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생미셸(Mont - Saint - Michel)

여행지에서 느낀 오감 활용하기/11강 과제 /여행 글쓰기

by 글바트로스

3개월의 긴 여름 방학, 한 달 정도 남았을 때였다.

카페 3층에 있는 나의 옥탑 방으로 Annie가 병문안을 왔다. '19세기 소설전공'인 그녀는 '시전공'인 나보다 더 늦깎이 박사과정 동급생이다. 작은 소나무 분재를 들고, 방으로 들어오던 그녀가 내 얼굴을 보자마자 웃기 시작했다. 고등어 식중독으로 얼굴이 부어오르다 못해, 윤곽이 아예 사라진 평면에다가 눈꺼풀도 맞붙어버린 괴물 같은 상태였다. 사람의 얼굴이라기보다 널빤지 같은 내 모습에 터진 그녀의 폭소는 쉽게 멈추지 않았고, 결국 방을 뛰쳐나갔다가 겨우 진정된 뒤에야 들어왔다.


걱정이 되었는지, 그녀는 1주일 후에 다시 찾아왔다.

얼굴 부기가 많이 가라앉았고 얼굴 윤곽 선이 어느 정도 드러나고 있었다. 조심스럽게 내 얼굴을 살펴보며, 지난번에 미안했다고 거듭 사과했었다. 가을 학기 시작 전에 10일 정도 노르망디 지방의 중세 수도원 순례 여행을 떠날 예정이라고 덧붙였다.

“네가 원한다면, 같이 가고 싶은데?”

머뭇거리는 나를 보고

“네가 준비할 것은 아무것도 없어. 내 고물 차로 함께 가자.”


몽셍미셀은 멀리서 볼 땐, 삿갓 고둥처럼 보였다.

가까이서 보니까, 끝이 보이지 않는 모래사장 한가운데에 엎딘 거대한 소라고둥처럼 보였다.

기념품 가게의 작은 지붕들이 가파른 인도에 위태롭게 붙어 선 모양새가 몽셍미셀 섬의 외곽에서 볼 때 소라고둥의 울퉁불퉁하게 솟은 뿔처럼 보였다.

고둥 입처럼 생긴 넓은 입구는 올라갈수록 점점 좁아지고 가팔라지는 골목길이었다. 사람들은 고둥의 아가리 속으로 밀려 들어가면서부터, 말문이 저절로 닫혔다. 수다를 허락하지 않는 고 바위 급경사 길이었다. 갖가지 머리 색깔과 눈동자처럼 귓가를 스쳐가는 각 나라 언어의 파열음도 다양했다. 재촉하는 Annie의 프랑스어만 내 귓속을 파고들었다.

"서둘러! : Dépêche – toi! "

평소 걷기가 취미인 그녀는 날쌘 다람쥐 같았지만, 나는 자꾸만 뒤처졌다.

아픈 뒤끝이라 발걸음은 평소보다 더 굼떴다. 그녀가 재차,

"아가씨, 좀 더 빨리 걸어요 : Mademoiselle, marchez un peu plus vite."


몽생미셸(Mont Saint Michel) 꼭대기.

끝없이 펼쳐진 모래사장을 보고, 나는 괴성에 가까운 탄성을 질러댔다.

광야처럼 펼쳐진 모래사막이 끝나는 지점, 바다가 새파란 눈으로 지켜보고 있었다. 육지로 달려오고 싶어 하는, 갈망 짙은 푸른 눈처럼 빛났다.

섬 아이였던 나는 모래사장에 어떤 조개가 있는지가 몹시도 궁금해졌다.

유년시절처럼 호미로 조개를 파고 싶어졌다. 그 비릿한 갯냄새를 코와 목구멍으로 들이마시면, 비실대는 육신이 퍼덕대며 되살아날 것 같았다. 한참이나 머뭇거리다가, 모래사장으로 내려가도 되느냐고 해설자 수사님께 물었다.

"그건 안 돼요! 팻말 못 봤어요? 밀물이 밀려오는 속도가 10초에 100미터 이상이에요. 육로가 없었던 중세기 때부터 근대까지, 유럽 각지에서 오던 수많은 순례 객들이 엄청나게 수장되었어요. 만조의 물때를 모르고 출발했던 탓이지요."


거대한 우물이 있었다.

섬의 꼭대기에서 밑바닥까지 맞닿아 뚫려 있었다.

"우물에 물이 없네요?"

"원래부터 물이 없는 우물입니다. 이곳 수도원 수도승들의 먹거리 실어 올리는 용도로 만들어진 겁니다. 섬 아래서 식자재를 묶어 고정시키고 밧줄을 흔들면, 위에서 도르래로 끌어올리는 식자재 수송 통로였지요."

수사님은 작은 동양 여자가 신기했던지 유난히 친절했고, 세례명을 밝힌 뒤부터 중세 시대의 은수자 수도승들의 이야기도 심덕 좋은 아재처럼 덤으로 자세히 설명해 주셨다.


어느새, 시간이 빛살처럼 달아났다.

바다의 물결이 힘센 사내처럼 달음박질로 달려오고, 황혼도 천사처럼 거대한 날개로 내려와서는 몽셍미셀을 에워싸고 있었다.

우린, -Annie와 내가- 섬을 떠나야 할 시간이었다.

장엄한 광경 앞에서 발길이 쉽게 떨어지지 않았다. 붙박이 미라처럼 한동안 멈춰 서 있었다. 시퍼렇게 일렁이던 물결도 어느새 황금빛깔 비늘처럼 곧추섰다. 경건함으로 넘실대는 광경에 압도된 채, 말문이 막혔다. 쉽게 수긍하지 못하는 내 앞에 한 번도 본 적 없는 황홀한 주홍빛 하늘이 내려오고 있었다. 이승과 저승이 일치되는 일몰의 광경 앞에서, 덩달아 나도 - 몸에서 마음으로 정신까지도 - 통합되는 혼연일체의 기이한 전율로 일순 몽롱해졌다. 미소한 존재라는 자각으로, 'Mont - Saint - Michel; 미카엘 대천사의 산' 앞에서 두 무릎을 꿇고 싶어졌다.


몽생미셸에서 육지로 이어주는 다소 높은 도로.

만조 때마다 일어서는 물기둥 방어벽 용도다. 제방처럼 높은 육로의 양쪽 평야에는 수많은 양 떼들이 유유히 풀을 뜯고 있었다. 처음 보는 갈색 양 떼들- 머리와 엉덩이가 유난히 짙은 녀석들 –이었다!

넋 놓고 바라보는 나를 보며, Annie가

"바닷물에 수시로 잠기는 짠 풀을 먹어서 갈색이래. 소금 첨가하지 않아도 짭조름한 양치즈가 특산물이야."

어느새 뒤 따라온 황혼빛깔 따라 양 떼들도 물들어가고 있었다. 가르마처럼 이어진 제방 길을 사이에 두고 광활한 들판의 양 떼들, 내가 속으로 그토록 갈망하던 평화를 한 폭의 그림처럼 보여주었다.

척박한 비탈길에서 지쳐가던 이방인인 나에게, - Annie의 속 깊은 배려로 노르망디 중세 수도원 순례지 첫 방문지였던 -'몽셍미셀은' 천사의 섬으로 심혼에 새겨졌다.


프랑스 국적인 한국태생여인, 오늘 광화문 카페에서 만났다.

그녀는 프랑스에서 불법 체류 중인 아프리카 여인들을 돕는 단체에서 Annie를 만나, 자신이 쓴 소설을 컨펌해 준 덕분으로 친구가 되었다고 부연설명했다. 소설가 박경리를 생전에 만났을 때, 자비 출판에 대해 상담했다는 이야기와 더불어 프랑스어판 소설 출판은 여전히 보류 중이라고 했다. 도움 되고 싶은 마음으로, '돈 버는 브런치 글쓰기; 류귀복'을 선물했다.


세월 속에 묻혔던

Mont Saint Michel,

무지갯빛 그림엽서처럼 선명하게 떠 오르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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