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열과 질서 사이

요하네스 브람스의 헝가리 무곡 듣는 법

by 여자말러리안

요하네스 브람스가 남긴 수많은 명곡들 중에서도 《헝가리 무곡》은 유독 이방의 열정과 서정이 교차하는 음악으로 기억됩니다. 이 곡은 엄밀히 말해 브람스의 창작곡이라기보다는, 그가 헝가리 집시 음악을 편곡해 재구성한 작품이라 보아야 옳습니다. 총 21곡으로 이루어진 《헝가리 무곡》은 19세기 유럽에서 유행하던 헝가리풍 민속춤곡의 양식을 차용해 만들어졌으며, 집시들의 삶과 감정이 고스란히 녹아 있습니다.

브람스는 1833년 5월 7일 독일 함부르크에서 태어났습니다. 함부르크 시립극장에서 콘트라베이스를 연주하던 아버지 밑에서 자라며 음악을 접했고, 피아노는 오토 코셀에게, 작곡과 이론은 프리드리히 마르크스젠에게 사사하였습니다.




19세기 중반 유럽에는 프랑스 대혁명의 이념에 고무되었던 자유주의 신지식인들이 각기 불만을 터뜨려 정치적으로 매우 혼란스러웠는데 1848년 헝가리에서도 합스부르크 왕조에 대한 반란 혁명이 일어나 많은 헝가리 인들이 함부르크로 피난하게 되었는데 이들 대부분은 미국으로 가기 위해 돈이 필요했다. 그러다 음악인들은 경비 마련을 위해 함부르크에서 2중주 혹은 앙상블을 만들어 활동했는데 이때 브람스는 헝가리의 망명 음악가들의 연주를 통하여 처음을 헝가리 선율을 접하게 되었죠.






그중 망명 음악가 중 한 명이었던

헝가리 출신 바이올리니스트 에두아르트 레미니(Eduard Remenyi:1830~1890)를 알고 나서부터 그의 집시 음악에 대한 관심이 시작됩니다. 1848년, 유럽 전역을 휩쓴 자유주의 혁명과 헝가리 봉기의 여파로 많은 헝가리 망명자들이 함부르크로 유입되었습니다. 그들 중에는 바이올리니스트 에두아르트 레메디도 있었는데, 브람스는 레메디의 연주를 반주하면서 헝가리 집시 선율에 처음 매료되었습니다. 이후 레메디와 연주여행을 떠났고, 이 인연을 통해 요제프 요아힘을 만나 리스트와 슈만에게 소개받게 됩니다.

슈만은 《음악신보》에 “새로운 길”이라는 평론을 실어 브람스를 세상에 알렸고, 브람스는 이후 클라라 슈만과도 깊은 유대를 나누게 됩니다. 피아노 협주곡 제1번은 냉담한 반응을 받았지만, 《독일 레퀴엠》의 성공으로 명성을 얻게 되며 빈에 정착합니다. 이후 유럽 각지를 돌며 연주 활동을 이어가고, 1896년에는 말년에 클라라의 임종과 함께 《네 개의 엄숙한 노래》를 작곡합니다. 이듬해, 오르간을 위한 코랄 전주곡을 끝으로 생을 마감합니다.

《헝가리 무곡》은 1869년 1,2집 10곡, 1880년 3,4집 11곡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대부분 피아노 연탄곡으로 작곡된 후 관현악으로 편곡되었습니다. 브람스는 이 곡들에 작품번호를 붙이지 않았는데, 이는 대부분 기존 민속 선율을 편곡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는 명확히 “브람스에 의해 편곡된” 작품이라 밝혔으며, 일부 곡(11, 14, 16번)은 순수 창작곡입니다.




하지만 1,2 집이 발표되고 나서 레메니는 헝가리 무곡의 멜로디가 자신의 연주에서 비롯된 것이라며 소송을 제기했고, 결국 법정싸움까지 가게됩니다. 그로 인해 브람스는 3,4집을 출판하기까지 11년이 걸렸습니다. 이러한 논란은 오히려 브람스가 단순한 표절이 아니라 음악적 재해석의 관점에서 민속을 다루었다는 사실을 반증하였고, 이에 대한 의식 때문인지 11,14, 16번은 순수 본인창작곡을 넣어 발표합니다.





집시는 북인도에서 기원하여 수세기 동안 유럽 각지로 퍼진 유랑 민족으로, 특히 음악과 무용에서 탁월한 재능을 보였습니다. 이들은 유럽 전역에서 '이집트에서 온 이방인'이라 불리며 환영받기도 했지만, 동시에 차별과 박해의 대상이 되기도 했습니다. 특히 나치 치하에서는 유대인들과 함께 학살당하는 비극을 겪기도 했습니다.‘집시’라는 명칭은 지역에 따라 다양하게 불렸습니다. 영국에서는 처음 이들을 '이집트에서 온 사람(Egyptian)'으로 오인하여 'gicyan'이라 부르다가 점차 두음이 소실되어 'gipcy'로 굳어졌습니다. 프랑스에서는 '보헤미안(Bohemian)', 독일에서는 '치고이너(Zigeuner)', 헝가리에서는 '치가니(Tziganes)'라고 불렀습니다. 이러한 명칭들은 단순한 지리적 기원을 넘어, 이들에 대한 문화적 오해와 상상의 산물이기도 합니다. 헝가리풍 음악은 실제 집시의 음악이라기보다 헝가리 상류층이 작곡하고 집시 연주자들이 연주한 ‘상상된 민속’에 가까웠습니다.이 음악의 양식은 보통 느린 라산(Lassan)과 빠른 프리스카(Friska)로 구성된 차르다시(Czardas) 구조를 따르며, 브람스는 여기에 3부 형식을 도입하여 음악적 긴장과 완급을 더했습니다. 강한 스타카토, 악센트, 점음표 리듬 등은 헝가리어의 억양과 구조, 그리고 집시의 격정적인 성격과 연결되어 있습니다. 선율은 하강형, 잔결형, 아치형의 세 유형이 두드러지며, 음계는 증 2도를 포함한 동양풍 ‘헝가리 집시 음계’가 사용됩니다. 이는 브람스 특유의 구조적 감각과 어우러져 낭만적인 감성 속에서도 견고한 짜임새를 만들어냅니다. 브람스의 《헝가리 무곡》은 단지 민속 선율의 차용을 넘어, 그의 서정성과 헝가리 집시들의 삶의 무게가 한데 어우러진 독보적인 음악입니다. 그것은 애잔하고 정열적이며, 과거의 억압받은 목소리들을 오늘의 무대 위로 끌어올리는 브람스식 애도이자 경의입니다.



브람스의 「헝가리 무곡」은 모두 헝가리 전통 무곡 양식인 차르다시(Csárdás)에서 유래하였습니다.

차르다시는 일반적으로 느리고 서정적인 라산(Lassán)과, 빠르고 격렬한 프리스카(Friska)로 이루어진 2부 형식을 따릅니다. 브람스는 이러한 전통 형식에 자신만의 구조미를 더하여, 대부분의 곡을 라산–프리스카–라산의 3부 형식으로 구성하였습니다. 이러한 반복적 구조는 집시 음악 특유의 즉흥성을 살리면서도,

브람스 특유의 형식미와 질서를 부여한 점에서 주목할 만합니다.



브람스의 《헝가리 무곡》 중 특히 잘 알려진 곡 몇 가지를 짚어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제1곡 g단조: 우수에 젖은 선율로 유명하며, 브람스 스스로 관현악으로 편곡했습니다. 헝가리 작곡가 사르코지의 작품을 바탕으로 삼았습니다.

제2곡 d단조: 감정의 폭이 넓고, 차분한 라산과 경쾌한 프리스카가 극적인 대비를 이루는 곡입니다.

제4곡 f단조: 앞꾸밈음이 화려하게 사용되며, 브람스 특유의 셋잇단음표가 돋보입니다.

제5곡 f#단조: 전형적인 집시풍으로 진행되며, 악센트와 템포의 변화가 인상적입니다.

제6곡 D♭장조: 라산과 프리스카의 대비가 선명하고, 헝가리 집시 스타일의 정수가 잘 드러납니다.

제9곡 e단조: 스타카토와 악센트가 경쾌하게 반복되며, 무곡적 에너지가 강렬합니다.




추천 음반, 도이치 그라모폰 사의 빈 필하모닉과 클라우디아 아바도(Claudio Abbado) 지휘입니다.




















위 글은 아래 논문을 참고하여 작성하였습니다. 연구자 여러분의 귀한 연구에 감사드립니다.

임수진. 「라벨 〈Tzigane〉에 관한 분석 연구」. 신라대학교 일반대학원 석사학위논문, 2017.

김서연. 「중학교 음악 감상 수업 지도방법 연구 – 브람스의 〈헝가리 무곡〉 No.1, No.5, No.6을 중심으로」. 동아대학교 교육대학원 석사학위논문, 2016.

이현희. 「브람스 〈헝가리 무곡〉의 집시 음악적 특징을 중심으로 한 감상 지도 방안 연구」. 한국교원대학교 교육대학원 석사학위논문, 2007.

한보라. 「헝가리 민속음악과 집시음악의 특징 연구」. 성신여자대학교 대학원 석사학위논문, 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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