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지와의 첫 만남, 러프브레이

상상할 수 없는 아일랜드의 광활한 초원

by nomadhaus

아일랜드 더블린에 도착했다. 곧장 미리 예약해 둔 차를 인수하러 갔다. 이번엔 꼬임에 흔들리지 말아야지. 약간에 긴장감을 안고 카운터에 섰다. 걸쭉한 억양에 붉은 머리 아저씨. 정확하게 예약한 대로 안내해 준다. 에어컨과 네비가 없는 깡통차. 옵션이 붙으면 가격이 배로 뛰어 애초에 선택의 여지가 없다. 그대로 가자. 아일랜드 땅에 첫 발을 디뎠다. 처음 몰아보는 우핸들 좌측통행 운전이 어색했지만 익숙해지기까진 1시간이 안 걸렸다.

아일랜드 여행을 하다 보면 자동차 뒷 창에 큼지막한 빨간 글씨로 L 또는 N, 아니면 둘 다 붙인 차들을 쉽게 볼 수 있다. 초보운전, 동승자 동반 운전 가능한 차를 의미한다. 스티커는 특별한 사고 없이 2년 동안 붙이고 다녀야 마크를 뗄 수 있다. 그래서일까 아일랜드에서는 단 한 번도 난폭운전자를 본 적 없다. 모두들 하나같이 교통규범을 준수하고 안전운전을 한다. 심지어 파란불에 출발이 늦어도 경적 한번 누르지 않고 기다려준다. 프랑스에서도 그렇고 우리나라에선 상상 못 할 일이다.

더블린을 벗어나 교외지역인 탈라트에 숙소를 잡았다. 첫 번째 여행지인 딩글에 가기 전 여독도 풀 겸 이곳에서 며칠 쉬었다 간다. 이미 여행 전에 지도를 샅샅이 훑어서 재밌어 보이는 곳마다 깃발을 꽂아뒀다. 탈라트 근처에는 ‘러프브레이(Lough bray)’라는 트래킹 코스가 있다. 온전한 하루를 보내는 날, 첫 트래킹을 향해 떠났다. 도시를 벗어나 오솔길을 가로질렀다. 언덕을 넘는 순간, 규모를 가늠할 수 없는 대지가 눈앞에 펼쳐진다. 거대하다. 보고도 믿을 수 없는 풍경에 입을 다물지 못했다. "우와, 말도 안 돼" 우리가 할 수 있는 말은 그게 전부였다. 100m도 못 가서 차를 계속 세우고 사진을 찍었다. 시종일관 변하는 풍경을 놓치고 싶지 않았다. 목적지까지는 30분밖에 안 남았지만 이대로는 하루를 다 써도 모자랄 것 같다. 들뜬 마음을 진정하고 카메라를 접어 곧장 목적지로 향했다.


러프브레이에 도착했다. 감당할 수 없는 규모의 풍경이 압도한다. 풀들은 켜켜이 쌓여 물을 머금고 질척거리는 흙이 됐다. 이것들이 모여 대지를 이뤘고 끝 모를 넓은 들판 위에 커다란 산맥을 우뚝 솟아올렸다. 그 가운데에는 길고 넓은 호수가 샘솟는다.

마치 처음 땅을 밟아 본 것 만 같다. 호수를 향해 꽤 긴 거리를 걸었지만 산맥은 가까워지는지 모를 만큼 처음부터 거대한 자태로 우리를 기다렸다. 여행 시작부터 이렇게 압도당하면 앞으로는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상상조차 할 수 없었다. 이곳에 서있는 현실이 실감 나지 않았다. 나의 눈은 산과 높은 빌딩으로 둘러싸인 환경에 익숙했다. 모든 것들로부터 거스름 없는 대지는 기존에 내가 갖고 있던 상식으로는 있을 수 없는 곳이다. 본 적 없는 이 땅에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조차 모르겠다. 이해할 수 없으니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수밖에. 걷잡을 수 없는 벅찬 감정이 밀려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