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를 품은 작곡가, 라벨

모리스 라벨의 '치간느' (Tzigane)

by 여자말러리안


모리스 라벨 (Maurice Ravel, 1875 ~1937)은 3월 7일 스페인 국경지대와 가까운 프랑스 바스크지방 시부르에서 태어났습니다. 그의 어머니는 스페인의 바스크지방 출신으로 그가 태어난 지 3개월 만에 파리로 이주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스페인계 어머니와 어린 시절 바스크지방에서 유년시절을 보내서인지 그의 작품들에는 스페인 적 요소가 자주 등장하죠. 그는 1889년 14세의 나이에 파리 음악원에 입학하였고, 음악원에서 샤를로 드 베리오에게 피아노를 배우게 됩니다. 하지만 당시 음악원 교수들은 라벨이 성실하지 못한 학생이라고 평가했으며 라벨은 그 당시에 파리 만국박람회에 심취하여 학교 수업에는 소홀하였다고 하는데요,

만국박람회는 19세기 유럽에서 열린 세계 규모의 박람회로, 각 나라가 자신들의 기술, 건축, 예술, 민속 문화를 전시하며 경쟁하던 국제 행사였습니다. 작곡가들에게는 유럽 바깥의 새로운 음악과 문화를 직접 접할 수 있었던 특별한 기회였죠. 드뷔시 역시 이곳에서 인도네시아의 가믈란 음악에 깊게 영감을 받게 되었고 라벨 역시 음악적 견문을 넓힐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되었죠.


1895년 그는 결국 화성학 강의에서 낙제했고 돌연 학교까지 그만두고 맙니다. 그는 2년간 수학을 그만뒀고 에릭사티(1866-1925)와 샤브리에를 만나게 되면서 그의 초기 작품에 많은 영향을 줬다고 합니다.

1898년 그로부터 3년 뒤에 다시 파리음악원에 재입학하게 되었고 새로운 선생님인 포레를 사사하게 됩니다..

그는 포레와 는 잘 지냈고 1년 동안 그로부터 화성적 색채감을 배우게 되죠. 그러다 포레가 파리음악원의 음악원장이 되면서 보수적인 그 당시 성향을 사라지고 라벨은 새로운 개방적인 분위기에서 음악공부를 이어갔다.

포레는 라벨을 굉장히 높게 평가했고 세헤라자드(1903) 등의 작품들로 자신의 개성을 입증하게 됩니다.

1907년 그의 첫 오페라인 <스페인의 한때>와 <스페인 랩소디>를 완성하였는데 이는 스페인 출신인 자신의 어머니의 영향으로 유독 스페인 정서를 많이 표현했는데 뿐만 아니라 <볼레로(1928)> <하바네라(1895)> 등이 대표적입니다. 1910년 라벨은 당시 지나치게 보수적이던 국민음악협회에 반하여 포레를 회장을 내세운 독립음악협회를 창립하였습니다. 그리고 1912년에는 디아길레프의 의뢰로 <다프니스와 클로에>를 작곡하기도 하며 이후 스트라빈스키를 만나고 쇤베르크의 <달에 홀린 피에로>에 대한 이야기를 들으며 라벨은 <스테판 말라르메의 3개의 시>를 작곡하게 되죠. 이 당시 라벨의 작품에서는 신고전주의의 면모들이 나타나기 시작합니다. 그러다 1914년 제1차 세계대전이 발발하고 라벨은 1916년 나이 40세에 운전병으로 입대하지만 병에 걸려 1917년도, 1년 만에 제대합니다. 그리고 전쟁으로 죽은 전우들을 위해 <쿠프랭의 무덤>을 작곡하였죠. 그 이후 그의 건강은 점점 나빠졌고 1917년도 설상가상으로 어머니의 죽음까지 겹쳐져 삶의 암흑기가 찾아오게 됩니다.

그렇게 깊은 상실의 시간을 지나, 라벨은 다시 천천히 창작의 길 위로 걸어 나옵니다.

그리고 1922년, 런던을 방문한 그는 한 연주자의 음악에 마음을 빼앗기게 되죠. 바로 헝가리 출신 바이올리니스트 젤리 달라니(Jelly d'Arányi)의 연주를 보게 된 것입니다. 라벨은 그의 연주에 매료되어 헝가리 집시 선율의 『치간느(Tzigane)』를 작곡하게 됩니다. 프랑스어로 집시, 바이올린 솔로로 몇 분 간 시작되며, 굉장히 이국적이고 환상적인 선율을 특징이죠. 라벨의 집시음악인들에 대한 그의 감탄이 그대로 담겨 있습니다. 치간느에 담긴 라벨의 감탄은, 그가 얼마나 다양한 문화를 수용할 줄 아는 작곡 가였는지를 보여줍니다. 그는 집시 음악뿐 아니라, 스페인 민속 선율과 후기에는 미국의 재즈까지 자신의 언어로 녹여냈죠.

실제로 1928년 미국 순회공연 당시, 라벨은 뉴욕의 할렘가 재즈 클럽을 자주 찾으며 그 생생한 리듬과 즉흥성에 깊이 매료되었고, 이후 그의 음악에는 재즈적 요소가 자연스럽게 스며들게 됩니다.

단순한 인상주의를 넘어서, 라벨은 누구보다 열린 감각으로 세계의 소리를 품은 작곡가였습니다.


안타깝게도, 라벨은 1932년 파리에서 택시 충돌사고로 인한 후유증으로 뇌질환과 기억상실로 건강이 악화되어 1937년도에 사망하게 됩니다.









추천 음반으로는 안네 소피 무터가 협연하고, 제임스 레바인이 빈 필하모닉을 지휘한 Tzigane이 있습니다.

무터 특유의 날카롭고도 유려한 음색, 그리고 빈 필이 만들어내는 탄력 있는 리듬이 라벨의 집시적 정서를 한층 극적으로 끌어올립니다. 단순한 기교 과시가 아닌 라벨이 꿈꾸고 상상했던 집시들의 모습을 드라마틱하게 구현해 냅니다.




















위 글은 아래 논문을 참고하여 작성하였습니다. 연구자 여러분의 귀한 연구에 감사드립니다.

임수진. 「라벨 〈Tzigane〉에 관한 분석 연구」. 신라대학교 일반대학원 석사학위논문, 20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