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중호우주의보 속에서 듣는 글렌 굴드의 골드베르크 변주곡(1955)
어제부터 집중호우 재난 문자로 휴대전화가 시끄럽다.
다행히 휴무였던 나는 빗소리가 약간의 운치와 낭만을 더해줘 나쁘지 않았지만 오늘은 기대와 달리 빗방울이 떨어지지 않음에 약간의 서운함을 느낀다. 하지만 아직 남아있는 흙냄새와 흐린 하늘로 서운한 마음을 달래 본다. 이러한 공기 속에 얹고 싶은 음악은 역시 피아노 곡이다.
빗방울처럼 맑게 떨어지는 듯한, 깔끔하고 단정한 음들이 차례로 이어지는 음악.
마치 물방울이 투명한 호수 위에 원을 그리며 번져가는 듯, 건반 위에서 흘러내리는 소리들은 마음 한가운데 고요한 파문을 만든다.
나는 1955년 젊은 글렌 굴드의 골드베르크 변주곡을 듣는다.
젊음의 패기가 느껴지는 템포와 날카롭고 정밀한 터치 그리고 매 변주마다 설계된 하나의 견고한 건축물 같은 그의 연주는 마치 비에 씻겨 내려간 도시의 윤곽처럼 선명하다. 집중호우가 사그라들고 드러나는 거리의 질감처럼, 그의 연주는 군더더기를 모두 덜어낸 단단한 골격만 남긴다.
하늘빛이 불안정한 날에 글렌굴드의 연주는 흔들리지 않는 하나의 축을 세워준다.
언제든지 어두워질 준비를 하고 있는 하늘 아래, 습기와 꿉꿉함을 가르는 그의 연주는 단단한 하나의 축을 세워준다. 일정한 템포와 또렷한 음들은 불안정한 공기 속에서도 마음을 단단히 붙잡아 주는 버팀목이 된다.
아리아(Aria)는 담백하게 건반 위에 한 겹 씩 얇게 색을 덧칠하듯 차근차근 감정을 쌓아 올린다.
그 단정함 속에 숨어있는 긴장감과 에너지는 언제든 다시 비가 내릴 것 같은 흐린 하늘과 닮아 있다.
제5 변주(Variation 5) Hand-Crossing Variation는 놀라울 정도로 명료하고 반짝인다.
눅눅한 공기를 뒤로하고 잎사귀들 사이로 스치는 듯한 미세한 바람의 청량함이 느껴진다.
제15변주(Variation 15)는 전반부를 마무리하는 단조로 전형적인 먹구름 낀 하늘을 떠올리게 된다. 굴드의 차분하고 가라앉은 템포는 흐린 날 창가에 기대어 느리게 번지는 생각과 닮아 있습니다. 왼손의 선율을 오른손이 응답하듯 감싸며 습기가 아닌 온기가 느껴지기도 하다.
제30 변주 '퀴들리벳'(Quodlibet)은 긴 여정의 종지를 알리는 듯 긴 여행을 마친 자만이 느낄 수 있는 안도와 만족이 배어있다. 모든 변주를 지나온 시간들이 하나의 미소로 웅측된다.
빗물이 도시의 묵은 먼지를 씻어내면, 콘크리트건물 외벽과 아스팔트도로 제각기 지닌 표면의 결이 드러난다. 글렌 굴드의 연주도 마찬가지로, 시간과 습관이 덧씌운 장식을 걷어내고 음악이 숨겨온 맨살을 드러낸다.
그래서인지 그의 연주는, 모든 것을 씻어 내린 뒤 남는 선명함 때문에 비 오는 날 더욱 생각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