눈빛까지. 이 모든 순간이 겹쳐져 이번 무대는 내게 깊은 배움과 울림으로 남았다. 음악은 결국 사람에게서 비롯된다는 걸 느꼈다. 연주자의 겸손한 태도, 서로를 존중하는 눈빛, 그리고 청중이 보내는 따뜻한 공감은 악보 위의 음표를 훌쩍 넘어서는 울림을 만들어냈다.
이건 음악 하는 사람들만의 이야기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각자의 자리에서 맡은 일을 대하는 태도, 함께하는 사람을 존중하는 마음, 그리고 무엇보다 스스로를 겸손하게 다스리는 자세는 누구에게나 깊은 울림을 줄 수 있는 삶의 방식일 거다. 성취와 결과보다 과정 속에서 드러나는 진정성이 결국 우리 삶을 빛나게 한다는 걸, 이번 무대가 다시 일깨워줬다. 그래서 이 하우스 콘서트는 내게 단순히 공연을 진행한 경험이 아니라, ‘어떻게 음악을 할 것인가’라는 질문을 넘어서 ‘어떻게 살아가야 할 것인가’라는 물음을 남겼다. 그 물음은 오래도록 내 안에 여운으로 남을 것 같다. 그리고 문득 깨닫게 된다. 음악은 결국 삶을 닮고, 삶 또한 음악을 닮아간다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